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사관 안뜰.

<고양의 이웃이었던 정범구 주독한국대사가 SNS를 활용해 흥미로운 일상을 들려주고 있다.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고양신문] 방금(7월 14일) 프랑스대사관 국경일 리셉션에서 돌아왔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기리는 국경일 행사다. 주말에 열리는 행사라 사람들이 얼마나 왔을까 궁금해 하며 행사장에 도착하니 줄이 길다. 프랑스대사관은 브란덴부르크 문 바로 앞에 있는데 축하객 행렬이 광장까지 늘어서 있다. 독일에서 차지하는 프랑스의 비중과 역할이 느껴진다.

대사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주재국 행사뿐 아니라 이곳에 나와 있는 다른 나라 외교사절들 행사에도 참가하는 것이다. 국경일 행사를 비롯해 각국 국가원수나 고위 정치인들이 독일 방문 시 갖는 행사에도 가끔 얼굴을 비춰야 한다. 그리고 자국과 이해관계가 있는 대사들끼리는 서로 식사에 초대해 사교의 시간을 갖는다. 나도 그 사이 터키대사와 중국, 일본대사를 각각 관저로 초대해 좀 더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외교관들 생활은 뭔가 화려할 것이란 생각을 막연히 했었다. 턱시도에 나비 넥타이를 매고 샴페인 잔을 든 채 연회장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는…. 가슴이 깊이 패인 드레스를 입은 부인들 사이에서 풍기는 짙은 향수 냄새. 영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이 마구 뒤섞여 왁자지껄한 풍경. 그 속을 헤엄치듯 다니는 외교관. 혹시 외교관에 대해서 이런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아님 내가 너무 옛날 영화를 많이 봤던지)

그런데 막상 해보니 아니다. 과도한 시간 외 노동에, 함께 있는 동안에는 속내를 감추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 고객만족을 늘 최우선 목표로 하는 세일즈직 종사자들의 고충이 절절히 느껴져 온다.

대사들끼리 관저초청 행사는 보통 만찬을 중심으로 한다. 대략 오후 7시경(중남미 대사들은 좀 늦다. 7:30~8:00) 시작해 10시 넘어서까지 열린다. 1대 1 초청이면 좀 나은데 여럿을 함께 초청하는 경우는 대화 주제도, 언어도 엉킨다. 얼마 전 어느 만찬 행사에서 만난 아이슬란드 대사와는 공통의 주제를 찾는 게 어려워 약간 뻘쭘한 시간이 되기도 했다.

나는 영어 보다는 독일어가 편한 편이라 영어로 대화하는 그룹에 끼게 되면 주로 듣는 편이 된다. 특히 일부 아시아, 아프리카 대사들 영어발음은 잘 알아듣기가 힘든데, 그걸 빠르게, 그리고 오래 말하는 상대를 만나면 아주 피곤하다. (외국대사들 중에는 말하기를 아주 즐겨 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외국어 발음만 좋다면 들어주겠는데…)

만찬행사가 끝나 11시쯤 관저로 돌아와 하루 근무 시간을 계산해 본다. 아침 8시반에 출근했으니 얼추 14시간은 근무한 셈이다.

지금쯤 아마 프랑스대사관에서는 행사 뒷설거지가 한창이겠다. 독일사회 주요 인사들과 외교사절들이 화사한 언사와 몸짓을 주고받던 연회장엔 음식 찌꺼기들과 산더미 같은 설거지거리가 남았을 것이다. 황금같은 주말,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했던 방문객들도 자신들의 줄어든 자유시간을 보충하러 허겁지겁 돌아갔을 것이다.

파티, 파뤼, 리셉션의 뒷모습은 이쯤에서 줄이도록 한다.
 

정범구 주독한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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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대사(맨 앞쪽 그림 앞 여성)에게 인사하기 위해 늘어선 축하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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