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놀라운 성과 도출
세계의 눈과 귀 킨텍스에 모여
판문점에서 채택한 한반도 평화선언
접경도시 고양에 훈풍 선물할 듯 

 

남과 북의 정상이 손을 맞잡고 분단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을 가볍게 뛰어넘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예전엔 친척들에게 고양시에 산다고 하면 ‘북한이 코앞인데 무섭지 않냐?’는 질문이 돌아오곤 했죠.” “일산신도시에 입주하고 나서 ‘북한 대포 공격 방어막으로 지어진 도시’라는 괴 소문을 들었어요. 근거 없는 얘기라고 무시했지만 기분이 좋진 않았어요.”
고양시에서 오래 거주한 이들이라면 한두 번쯤은 들어봤을 이야기다. 종전 65년 동안 한반도 전체가 분단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있지만, 소위 접경지역이라 부르는 고양의 경우는 그 강도가 유독 심했다.

이제는 그 불안과 공포를 온전히 떨쳐버릴 수 있으려나.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고양시민들의 마음에 따뜻한 훈풍이 불고 있다. 분단 트라우마가 눈 녹듯 사라지고 그 자리에 평화와 번영의 꽃이 피어나는 꿈이 무르익고 있다.

지난 27일 오전,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두 발로 넘어 대한민국 땅에 발을 디뎠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김 위원장의 즉흥적 권유에 화답해 함께 손을 잡고 잠시 북측 지역으로 넘어갔다 돌아왔다.
저녁 만찬 전 양 정상이 함께 발표한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역시 예상과 기대를 훌쩍 뛰어넘어 민족의 화해와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담아냈다. 종전 65년 만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추진하기로 약속했다.

메인프레스센터 차려진 킨텍스, 국제적 명성 얻어

이번 정상회담은 고양시에도 획기적인 변화의 기회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가시적으로 킨텍스가 이번 회담을 계기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세계적 빅뉴스를 전하려고 각국의 외신 기자들이 고양 킨텍스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고양 킨텍스를 중심으로 숨가쁘게 이어진 이번 보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최초, 최대라는 타이틀을 양산했다. 우선 취재진 규모가 단일행사로는 역대 최대다. 국내 보도진 2000여 명과 해외 35개 국 1000여 명의 보도진이 동시에 한 장소에서 뉴스를 송고하는 진풍경을 연출하며 고양시의 월등한 전시컨벤션 인프라를 세계인의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시켰다는 평가다.

고양, 평화통일 중심도시로 부상

남북평화회담 메인프레스센터가 차려진 고양 킨텍스와 판문점은 직선거리로 채 50㎞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가까운 거리다. 이토록 가까운 거리는 오랜 시간동안 고양땅을 군사적 긴장감이라는 굴레에 묶어두었다. 고양시는 오랜 시간 ‘접경지역 콤플렉스’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 오늘날 104만 인구를 거느린 경기북부 최대 도시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쪽으로는 파주를 지나 군사분계선이, 서쪽으로는 한강 하구가 막혀 도시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종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되면 군사분계선과 가깝다는 핸디캡은 하루아침에 고양시가 지닌 가장 큰 장점으로 바뀔 전망이다. 판문점 선언에서 언급한 군사적 긴장 해제, 한강 하구 평화수역 선포, 경의선 철로 연결, 민간교류 확대 등이 하나같이 고양시에 직접적인 변화를 견인할 조치들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남북경협이 활성화되면 고양시는 자연스럽게 중심 배후도시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100만이 넘는 고양시의 인구와 풍부한 도시자산은 남북 경협뿐 아니라 문화예술교류와 국제적 비즈니스 교두보로서 고양시의 성장 가능성을 기대케 한다. 경의선 철로가 열리고 한강 하구 뱃길이 뚫리면 남과 북을 오가는 이들을 겨냥한 다양한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렇듯 한반도 평화가 가져다주는 선물은 곧 고양시가 그토록 염원하는 자족도시의 꿈과 연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가능하다.
 

고양시의 시민단체와 정치인, 지역주민들이 정상회담 메인프레스센터가 마련된 고양 킨텍스 앞에서 평화통일염원 인간띠 잇기 행사를 펼치며 회담 성공을 기원했다.

 
개성공단·실향민·탈북민 “마음 설레”

남북경협의 꿈을 이야기할 때 우선적으로 살펴야 하는 이들이 있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며 찬서리를 맞은 개성공단사업주들이다. 현재 이들은 공단이 전격 폐쇄된 뒤 극한 상황을 버텨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다시 개성공단의 기계를 돌리는 꿈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북한 개성공단만큼 좋은 입지를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고양시 소재의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9곳이다. 이희건 경기개성공단사업 협동조합 이사장은 “오랜 공백의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의 문이 다시 열리면 기업들이 100% 재입주할 것으로 본다”면서 “그동안 평화통일특별시를 외쳤던 고양시도 보다 실질적이고 파격적인 교류협력방안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제적 변화보다 더 큰 선물은 고양시민들이 누릴 정서적 변화일지도 모른다. 특히 고양땅의 토박이들은 이번 정상회담이 지난 선례를 반복하지 않고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변화의 토대를 마련해주기를 누구보다도 고대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고양땅은 분단을 전후해 북한땅에 가족을 두고 내려온 실향민 다수가 터를 잡은 곳이다. 실향민이 아니더라도 나이가 지긋한 토박이들은 경의선을 타고 개성을 비롯한 지금의 북녘땅을 이웃마을로 드나들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고양시에서 민간 통일운동을 이끌고 있는 ‘통일을 이루는 사람들’ 윤주한 대표는 “스스로를 가두었던 분단 트라우마를 뛰어넘어 북측의 형제들과 만나 그동안 꿈꾸었던 일들을 하나씩 펼쳐보고 싶다”는 기대감을 표했다.

평화체제 전환을 기대하는 마음은 북한이탈주민 역시 간절하다. 현재 고양시에는 경기북부지역에서 가장 많은 약 500여 명의 북한이탈주민이 살고 있다. 탈북청소년 40여 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한벗학교(덕양구 흥도동) 김윤희 교장은 “통일이 다가오는 것 같은 기대감에 며칠 동안 마음이 설렌다”면서 “북한이탈주민 청소년들은 남한과 북한의 문화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이들”이라면서 남한사회가 조금만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평화 향한 걸음, 우리가 먼저 시작해야”

변화의 희망이 건강한 결실을 거두려면 우리 스스로 평화체제에 걸맞는 시대정신을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주한 대표는 “고양시에서 분단의 비극을 상징하는 대표적 공간이 바로 금정굴”이라고 지적하며 “우리 스스로 초래한 냉전의식을 떨쳐버리려면 하루 빨리 금정굴에 평화 공원을 세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양평화누리 강경민 상임대표 역시 가까운 곳에서의 실천을 강조했다. 그는 “가장 먼저 물꼬를 터야 할 일이 북한동포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라고 말하며 “국가적 차원의 거대한 지원을 기다릴 게 아니라, 작은 규모라도 고양시가 앞장서고 고양시민이 참여하는 인도적 지원사업을 하루빨리 펼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일반시민이 참여하는 운동이야말로 통일을 앞당기는 실핏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통일부 어린이기자단 회원들이 고양 킨텍스에 차려진 메인프레스센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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