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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과 자본의 욕망 벗어나 지속가능한 건축 고민해야”건축가 이병훈이 들려주는 ‘비엔나, 도시 이야기’
  • 유경종 기자
  • 승인 2017.09.08 23:09
  • 호수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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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는 사회주택 전문가
건축가의 눈으로 본 비엔나의 역사와 문화

 

비엔나에서 활동하는 사회주택 전문가 이병훈 대표(사진 오른쪽)가 서울건축비엔날레를 찾아 ‘비엔나, 도시 이야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왼쪽은 이병훈 대표와 함께 내한한 오스트리아 건축가 쑴니츠씨.


[고양신문]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는 사회주택 전문가 이병훈 예아 아키텍츠 대표가 지난 7일 서울 돈의문 도시건축센터에서 ‘비엔나, 도시 이야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지난 2일 개막한 2017 서울도시건축주간 해외 전문가 특별 초청강연 프로그램으로 열린 이날 강연에서 이병훈 대표는 건축과 도시 설계의 관점에서 비엔나시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회주택 정책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병훈 대표는 고양신문이 진행한 해외 기획취재(사회주택의 선진국, 오스트리아에서 배우다)의 취재원이자 안내와 통역을 맡으며 고양신문과 인연을 맺은 바 있다. 강연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다.

두 얼굴의 도시, 비엔나

비엔나는 무척 흥미로운 도시다. 유럽을 600년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적 전통을 품은 도시이면서, 동시에 모더니즘의 산실이다. 중세 도시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도시이면서, 건축가 아돌프 로스, 오토 바그너가 현대적 건축의 문을 열어 제낀 곳이기도 하다. 비엔나에는 모차르트로 대변되는 클래식 음악가들만 살았던 게 아니다. 사상가로는 비트겐슈타인과 프로이트와 슘페터, 화가 클림트와 에곤 실레,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등이 모두 비엔나 출신이다. 가장 고전적인 도시에서 모더니즘의 혁명이 완성됐다는 것이 비엔나의 역설이자 자산인 셈이다.

역사가 축적된 도시 형성

도시 발전사를 공부할 때도 비엔나는 훌륭한 모델이다. 랜드마크인 슈테판 성당을 중심으로 건물들의 외형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파사드를 형성하고, 지붕들은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낸다. 과거 도시를 두르고 있던 성곽을 허물고 원형의 대로(링 슈트라세)를 만들어 도시의 기반이 되는 근대적 건축물들을 만들었다. 각각의 개별 건물들이 합의와 규정 안에서 조화롭게 어울려 하나의 도시를 만들어내는 전형을 비엔나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비엔나를 관통하는 도나우강의 치수 정책도 눈여겨볼 만하다. 넓은 범람원을 형성했던 도나우강의 중앙에 21km에 달하는 긴 인공섬을 조성해 선박이 다니는 본 도나우,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뉴 도나우와 호수 도나우, 그리고 도심을 끼고 도는 운하 등 4줄기의 강물로 만든 것이다. 도나우 인공섬에서는 매년 성대한 여름축제가 열리고, 강 하구는 풍요로운 국립공원과 연결돼 도시의 삶의 질을 높여준다.

삶을 관통하는 화두, 지속가능성

비엔나 사람들은 대한민국 사람보다 훨씬 여유롭게 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훨씬 높은 국민소득을 올리는 이유는 뭘까? 나는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늘 바쁘게 뭔가를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버리고 다시 새 것을 만든다. 사회적으로 자산이 축적되지 않는 것이다. 반면 비엔나 사람들은 수십 년 안에 사라질 것은 아예 만들지를 않는다. 그 시간에 여유롭게 쉬는 편을 택한다. 대신 느리지만 오래 지속되는 뭔가를 만든다. 허비되는 노력이 없는 것이다.

오늘날 건축문화를 바라보는 하나의 중요한 기준도 바로 지속가능성이다. 이로 인해 ‘지속가능건축’이라는 용어가 화두로 떠올랐다. 지속가능건축은 또다시 에너지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지속가능성으로 나뉜다.

에너지적 지속가능성이란 말 그대로 건축과 에너지의 효율적 소비를 결합시킨 개념이다. 1992년 리우회담 이후 지속가능한 환경보전에 대한 논의가 전 지구적으로 전개됐다. 건축도 이에 발맞춰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 결과 에너지를 적게 쓰는 로우 에너지하우스, 건물이 품고 있는 에너지를 최대한 지켜내는 페시브 에너지하우스, 스스로 적극적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액티브 에너지하우스 등이 속속 등장했다.

에너지하우스의 기본은 열 효율을 위해 건물 전체를 감싸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신선한 공기의 공급이 해결과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첨단의 공조시스템을 통해 열은 머물고 공기는 순환하도록 하는 게 기술력의 핵심이다. 궁극적으로 석탄과 석유 등 화석 에너지로부터 자유로운 건축물을 지향하는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다.

사회적 지속가능성은 다시 사회문화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정치적 지속가능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는 건축물을 인식하는 한 사회의 사회·문화적 인식수준과 연관된다. 그런가 하면 사회정치적 지속가능성은 계층적 입장에서 건축물의 구조와 효용을 고민하는 태도다.

뿌리 깊은 사회주택 정책

사회정치적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비엔나는 무척 의미 있는 모델을 보여준다. 사회민주주의가 집권한 오스트리아, 특히 비엔나는 도시 노동자와 중산층이라는 계층적으로 명확한 대상을 전제로 주택정책을 설계했다.

1927년 지어져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칼 맑스 호프는 사회적 주택의 상징적 건물이다. 길이가 1.1km에 달하는 대형 빌라로 지어진 이 건물에는 1382가구, 5000여 명의 도시 노동자들이 거주할 수 있었다. 칼 맑스 호프의 벽면에는 4개의 조각상이 장식돼 있는데, 각각 자유·해방, 보육, 육체문화, 계몽을 상징한다. 이 네 가지 주제는 도시 노동자 계층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와 일치한다. 그리고 이런 과제들은 건축물 안팎에 탁아소, 샤워장, 세탁장, 유치원 등의 기능적 공간들을 배치하는 효시가 됐다.

건축의 노동해방적 설계라는 측면에서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자건축가 마가레테 쉬테 리오츠키도 기억해야 한다. 그녀는 사회주택의 부엌(프랑크푸르트 부엌)을 설계했다. 도시 노동자 계층이 가사활동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하도록 설계된 프랑크푸르트 부엌은 오늘날 세계인들이 사용하는, 붙박이 가구를 활용한 시스템 키친의 원형이 됐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현재 비엔나 시에서는 사회적 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이 45%에 이른다. 비율만 높은 게 아니라 관리와 비용부담 등 모든 측면에서 비엔나 사회주택의 만족도는 항상 높다.

비엔나는 사회주택 정책을 담당하는 기관을 3개 관청으로 나눠 전문성을 세분화했다. 비엔나 주택청은 사회적 주택과 관련한 행정과 관리를 총괄하고, 비엔나 주택기금청은 현상설계를 통해 사회적 주택을 새로 짓거나 재생하는 일을 담당한다. 마지막으로 비엔나 주거연구소는 사회 구성원의 변동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발맞춰 사회적 주택을 보다 합리적이고 현대적으로 설계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비엔나 사회주택은 경제성과 사회성, 지속가능성, 친환경성이라는 4가지 지향점에 걸맞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건축문화는 새로운 도시를 만든다

건축문화는 건설이나 토목이나 부동산이 아니다. 뿌리 깊은 건축문화는 ‘도시’를 만든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들어서 비로소 건축기본법이 제정되고 국가건축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올해 서울시에서 최초의 건축 비엔날레를 여는 것도 건축문화를 구축해 가치 있는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일 것이다. 올바른 건축문화가 만들어지면 더 이상 건축이 부동산이나 자본의 욕망에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게 될 것이다. 함께 건축을 고민하며 보다 나은 미래의 삶을 만들어가자.

 

 

유경종 기자  duney78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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