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전쟁을 깨우지 않는다”
“총알이 어린이라고 피해가나요?”
미국의 여성사회학자가 중국 어린이들에게 “왜 총쏘기 연습을 하냐”고 물었을 때 들은 대답이었다. 그 때 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어린이들까지 동원하여 군사훈련을 하는 비인도적인 나라라고 사회주의 국가를 싸잡아 비판하던 것이 상식이었던 당시, 그 어린이의 한마디에 나의 상식이 뿌리까지 깨져버렸다. 무엇이 비인도적인가 말이다. 누가 어린이를 지킬 수 있는가? 어른들이 저지른 전쟁에서 자기를 지키기 위해 군사훈련을 달갑게 받아들이는 아이들.
전쟁은 많은 것을 앗아간다. 몽실 언니처럼 부모를 앗아가고, 먹을 것을 앗아가고, 내 팔과 다리의 한쪽을 앗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더 큰 것은 마음을 앗아가는 것이다. ‘꿈꾸는 것’을 앗아간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커서 뭐가 될래”라고 잘 묻는다. 그러면 아이들은 이 갈래 저 갈래로 생각을 펼친다. 그 여러 갈래의 생각들이 햇볕을 받으며 자라는 나무 가지처럼 뻗어나가며 아이들이 자란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냥 크는 게 아니다. 테레사 수녀는 자기는 아이들은 매일 안아줬기 때문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꿈과 희망이 없는 아이들은 자라기를 포기한다. 흔히 시설 병이라 불리는 병은 그 사회의 일반적인 어린이들보다 좋은 것을 먹고 입고 누리면서도 성장하지 않는 병이다.
꿈이 없으면 아이들은 자라지 않는다. 꿈은 아이들을 자라게 하고, 아이들은 어른들을 자라게 한다. 그렇게 아이들이 커나가기 때문에 어른들은 ‘내일’을 얘기한다. 전쟁은 아이들의 꿈을 가져가 버린다. 어른들의 꿈도 가져가 버린다. 인류의 미래가 나무가 없는 황토 사막이 되어 황사바람만 휘몰아 댈 것이다.
‘나는 평화를 꿈꿔요(비룡소)’는 전쟁을 겪은 아이들이 불안감, 공포, 죄의식에 휩싸이게 되어 정신장애인이 되며, 그 상처는 심신장애, 불안, 우울증, 자폐증 등으로 나타나고, 이를 치료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밤마다 나쁜 꿈만 꾼다’는 카지미르, ‘나는 고통을 받으러 태어났어요’라고 말하는 자나, ‘이제는 뭔가 느낄래야 느낌이 없다’는 알리크. 전쟁이 준 공포와 절망을 아이들이 쓰고 그려낸 이 책은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큰가를 느끼게 한다.
“아들아, 전쟁을 영원히 쫓아 버릴 수는 없단다. 가끔 잠을 자게는 할 수 있지. 전쟁이 잠을 잘 때는 다시 깨어나지 않게 모두들 조심해야 한단다.”
“내가 초롱이랑 너무 시끄럽게 놀아서 전쟁을 깨웠나요?”
“그건 아니란다. 아이들은 전쟁을 깨우지 않는단다.”
‘시냇물 저쪽(마루벌)’에 나오는 금강이와 부모의 대화이다. 초롱이랑 만나 놀던 시냇가에 가시 울타리가 쳐지고, 서로 만날 수 없게 된 금강이는 슬프다. 그 금강이가 가시 울타리를 따라 한참을 걷고 있는데 어디서 소리가 들린다.
“초롱이가 가시 울타리에 작은 구멍을 내고 시냇물을 건너오고 있었던 거예요.”
시냇물 저쪽에서는 전쟁의 아픔을 딛는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 ‘가시 울타리에 작은 구멍을 내는’ 일이 필요하다. 작은 구멍을 만들지 않으면서 전쟁을 말하는 것은 전쟁의 참상을 감상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조카애가 자판을 다다다다 두드리며 게임을 하고 있다. 컴퓨터 자판기를 열심히 두들기는 힘만큼 모니터에 적군은 죽어가고 아이는 즐겁다. 작년 한동안 학생 사이에서 유행하던 ‘애자 같다’(장애자 같다)는 욕. 왕따 당하는 최영대를 방관하는 아이들(‘내짝궁 최영대’). 이것이 전쟁을 키우는 바탕이다. 이웃과 다른 생각에 대한 편견, 선입관, 무관심에 구멍을 내는 일을 부지런히 하는 것. 이것이 가시 울타리에 작은 구멍을 내는 일이고, 아이들 가슴에 평화를 심는 일이 아닐까?
<푸른꿈도서관 어머니 독서모임 회원>
<반전 도서 목록
평화는 힘이 세다 : 폭력 - 세계어린이와 함께 하는 시민학교 1(푸른숲)
여섯 사람 (비룡소)
왜?(현암사)
시냇물 저쪽(마루벌)
나는 평화를 꿈꿔요(비룡소)
달보다 멀리- 한마당
전쟁(비룡소)
새똥과 전쟁(교학사)
냄비와 국자 전쟁(소년한길)
전쟁은 왜 일어날까?(다섯수레)
무기 팔지 마세요(청년사)
전쟁과 소년(푸른나무)
바람이 불때에(시공사)
독수리의 눈(우리교육)
평화는 어디에서 오나요(웅진닷컴)
몽실언니(창작과 비평사)
핵전쟁뒤의 최후의 아이들(유진)
어머니의 감자밭(비룡소)
그때 나는 열한살이었다(계수나무)
전쟁놀이(계수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