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이야기 ⑨대서

[고양신문] 7월 23일은 24절기 중 열두 번째 절기인 대서(大暑)다. 말 그대로 큰 더위다. 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가장 심해지는 때다. 올해는 장마답지 않은 장마가 잠시 비를 내리고 북쪽으로 밀려올라가는 바람에 일찍 폭염이 시작됐다. 비가 오지 않아 공기 중 습도는 낮아져 무더위는 조금 가시고 불볕더위가 연일 계속된다. 뜨거운 햇빛만 피하면 그나마 좀 살 것 같지만 그늘만 찾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태양을 피하고 싶을 뿐이다. ‘대서 더위에 염소뿔이 녹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니 얼마나 무시무시한 더위인가.

대서에는 중복이 들어있어 맛있는 음식을 챙겨 계곡이나 산을 찾아가 노는 풍습이 있었다. 계곡물에 커다란 수박 하나 담가뒀다가 계곡물에 발 담그고 수박을 쩍 쪼개서 한입 베어물면 더위가 한결 가실 것 같은 느낌이다.

복날에는 복달임으로 뜨끈한 삼계탕이나 오리탕, 육개장 등 고깃국을 먹어줘야 제맛이다. 뜨끈한 고기국물을 후후 불며 한 사발 들이키면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이렇게 땀을 쭉 빼주면 한결 개운해진다. 시원한 빙수나 냉면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이열치열이 최고인가보다.

대서의 절후현상으로는 초우에는 썩은 풀이 변하여 반딧불이 되고, 중후에는 흙이 습하고 무더워지며, 말후에는 때때로 큰비가 내린다고 했다. 썩은 풀이 어떻게 반딧불이가 되는지. 지금은 보기도 힘들어졌다. 반딧불이 잡아다 책을 읽었다는 형설지공의 주인공. 반딧불이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반딧불이는 알을 이끼 위에나 물가 풀숲에 낳으며, 1개월 정도 지나면 애벌레로 깨어난다. 애벌레는 회색으로 많은 마디가 있으며 어두운 곳에 숨어 지낸다. 낮에는 돌 밑이나 모래 속에 기어들어가 있다가 밤에 우렁이나 다슬기를 먹고 자란다. 물에서 기어나온 애벌레는 땅 속으로 들어가 번데기가 된다. 다시 10일쯤 지나면 성충이 되어 날아오른다. 성충이 된 반딧불이는 물만 먹으며 1주일 정도 살다가 알을 낳고 일생을 마친다. 물에 살다 기어나온 애벌레가 풀이 쌓인 땅속에서 번데기가 되었다가 나오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썩은 풀이 변하여 반딧불이가 된다’고 표현한 건 아닌가 싶다.

도시화가 되기 전 음력 6월경에는 반딧불이가 참 많았나보다. 음력 6월을 ‘형월(螢月), 즉 반딧불이달이라고 불렀으니 말이다. 깨끗한 하천과 습지에 살던 반딧불이는 환경오염으로 멸종위기에 이르렀다. 최근 일이십년 사이에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이 한두 종이 아니다. 무조건 산과 들을 파헤치는 개발중심의 사고를 돌아볼 일이다. 도로를 치솟게 하고, 땅속의 상수도관을 터뜨리는 이상더위 역시 환경파괴에서 왔기 때문이다. 자연을 향해 던진 돌멩이는 우리를 향해 다시 날아온다는 사실을 종종 잊고 사는 것이 문제다.

채근담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굼벵이는 지극히 더러우나/ 변하여 매미가 되어 가을바람에 맑은 이슬을 마시고,

썩은 풀은 빛이 없으나/변하여 반딧불이가 되어 여름 달밤에 빛을 낸다.

진실로 깨끗한 것은 언제나 더러움에서 나오고/ 밝은 것은 언제나 어둠 속에서 생겨난다.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나비도 어릴 때는 꿈틀꿈틀 징그러운 애벌레를 거쳐야 한다. 지금 어렵고 힘들지라도 부지런히 자신을 연마하면 날개달린 나비가 되고 매미가 되고 반딧불이가 될 지도 모른다. 더럽다고 피하지 말고 어둡다고 외면하지 말아야겠다. 탐스러운 연꽃도 더러운 연못에서 뿌리내리고 고귀한 꽃을 피우지 않는가. 모두가 잘났다고 소리 높이는 요즘 세상이지만 묵묵히 자신을 연마하는 사람이 아름답고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오래도록 풍길 수 있을 것이다.

큰더위를 맞닥뜨렸으면 이제 저무는 일만 남았다. 다음 절기는 8월 7일 입추다. 가을 얼마 남지 않았다. 현재 마주한 여름더위를 즐기며 건강하게 가을을 맞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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