<인터뷰>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남편, 이승배 마을학교 이사장

▲ 지난 13일 고양시 화정동 심상정 대선후보 지역사무소에서 인터뷰한 남편 이승배씨. 같은 날 심 후보는 대선후보 TV토론을 진행했다.

소신 뚜렷한 강한 여자지만 정 많고 따뜻한 사람
수배자였던 아내와 연애, “6월항쟁이 결혼시켜줬다”
김문수·박노해 추천, 연애하며 성평등의식 깨우쳐

[고양신문] 대선 후보의 가족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대통령의 가정환경이 대통령 업무에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배웠다. 그런 의미에서 고양신문은 고양시에 살고 있는 대선후보인 정의당 심상정(고양시갑 국회의원) 상임대표의 배우자를 만났다.

최근 심 후보의 남편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자 인터넷 댓글에는 ‘심상정 언니 솔로 아니었어?’, ‘노회찬이 남편 아닌가’라며 자못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만큼 심 후보 남편의 존재감이 지금껏 없었단 얘기다. 

심 후보보다 3살 많은 이승배(61세) 마을학교 이사장은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왔다. 경기고·서울대 출신 정치인하면 이회창, 손학규, 고건, 김근태, 정운찬 등 참 많다. 황교안, 노회찬은 그의 고교 1년 후배다. 출신 학교로만 보면 국내 최고 스펙이다. 그런 그가 심상정과 결혼한 후 14년 전부터 집안일을 하며 심 후보의 내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이제는 대한민국 대표 ‘내조의 왕’이 됐다.

심상정, 이승배, 아들 이우균(경희대 4년, 25세) 이렇게 3명이 한가족이다. 화정동 지역사무소에서 남편 이승배씨를 만났다.


최근 대선후보의 가족문제가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인터뷰가 부담스럽지 않나.
인터뷰에 응하는 게 도리라 생각한다. 두 가지 이유다. 공적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다면 국민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충분히 보여줘야 할 책무가 있다. 대선 후보의 가족이라면 공적책임에 대한 정신적 무장이 중요하다. 역대 거의 모든 정권에서 가족·친인척·측근비리가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 가족의 공적책임에 대한 정신적 무장은 다음 정권의 큰 숙제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이유는 한 표가 아쉽다(웃음). 아내를 돕는 마음에서 인터뷰에 나서고 있다. 가족이자 당원으로 나선 것이다.


이번 대선에 임하는 각오는.
이번 대선은 과거와 다르다. 그동안 아내가 세 번 대권의지를 표명했지만 과거 두 번은 경선에서 떨어졌거나 중도에 포기했다. 하지만 이번엔 끝까지 간다. 이번 선거가 심상정에게는 진정한 첫 번째 대선이다. 아내가 이번 선거를 끝까지 치러내는 것은 진보정당의 발전을 위한 희생이자 소명이다. 그래서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 선거는 정의당의 향후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사단법인 마을학교를 소개해 달라
배우고자 하는 시민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시작한 것이 마을학교다. 유명 연사의 강연, 소그룹별 기획 강좌, 동아리 활동 등이 있다.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손범규에게 지고 지역활동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었고, 그때 만들어진 것이 마을학교다. 초대 이사장은 아내였지만 재작년부터 이사장직을 이어받아 내가 이끌고 있다.

고양시에 언제 이사 왔나.
2007년 12월에 왔다. 용인에 살다 지역구 국회의원을 준비하면서 고양시로 왔다. 아내 고향이 파주긴 하지만 덕양구에 특별히 연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비례대표였고 다음 선거를 여기서 도전해 보자라고 결심했다. 처음엔 화정15단지에 살다 어울림누리 뒤 신원당마을에 살았고, 2년 전 북삼송 신원마을로 이사했다. 전세로 살다보니 자주 이사하게 됐다. 

집 주변에서 가족과 외식, 쇼핑을 하나.
아내의 활동량이 점점 많아지면서 그럴 시간이 줄어들긴 했지만 초기엔 아내가 카트를 밀고 화정이마트 등에서 장을 보고 외식을 하기도 했다. 요즘엔 현실적으로 힘들다. (대선 기간인 아닌)평소에도 아내가 새벽 5~6시에 나가서 밤 11시가 돼야 집에 들어온다. 특히 당대표가 되고부터는 더욱 바빠졌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토요일 오전이나 일요일 저녁 정도가 가끔 집에 머무는 시간이다.
나는 아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장은 집 앞 중소마트를 이용하기도 하고, 편의점을 가기도 한다. 가끔 원당시장을 찾기도 하고, 삼송하나로마트를 이용하기도 한다. 남자 둘이 있다 보니 밥 해먹기 귀찮아 외식도 자주하는 편이다. 그래서 동네 식당을 잘 알고 있다(웃음).

▲ 92년 신혼여행에서.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무척 적다.
대화할 시간이 없을 정도다. 아내가 워낙 바쁘다 보니 잠들어있는 모습을 보면 한 인간으로서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본인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가고 있고 운명이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사적인 일로 심상정의 시간을 뺏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최대한 배려한다.

고등학교, 대학교 지인 중 저명인사도 있을 것 같다.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친구들이 많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질문을 한다. ‘그렇게 좋은 학교 나와서 도대체 이 사회를 위해 어떤 기여를 했느냐란 질문에 넌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느냐?’ 그것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번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지금 위치에서 내가 사회에 헌신하는 일이다. 사회적 책임감이 없는 엘리트들은 엉터리라고 생각한다.

가사를 전담하고 있다는 게 화제다.
2004년(17대 총선 비례대표) 아내가 처음 국회의원이 되면서부터다. 진보정당의 국회진출은 처음이라 빈구석이 많았다. 선배의원도 없었다. 비공식적인 위치에서 보좌, 수행, 운전 등 5분대기조 생활을 했다. ‘심상정 바로 세우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이 뭐냐’라는 나름의 판단이 있었고, 그때 아내의 보좌 겸 전업주부를 자청한 거다. 시스템이 잘 갖춰지고부터는 보좌역할은 하지 않고 뒷바라지 정도만 한다. 기본적으로 가사를 일차적으로 책임지고 그 외 요청되는 일을 처리한다.
노동운동을 하다가 출판업을 했었고, 40대 중후반쯤 돼서 한의사를 해볼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한의사로서 사회에 기여하느니 심 후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사회의 더 큰 기여라고 판단했다.

부부가 노동운동을 하면서 육아에 전념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아내와는 노동운동을 하다 만났다. 노조에서 소위 지금 말하는 열정페이를 받고 일했기 때문에 둘 다 일을 했지만 소득이 없는 맞벌이었다. 그래서 생활비라도 벌어야겠다며 시작한 게 출판사였다. 아들 3살 때부터 구립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겼는데, 아이를 찾으러 가는 시간이 늦다보니 선생님 퇴근시간을 넘기기도 했다. 우리 아이가 제일 늦게까지 남아있기 일쑤였다.

연애 초 심상정은 어떤 사람이었나.
아내와 연애하면서 성평등의식을 깨우쳤다. ‘진보운동을 한다는 사람이 성평등 문제에 그런 낙후된 생각을 하고 있느냐’는 지적을 꽤 받았다(웃음). 부지불식간 살아온 습관에서 나온 것들이라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내가 가사에 전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연애는 어떻게 시작됐나. 김문수 전 도지사, 박노해 시인의 역할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85년 박 시인이 그러더라. ‘문수 형이 말하길 자네랑 심상정이 엮이면 참 좋겠다고 하더라.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소릴 딱 듣고 나니깐 그때부터 심상정을 마음에 담아두게 됐다. 당시 심상정은 노동운동계의 신화적 존재였다. 국내 최초로 동맹파업을 이끌어낸 사람이다. 정부는 나중에야 구로동맹파업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했지만 당시 아내는 그로 인해 10년간 수배를 당했다.
구로동맹파업(85년)으로 수배자 신분인 사람을 86년 가을 어느 비밀모임에서 처음 봤다. 이후 89년 각자 노동단체에서 활동을 하면서 협조가 필요했고, 그때 비로소 자세히 보게 됐다. 연애는 그때 시작됐다. 3년간의 짝사랑 끝에 성공한 연애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 어린 아들과 함께.

수배자와의 연애가 쉽진 않았을 것 같다.
고민이 많았다. 수배자인 아내가 나랑 연애하다 검거라도 되면 큰일 아닌가. 그래도 87년 6월항쟁 이후 엄혹했던 사회분위기가 많이 풀리면서 연애가 가능했던 거 같다. 6월항쟁이 우릴 연애하게 만들었고 결혼도 하게 했다. 수배자 신분인 사람에게 먼저 차 한잔 하자며 공적대화와 사적대화를 섞어갔다. 그렇게 연애가 시작됐다. 91년 무렵 결혼 얘길 꺼냈는데, 당시 아내가 흠칫 놀라며 답을 안 했다. 그렇게 몇 개월 정도 서먹하게 지내다가 92년에 결혼을 승낙 받았다.

만나보니 무엇이 마음에 들었나.
서로의 가치관이 동일했다. 그리고 일을 하는 역량이 뛰어났다. 여러 매력이 있어 끌리게 됐다. 

6월항쟁이 두 사람을 엮어줬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시민의 힘이 대단한 거다. 그런 힘으로 시대가 바뀌고 생활이 바뀐다. 6월항쟁으로 많은 사람들의 삶이 바뀌었을 것이다. 이번 촛불도 마찬가지다. 시대가 변해야하고 개인의 삶이 나아져야 한다.

아내·엄마로서 심상정은 어떤 사람인가.
현명한 엄마, 현명한 아내인 것은 확실하다. 엄마, 아내뿐 아니라 며느리, 딸로서의 도리를 정확하게 하고 있다. 집에서 밥해주는 아내는 아니지만 각 역할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세 식구의 관계는 아주 좋다. 아들이 성인이 되면서는 모두 친구처럼 지낸다. 신혼 초에는 부부싸움이 다소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다툴 일이 없어졌다.

아내와 자신의 성격 비교를 하면.
심상정은 일단 부지런하다. 가만히 쉬는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정확한 사람이다. 매사에 맺고 끊음이 분명하다. 또한 지혜롭다. 그러면서도 정이 많은 사람이다. 상대적으로 나는 신중한 편이고, 역지사지하려는 성향이 있다. 아내가 보기엔 내가 답답할 수도 있겠다(웃음). 가치관은 비슷하나 기질은 다소 차이가 있다.

아내를 어떻게 부르나. 애칭은 있나.
그냥 ‘여보’라고 부른다. 연애할 때는 나를 ‘형’이라 불렀고, 나는 ‘상정씨’라고 불렀다. 별명이나 애칭으로 부르지는 않았다. 대신 아내 지지자들이 만든 별명은 참 많다. ‘심크러쉬’ 등이 있는데 나는 그중에서 ‘심블리’가 가장 마음에 든다. 

정치인으로서의 심상정은 어떤 사람인가.
아내는 ‘진보정치의 미래를 위해 바쳐진 존재다’란 생각을 한다. 부당한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시대적 요구에 충실하려는 사람이다. 특히 이곳 지역구 주민들이 심상정을 믿고 지지해줬던 것이 큰 힘이 됐다. ‘심알찍’이란 말이 있더라. ‘심상정을 알면 심상정을 찍는다.’ 노동계에서의 ‘철의 여인’이란 강한 이미지가 씌어져 있지만, 심상정을 직접 만나보면 부드러운 사람이란 걸 알게 된다. 정치인으로서 신념이 강한 사람이지만, 곁에서 보면 정이 많은 사람이다. 

▲ 왼쪽부터 남편 이승배, 파마 머리를 한 심상정,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아내가 지금도 사랑스럽나.
아내가 아이와 반려동물을 참 좋아한다. 지역활동 중 아이한테 다가가서 정을 주는 모습을 가끔 본다. 사실 그때가 심상정이 제일 예뻐 보인다.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강아지도 좋아한다. 인간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정과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최근 공적인 문제로 논쟁한 적이 있나.
아내와 논쟁까지 가는 일은 거의 없다. 지지자들의 의견을 청취해 전달해 주는 수준이다. 이번 대선과정 초기, 조금 소극적으로 보인다는 지적을 하긴 했다. 하지만 공적체계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라면 그곳에서 논의되는 게 맞다. 나야 아주 소극적인 의견제시를 하는 정도다.

가장 마음에 드는 심 후보 공약은.
수퍼우먼 방지법이다. 심 후보의 대선 1호 공약이다. 육아문제를 여성의 문제로 돌려서 해결하려는 기존의 방식을 깨는 법안이다. 이것은 육아나 여성공약이라기 보단 노동공약이다. 출산휴가·육아휴직 기간을 확대하고, 육아휴직 급여를 인상하고, 부부가 각각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의무할당제를 도입하는 법안이다. 우리 부부도 육아를 하며 맞벌이를 해왔기 때문에 이 법안이 절실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육아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다. 육아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대선이 양강구도로 가면서, 진보성향 유권자들이 심상정에게 표를 주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지금의 양강구도 프레임은 옳지 않다. 지금에 와선, 적폐세력인 범 새누리당 세력의 집권 가능성은 없다. 심상정, 안철수, 문재인이 선의의 경쟁을 하면 된다. 3개 정당의 공동정부안이 지금은 첨예한 대립 중이지만 대선 이후 결국엔 그렇게 가야한다고 본다. 정권교체는 이미 촛불이 이뤄놓았다. 유권자는 야권 3자 간의 경쟁에서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 후보에게 표를 던지면 되는 것이다. 세 후보 중 심상정이 촛불민심의 뜻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사람 아닌가.

응원메시지를 보내달라.
“심블리 힘내세요. 우리가 있으니까. 우리 가족이 있으니까.”

▲ 13일 고양시 화정동 정의당 지역사무소에서 고양신문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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