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지역발전위원회 서은택 위원장

<당신은 어떤 시민인가>
이웃과 함께 일상의 현장에서 시민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어떤 시민’에게 다가가는 시간. 두 번째 주인공으로 고양에서 오래된 마을 중 하나인 행주마을의 변화를 위해 뛰고 있는 행주산성지역발전위원회 서은택 위원장을 초청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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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마을 토박이로서의 추억과 고민
주민들과 머리 맞대고 마을 살길 모색
“원주민들은 100만 고양시 만든 밑거름”

 

고향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는 행주산성지역발전위원회 서은택 위원장


내가 태어난 곳은 고양군 지도면 행주내리, 사적 56호 행주산성이 자리한 마을이다. 당시 고양은 전형적인 농경사회였다. 한강이 만들어준 평야는 기름졌고, 일찌감치 정비된 농수로 덕분에 천수답을 면해 다른 지역에 비해 사정이 좋았다. 너나 내나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행주벌판의 쌀 이야기만 나오면 어깨가 펴질 만큼 자부심이 있었다.

교사로 일하셨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시동생들과 자식 3형제 뒤치다꺼리가 온전히 어머니 몫으로 남았다. 제사가 자주 돌아오는 시골 대가족의 대소사를 어머니가 혼자 짊어진 것이다. 혈연관계의 틀에 짓눌린 어머니를 위해 나 자신이라도 짐이 되지 않게 살아가야겠다고 일찍부터 맘을 먹게 됐다. 아버지와의 애틋한 기억이 없고, 할아버지 집과 삼촌 집을 오가며 떠돌이처럼 자랐다는 외로움이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다.

가족 공동체의 짐 짊어진 어머니의 삶

어머니는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식들과 집안 남자들 아침밥 먹여 학교와 일터로 내보내고 설거지를 하면 새참과 점심, 저녁이 이어졌다. 78세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자신을 위한 시간을 단 한순간도 살지 못하신 것 같다. 그러한 책임감은 어떤 마음에서 나온 것일까.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몫까지 감당하신 어머니의 삶이 새삼 존경스럽다.

보다 넓은 세계로 나가기 위해 서울로 학교를 다녔다. 행주산성 언덕에서 곡산역 고개를 넘어오는 기관차 불빛이 보이면 능곡역까지 한달음에 뛰어가곤 했다. 직장에 들어간 후에는 가정과 가족에 대한 배려보다는 조직생활에만 충실했다. 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고서도 직장생활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족을 등한히 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부처장을 마지막으로 2012년 퇴임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뒤늦게 돌이켜보니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본의 아니게 마음에 상처를 준 것 같다. 지난 시절을 생각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주민 고령화, 이주민과의 부조화 등 과제 산재

내 고향 행주마을 이야기를 해 보자. 나는 행주에서 태어나 몇 번 이사를 했지만 고양땅을 떠나본 적은 없다. 예전 행주산성은 서울 북쪽의 유명한 나들이 코스였다. 봄·가을이면 서울 학교에서 행주산성으로 소풍을 왔다. 지금은 행주산성의 중요성과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

마을의 퇴락은 행주산성의 쇠퇴보다 훨씬 심각하다. 자연부락이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우리나라는 개발과 개혁을 관이 주도한다는 관습이 몸에 밴 것 같다. 관이 주도하지 않으면 주체적으로 뭘 해 볼 생각을 전혀 못한다. 최근 관에서는 주민들의 자치활동과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는 정책을 펴지만 전통마을은 그런 기회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다. 주민들의 전반적인 고령화와 맞물려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외지에서 들어온 이들과의 부조화도 문제다. 행주내동의 경우 150가구 390명이 거주하는데, 외지인 비율이 50%에 이른다. 대개 외식업을 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식당 경기도 예전과는 다르게 위축됐다.

1990년도 중반에 건설된 자유로 영향도 컸다. 자유로는 한강변 덕양산 기슭에 자리한 마을과 안쪽의 넓은 농경지 사이를 잘라버렸다. 살림터와 일터 사이가 단절되면서 자연스레 마을의 활력도 꺾여버렸다. 행주마을 주민들에게는 어마어마한 폭력이 아닐 수 없다.

지역발전 위한 비영리단체, 사회적기업 조직

현재 마을 구성원의 45%를 차지하는 원주민 중 60% 이상이 70대 노인이다. 스스로 변화의 계기를 만들 기반이 없다고나 할까. 외지인들 힘을 보충해서 마을을 바꿔보려 시도했지만, 원주민과 외지인 사이의 소통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오랜 세월 혈연사회에서 살아온 소통의 어려움이 원주민들에게 남아있는 것이다.

마을을 지키던 노인이 하나둘 돌아가시며 빈 집이 늘어간다. 마을의 쇠퇴를 이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뜻을 함께하는 고향 사람들과 함께 ‘행주산성지역발전위원회’라는 비영리단체를 조직했다. 또한 실질적인 자립사업을 펼치기 위해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행주치마’를 설립하려고 노력 중이다. 사실 비영리단체니 사회적기업이니 하는 말들이 여전히 주민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들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면 마을이 살아남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하나하나 헤쳐 나가고 있다.

행주산성의 현대화와 규제 완화 절실

마을을 대표하는 사적지 행주산성은 70년대 성역화 작업 이후 변화가 없다. 탐방객들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행주산성 곳곳을 살펴보면 당장 개선돼야 할 사항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고양둘레길로 조성한 행주산성역사누리길도 덕양산 전체를 순환하지 못하고 중간에 잘렸다. 창릉천과 접한 행주산성의 뒷면은 쓰레기가 뒤덮고 있다. 지금이라도 마을 반대쪽 덕양산 경사면을 정비하고 관광상품을 발굴해 행주내동 마을도 덕을 좀 보았으면 한다.

행주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문화재구역 관리법, 그린벨트, 군사보호구역 등 이중 삼중의 규제에 짓눌려 있다. 최근 덕양산 정상 부근에서 삼국시대 석성 유적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주민들이 지레 겁부터 먹는 이유가 있다. 각종 규제에 치여 이웃들이 떠났다는 피해의식 때문이다. 시대에 맞는 공동체의 발전계획을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

마을 입구를 메우고 있는 식당들로 도로정체가 심해 큰 문제다. 항공사진을 보면 마을에 있는 채소밭과 녹지공간까지 식당 주차장이 돼 버렸다. 그러다보니 새마을도로로 만들어진 협소한 마을길이 몸살을 앓고 있다. 벌써 10년째 겪고 있는 불편이다. 도로 확장과 공용주차장의 신설이 시급하다.

나는 주민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들 스스로 우리의 권리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서주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맥없이 한탄만 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실행에 옮기자고 설득한다.

덕양산 둘레길을 연결하고, 창릉천변 야생화단지를 조성하고, 행주산성 후문을 만들고, 산성 입장료를 폐지하고 주차장을 전면 개방하는 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마을 주민들과 함께 구상해 고양시에 요구하고 있다. 또한 고려시대 원나라 태후였던 기황후가 태어난 생가터가 행주마을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극 알려 관광 상품화 하자고 고양시에 건의하고 있다. 판문점과 임진각, 파주예술인마을, 출판도시, 일산한류월드로 이어지는 관광벨트의 정점에 행주산성이 자리할 수 있도록 재평가해달라는 것이다.

대곡소사 노선에 행주산성역 반드시 설치돼야

현재 추진 중인 대곡소사 복선전철 노선에 반드시 행주산성역을 설치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리고 있다. 노선이 행주산성 아래로 지나가는데 한탄스럽게도 행주산성역이 계획에서 빠졌다. 신설노선의 부천시 구간에서는 역이 3개나 생긴다. 고양시는 기존 능곡역과 대곡역만 이용한다. 땅만 내 주고 신설역이 안 생기는 것이다. 행주산성에 전철이 들어오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선 안된다. 현재 2021년까지 행주산성역 준공을 요구하는 고양시민 9000명의 서명을 받아 중앙 부처에 전달하고 있다.

고양시가 100만 도시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 이들이 누군가. 바로 원주민들이다. 원주민들이 대대로 이 땅을 지켜왔고, 개발 과정에서 희생을 떠안았다. 신도시에 들어와 사는 이들이 어려움에 처한 원주민들의 현실을 돌아봐주었으면 좋겠다. 자생 노력이 꺾이지 않도록 함께 힘을 보태달라.

서은택 위원장이 지역주민들과 함께 행주산성역 준공 요구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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