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저유소 화재 무엇이 문제인가

45개 CCTV는 무용지물이었고
그 흔한 화재감지기조차 없었다 
인화방지망이 불씨 잘 막았어야
국가시설로 지정, 안전관리해야


강매동 고양저유소에서 발생한 화재의 원인이 스리랑카 근로자가 날린 풍등의 불씨에서 저유소 측의 안전관리 부실로 옮겨가면서 경찰은 대한송유관공사에 대한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11일 기존 고양경찰서 수사팀을 확대해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인력까지 포함한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공사 측의 안전관리 부실여부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가 진행될 수록 안전관리의 부실이 드러나자 일각에서는 저유소가 민간회사 소유지만 국가적 재난을 동반할 수 있는 위험시설인 만큼 국가 위험시설에 준하는 관리감독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 측은 이번 화재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인근에 떨어진 풍등에서 발생한 불꽃이 저유소 내 유류탱크 내부로 번져 폭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9일 브리핑에서 장종익 고양경찰서 형사과장은 “CCTV확인 결과 사건 당일 10시36분경 불이 붙은 풍등이 화재지점 인근 잔디밭에 떨어져 연기가 발생했으며 불이 석유탱크로 옮겨 붙어 18분 뒤 폭발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즉 연기가 발생한 뒤 폭발이 있기까지 18분 동안 불씨를 발견했다면 이번과 같은 대형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고양저유소에 있는 14개의 유류탱크를 지키기 위해 45개의 CCTV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사고 당시 이곳에 근무하고 있었던 직원은 6명. 하지만 누구도 연기가 나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조사 결과 당시 통제실에는 1명의 직원만이 있었으며 CCTV전담인력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외부 화재를 감지할 수 있는 화재감지기 같은 장치 또한 이곳에서는 설치되지 않았다. 

화재전문가인 건설기술연구원 이태원 박사는 “화재가 발생하려면 연료, 산소, 온도라는 3요소가 갖춰져야 하는데 이번 폭발사고의 경우 설사 외부에서 불씨가 생겼더라도 이를 차단하는 인화방지망만 제대로 설치됐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런 중요한 시설에서 왜 그런 부분들이 마련되지 않았는지 안타깝다”라는 의견을 나타냈다.   

게다가 저유소는 위험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현재 국가중요시설로 지정되지 않은 일반시설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중요시설은 적(敵)에 점령되거나 파괴되는 등 기능이 마비될 경우 국가안보와 국민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주게 되는 시설을 뜻한다. 국가중요시설 지정 및 관리 지침에 따르면 국가중요시설로 지정될 경우 자체 방호계획을 수립할 수 있으며 인근 군부대, 경찰서 등에서 방호인력들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고양저유소는 여기에 적용되지 않는다. 해당 지침에 따르면 50만 배럴 이상의 저유시설만 지정하도록 되어 있어 고양저유소(48만 배럴)은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판교저유소의 경우 국가중요시설로 지정되어 있어 정부지침에 따라 매년 두 차례의 점검을 받고 민관군 합동훈련인 을지연습 때 화재 대비 훈련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기준을 낮춰서라도 저유소 시설을 국가중요시설로 지정해 안전점검을 받도록 하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 한한갑씨는 “저유소 시설은 91년 당시에 주민반대에도 불구하고 들어온 시설인데 이렇게 허술하게 안전관리 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며 “시설보안조치를 철저하게 마련해 재발방지를 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고양시 재난대책팀 관계자는 “현재 고양저유소의 경우 위험물 안전점검은 소방청, 전체 시설은 산업자원부에서 관할하고 있어 시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마땅치 않다”며 “경찰수사가 어느 정도 종료된 후 유관기관, 전문가들과 함께 재발방지 대책을 고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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