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의 토박이 예술인 이낙진 -

육십갑자를 넘어 살고 있지만 그는 아직도 날 것의 예술가 같다. 숙성되기 보다는 처음 흙덩이를 만졌던 16세 때의 기억과 느낌으로 살아가는 예술가의 모습이 느껴진다.

“가뭄이 들면 웅덩이를 파서 물이 고이길 기다렸다가 그물을 퍼올려 농사짓곤 했습니다. 물이 고일 동안 기다리다가 한 쪽에 던져진 흙덩이를 보게 됐는데 그 흙덩이에 형상이 담겨있었죠. 그래서 종일 그 흙으로 이런저런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우연찮은 흙장난이 그를 예술의 길로 이끈 시작이었다.

고양군 일산읍의 작은 마을이었던 밤가시에서 나고자란 촌놈 이낙진에게 자연에 담겨진 형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돌맹이에도 형상이 담겨졌더군요. 돌맹이를 주웠고, 드로잉을 시작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기 시작했고, 그 형상을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그는 열심히 작품 활동을 했다. 하지만, 자신이 잉태하여 세상에 나온 작품들을 그는 땅에 묻었다. 족히 트럭 한 대 분량은 될 것이다. "만들고 보니 세상에 내 놓기가 힘들었습니다. 담겨진 형상을 표현했지만 세상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그는 땅에 묻었다.

그리고 그는 음악에 심취했다. 형이 사준 하모니카와 공들여 구입한 기타를 독학했다. 낮에는 흙일을 하고 밤이면 기타를 치고, 하모니카를 불었다.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고 스스로 더 이상의 학업을 포기한 그였기에 그림도, 음악도 스승이 없다. 15살부터 주한미군방송인 AFKN을 들으며 따라한 것이 그의 음악수업의 전부였다. 지게를 지고 퇴비를 버리고 다니면서도 하모니카를 불었다.

그는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아는 생이지지(生而知之)였고 일이관지(一以貫之)였던가. 그렇게 혼자 배운 실력으로 1982년 3.5극장 개관기념에 초청공연을 시작으로 신촌블루스, 김동환, 권인하, 김현식, 손지창, 김범수 등의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작품 활동에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를 했고, 곡도 만들어 녹음도 했다. 하지만 예술가는 배고픈 삶도 감내해야 했다.

“2008년, 그림을 그리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일었습니다. 급히 문구점에 달려가 물감과 캔버스를 사왔지만 붓 살돈은 없었죠. 그래서 칡넝쿨을 잘라 끝을 망치로 두드려서 그걸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캔버스에 물감을 뿌리고 발로 밟아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칡넝쿨로도 그림을 그렸죠. 그렇게 그림을 완성한 다음날, 숭례문 화재가 났습니다. TV에 밤새 그린 그림에 표현된 형상과 너무나 흡사한 장면이 나오더군요. 그때의 느낌이 묘했습니다.”

그 그림을 ‘예지화’였다고 이낙진씨는 말한다.  그는 ‘조선시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그리신 선조 이무 선생의 영향력이 아직까지도 미치는 것이 아닐까!‘라며 선조의 DNA 때문에 자신이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자신이 예술의 세계에 발 딛게 된 의미를 찾는 여정일 것이다.

조소에서 그림으로 그리고 다시 조소로 또 조각으로, 그는 늘 숙성을 거부하며 생기가 가득한 날 것의 예술을 추구하고 있다. “일산신도시가 개발되면서 나의 정서를 만들어준 땅을 송두리째 빼앗겼습니다. 그때 잘려나가는 밤나무를 모을 수 있는 만큼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밤나무들이 품고 있는 저마다의 형상을 조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가 만들어낸 조각품들을 사람들은 쉽게 장승이라고 불렀지만 그는 ‘토템’이라고 표현한다. 자신의 작품이 장승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보다는 ‘권력자 또는 중요한 인물’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토템’이 더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작업장에 가득 쌓인 나무에 떠오르는 형상을 조각하고 또 조각했다. 현재까지 4,000여 점 만들어, 월드컵이 개최된 2002년 상암월드컵 경기장 평화공원에 조각 200여 점을 전시하기도 했고, 2013년 꽃박람회 때 호수공원에도 전시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에도 200여 점 나가있다. 또한 16회째 열리는 대한민국막걸리축제에도 작품을 전시하기로 했다.

그는 올해 9월 7일부터 13일까지 고양국제꽃전시장 특별전시장에서 개최된 ‘제17회 2018 고양국제현대미술제’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OPEN HEART PEACE TOTEM 中庸'이라는 주제였다.

“이 번 전시회는 평화를 갈망하고 기다리는 오픈하트 된 영혼들을 향해 나만의 언어로 꿈을 잉태한 순간을 기록한 것이고, 자유를 향한 몸짓이었고, 그동안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던 이낙진에 대한 재인식의 기회이기도 하며, 내 작품에 담고자 했던 중용의 가치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이낙진씨.

4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흙과 나무와 종이에 자신이 느껴왔던 형상을 담아내고자 했던 그는 이제 중용의 가치를 담은 새로운 예술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천문을 가지고 나와 스승없이 혼자 익히며 살아가는 아트콜라보레이터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그는 앞으로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마르지 않는 꿈과 사랑과 이상이 담긴 예술의 가치를 담은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고양 토박이 예술가의 활동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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