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창간 28주년 기념 포럼.


고양신문 28주년 기념, 제59회 고양포럼 특별기획
‘인간의 미래 고양의 미래,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고양신문] 고양신문은 창간 28주년을 맞아 ‘인간의 미래와 지역의 미래’를 생각해보고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인간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가치를 고민하고 이 가치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의 미래를 준비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였다. 59번째 고양포럼을 겸한 이 자리에는 고양에 살고 있는 문화계 거장인 김훈 작가와 정지영 감독, 고양 곳곳에서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는 다양한 공동체의 대표자들이 참여했다. 정지영 감독과 5명의 지역공동체 대표들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김훈 작가의 이야기는 별도의 기사로 정리(http://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4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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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영화감독

● 문화예술인이 많은 고양, 미래 이끄는 새로운 문화 만들자

-정지영-

90년대 중반 고양시에 들어왔으니 고양시에 산지 약 20년 됐다. 고양시에 들어왔을 때 ‘이곳을 문화도시로 키우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일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도시들이 문화도시를 표방한다. 인구가 많은 광역시들은 문화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싶어 한다. 큰 도시일수록 문화가 없으면 삭막해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문화도시의 바탕에는 그들이 자랑하는 역사와 전통이 있다.

그러나 고양시가 600년 도시라고 하지만 역사와 전통을 지닌 콘텐츠는 행주산성과 서오릉 정도다. 다른 도시에 비해 역사와 전통에서 문화도시의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시가 왜 문화예술의 도시일 수 있는가. 그 이유는 ‘사람들’에게 있다.

예전 일이다. 문화도시의 잠재력을 믿고 2005년 ‘고양국제어린이영화제’를 이곳에서 열었다. 하지만 2년 하고 말았다. 시의회가 반대해서 3회 영화제를 열지 못했다. ‘빨갱이 영화’를 영화제에서 상영한다고 예산을 줄 수 없단다. 결국은 시가 예산을 주지 않는 바람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일 이후 나는 고양을 사랑하지만 고양시를 사랑할 수는 없다. ‘어쩌면 그렇게 문화적 마인드가 없는 사람들이 행정을 펼치고 있는가’라고 생각했다.

어린이영화제가 고양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가 나름 있었다. 예전에 ‘공룡전시회’를 순회한 적 있었는데, 고양시가 인구대비 가장 많은 관람객이 왔었다. 이것은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문화체험을 하고자하는 욕구가 매우 강하다는 뜻이었다. 그런 통계를 바탕으로 ‘고양시는 어린이영화제가 필요한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행정가들이 지원을 끊었다.
고양시가 그런 행정을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자체는 각 지역별, 분야별로 문화 커뮤니티가 매우 활발하다. 고양시 사람들은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문화예술인들도 많이 산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아름답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것이 고양시의 자랑이다. 아직까지 고양시는 문화예술의 도시가 아니다. 문화예술인들의 도시라면 맞는 말이다.

고양과 성남(분당)에 예술인들이 많이 사는 이유는 서울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강남에 있던 사람들은 분당으로 갔고, 강북에 있던 문화예술인들이 고양에 들어왔다. 하지만 변두리로 밀려난 예술인들의 힘은 더 강하다. 예술인들은 자긍심이 센 사람들이다.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오히려 미래의 문화를 창출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변두리에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고 주류를 이끌기도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높은 시민의식과 풍부한 문화예술인들을 통해 이곳이 미래 문화를 창출하는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

※ 정지영 영화감독은 1946년 청주에서 태어났다. 한국영화계의 거장이다. 영화 ‘남부군’과 ‘하얀전쟁’으로 주목을 받았고, 최근작으로는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 1985’가 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스크린쿼터 문제에 대해 한국 영화인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했으며, 청와대 앞 1인 시위 선두에 서기도 했다.
 

 

이승희 ‘느티나무도서관’ 관장

● 작은도서관에서 시작돼 수 많은 소모임으로 확장

-느티나무 도서관-

덕양구 행신동에서 작은도서관을 운영 중이다. 관장은 나지만 실제로는 내가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나는 얼굴마담 정도다. 도서관을 연지는 9년째다. 우리들은 도서관의 도자도 모르는 초짜들이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도서관을 만들고 1년 뒤 그 옆에 카페 겸 극장을 만들었다. 이름은 ‘동굴’이다. ‘동네를 굴려라’의 줄임말이다. 이렇게 두 개를 같이 운영했는데, 나중에 이것들이 막 가지치기를 하기 시작했다. 3년째 되던 해, ‘우리가 여기 왜 모였지’ 고민하다가 그때부터 ‘공동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공동체에 대해 어디 가서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첫마디가 ‘기대하지 말라’다. 그만큼 어려운 것이 공동체다. 공동체를 유지해 간다는 것은 수많은 반목과 갈등을 무릅쓰는 일이다.

하지만 그 갈등 사이에서 공존하고 마침내 꽃을 피워낸다. 한마디로 말하면 공동체는 ‘부대끼는 것’이다.

초기 3년 동안 참 열심히 했다. 3년째부터 인제군 작은 마을과 자매결연을 하고 있다. 도시마을과 시골마을 함께 잘 살자는 의미로 시작됐는데, 자매결연으로 지금은 작은 식품회사도 생겼다. 그러면서 행신쿱이라는 행동조합이 생겼고, 행신톡이라는 동네언론이 생겼다. 이렇게 많은 것들이 생겨났고 이 모든 사람들이 모여 이제는 신년회와 송년회를 같이 연다.

지금은 내가 열심히 한다기보다는 동네 분들이 모두 열심히 하고 있다. 주부 뮤지컬단, 아이들 뮤지컬 동아리, 아빠들 독서모임, 금요일 밤이면 청소년들과 도서관에 노는 ‘청소년 불금단’ 등이 활동 중이다.

 

신정현 청년공동체 ‘리드미’ 관장

 ● 유명인이 아닌 내 이웃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청년공동체 리드미-

내 활동은 ‘지금 고양시 청년들은 다 어디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고양시에는 청년들이 33만명이 살고 있지만 막상 그들과 뭔가 하려고 하니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청년들을 소개받았다. 그렇게 모인 8명의 청년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직업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들은 ‘청년들이 모였으니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라며 관성처럼 생각했다. 그럼 뭘 하지. 투쟁?, 조직화? 그런 논의를 하던 중 피로감을 느꼈고, 전혀 다른 결론을 냈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대신 우리들은 청년들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무언가를 들고 나와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나머지 청년들은 그의 인생에 공감했다. 이런 과정에서 서로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8명의 청년들은 ‘관계’가 형성됐다. 이것이 공동체의 시작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목적을 만들었다.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니 상대방이 보였으니, 고양시 모든 사람들이 ‘사람도서관’이 돼서 자신을 소개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것. 그래서 생겨난 것이 사람도서관 ‘리드미’다.

이제는 고양시 곳곳을 찾아다니면 사람도서관을 개최하고 있다. 2년 넘는 시간동안 40여 회를 열었다. 별것 없는 단순한 과정을 통해 40권의 사람책을 만나게 됐다. 순회를 하며 청년들이 공유할 수 있는 빛나는 공간도 찾아냈다.

유명한 사람의 인생만 들여다 볼 것이 아니라 내 이웃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든 게 다르게 보였다. 그런 과정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세상에 없는 비밀학교’를 만들었고, 대안 언론인 라디오를 만들었다. 또 ‘청년들의 삶이 퍽퍽하다면 제도를 바꿔야지’라는 생각에 7개 청년단체가 모여 고양시에 ‘청년기본조례’를 만들었다(지난 3월 통과). 

이 공동체를 통해 느낀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고양시가 내가 사는 마을이구나’라는 점이다. 누구도 우리에게 이런 성과를 강요하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동네를 만들기 위한 본질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동네에서 서로 인사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가 됐으면 한다.

 

 

임영근 인문학모임 ‘귀가쫑긋’ 회장

 ● 소박한 첫 강의가 이제 90번째, 다양한 공부모임 생겨

-인문학모임 귀가쫑긋-

고양에서 가장 활발한 인문학 모임이지만 시작은 소박했다. 친구들 중 아이들 교육 때문이란 핑계로 한두 명씩 고양시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고양시가 사람살기 좋은 동네가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냥 있어선 안 되겠다싶어 작은 힘이지만 고양시가 살기 좋은 동네가 되기 위한 뭔가를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인문학 강좌다.

인문학 강좌를 서울까지 가지 않고 고양에서 들을 수 있게 해보자 해서 매달 개최하고 있다. 어느덧 다음달이면 90번째 강의를 하게 된다. 인문학이라는 게 혼자 하면 어려운데, 강의를 듣고 토론을 하다 보니 공부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더 생겨났다. 그래서 더 깊이 있게 해보자해서 작은 공부모임도 생겨났다. 동·서양 철학, 글쓰기 모임, 호메로스 서사시 읽기 등 혼자하기 힘든 인문학 공부를 여럿이 모여 하고 있다. 이런 모임을 진행하다보니 좋은 분들이 계속 들어오고 활성화 됐다.

귀가쫑긋 모임은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데, 우리들은 회원들이 아닌 사람들도 언제든지 강좌를 들을 수 있게 공개강연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회원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회원들은 의무만 있지 권리는 조금만 누리는 사람들이다’이다. 이것이 우리의 모토가 됐다. 이 모임은 다행스럽게도 꾸준히 한두 분씩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 지속될 수 있을 것 같다.

동유럽 어딘가에 100살 이상의 연주자만 모인 오케스트라가 있다고 한다. 나는 100세 이상의 사람만 함께 할 수 있는 인문학 소모임을 귀가쫑긋에서 만들어보는 것이 내 꿈이다.

 

 

한상수 ‘행복한 책방’ 대표

 ● 책을 중심으로 한 마을 사랑방 꿈꾸는 작은 서점

-행복한 책방-

고양시민이 된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이제 고양은 제2의 고향이다. 나는 독서운동 시민단체이면서 사회적기업인 ‘행복한 아침독서’ 이사장이기도 하다. 고양시에 처음 왔을 때 신도시에는 아직 공공도서관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1999년 백석동에 작은도서관을 하나 만들었다. 그것이 독서운동을 하게 된 계기다. 공공도서관이 하나둘 생기면서 현격히 이용자가 줄어들자 기쁜 마음으로 작은 도서관 문을 닫고 일터를 파주출판단지로 옮겼다.

이후 동네책방에 관심이 생겨 올해 2월 대화동에 20평 정도 규모의 책방인 ‘행복한 책방’란 작은 서점을 열었다. 독서문화가 발전하려면 도서관, 출판사, 서점, 독자들이 함께 발전해야 하는데, 그중 가장 취약한 것이 서점이라고 생각했다. 일산에 처음 왔을 때인 90년대 중반과 비교해 보면 서점 4곳 중 3곳이 문을 닫았다. 우리나라에는 지금 동네책방 하나 없는 곳이 수두룩하고 고양시도 마찬가지다. 동네 책방이 없으면 책 생태계가 온전할 리 없다.

행복한 책방은 보편적인 책방을 지향한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책을 사랑하는 동네 사람들이 책과 사람을 만나는 공간을 꿈꾼다. 산책을 하다가 작은 기대감으로 언제든 들를 수 있는 편안한 공간. 퇴근 후 커피와 맥주를 마시며 마음에 드는 책을 읽거나 마을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기대한다. 책을 중심으로 한 마을 사랑방이 됐으면 한다.

난 고양시가 어느 도시보다 책의 도시가 될 수 있는 인프라가 좋다고 생각한다. 도서관 많고, 인쇄 인프라 훌륭하고, 어느 도시보다 작가와 출판인들이 많이 산다. 책문화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군포시가 그림책박물관 공모 아이디어로 100억원의 교부금을 경기도로부터 받게 됐다는 소식에 배가 많이 아팠다. 부러웠다. 고양시에도 열정적이 도서관 사서와 독서활동가, 작가, 독자들이 많다. 그렇지만 도서관 자료구입비와 1인당 장서 수준은 경기도 꼴찌 수준이다. 사서 수도 하위권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심각한 불균형은 책문화가 발전하는 장애요인이다. 멋진 구슬이 많지만 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디지털 시대에 책의 가치는 훨씬 중요해졌다. 고양시가 일상에서 자연스레 책을 만날 수 있는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 책문화 공동체가 됐으면 좋겠다.
 

 

윤주한 ‘통일을 이루는 사람들’ 이사장

 ● 통일운동이야말로 풀뿌리 지역운동으로 진행돼야

-통일을 이루는 사람들-

많은 이들이 공동체를 꿈꾸는데 저희보다 큰 공동체를 꿈꾸는 곳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는 민족공동체, 통일을 꿈꾸는 사업을 고양시에서 하고 있다. 고양시가 통일운동을 남다르게 할 만한 곳인가란 질문이 있는데, 경기도에 알아보니 고양시가 유난히 통일운동을 하는 단체가 많다고 한다. 역시 접경지역이라는 지정학적 이유 때문일 게다. 나는 일산서구 가좌동에서 태어나 송포초등학교를 나왔다. 어릴 적 라디오도 없던 시절, 유일하게 들리는 방송이 있었는데, 북한의 대남방송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삐라가 학교 운동장을 덮을 정도로 많았다. 집안 어르신 중에는 개성으로 소풍을 다녀오신 분도 있다.

우리 단체는 생긴 지 얼마 안됐다. 작년 초에 결성 돼 벌써 10기 회원이 활동 중이다. 200명 정도의 정회원이 있다. 우리 회원은 가입원서만 쓴다고 가입되지 않는다. 반드시 소정의 교육을 받아야 정회원이 될 수 있다.

통일 시민교육은 5개 정도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데, 그 중 한 프로그램의 강사가 이번 새정부의 통일부 장관이 됐다. 이미 약속된 강의가 있어 다음 회 예비회원들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특강을 들을 수 있을 듯하다.

통일은 정말 어려운 주제다. 그래서 통일운동이 풀뿌리 운동이 돼야한다고 본다. 지금껏 정권이 바뀌면 통일 정책이 냉탕온탕을 오갔다. 그것은 시민역량이 충분하지 않아서인 것 같다. 정권이 아무리 바뀌더라도 통일에 대한 바른 인식을 시민들이 가지고 있으면 정책도 흔들리지 않고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통일을 열망하고 학습하고, 운동하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단순히 통일 자체를 열망하기보다는 통일의 방식, 통일 이후 어떤 국가여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고양땅에 사는 우리 모두가 통일을 깊이 있게 고민하고 열망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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