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고상만 인권운동가

고상만 인권운동가

[고양신문] 그야말로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유치원 아이를 둔 학부모라면, 아니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분개할 일이 세상에 드러났다. 이른바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다. 따지고 보면 이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도 아니다.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던 기왕의 사실이다. 어느 유치원이 어땠고, 또 어느 유치원은 어떻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이들 사이에서 속삭여지던 일이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속삭일 뿐 세상에서 이 문제가 바로 잡힐 가능성은 제로였다. 그래서 이 불법이 관행처럼 오늘에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립유치원의 비리가 지금 온 나라를 들썩이는 데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었다.

시작은 2015년의 일이었다. 그때 나는 경기도교육청의 시민감사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때 “국무조정실에서 공문이 내려왔다”며 감사관실에서 사립유치원 감사를 시민감사관인 우리에게 요청했다. ‘사립유치원의 허위 납품 서류 발행 및 외부 강의 리베이트’ 의혹이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사립유치원 감사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그야말로 창대한’ 비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모 유치원 사례도 그때 드러났다. 홍대에서 유치원 카드로 성인용품을 구매하는가 하면 한해 수천 만원 어치의 김치를 아이들 급식용으로 썼다 하여 살펴보니, 원장의 어머니가 담가준 김치였다. 영수증도 없는 그 김치를 아이들이 실제로 먹었는지 알 수 없는 엉터리였다. 뿐만 아니라 한 유치원 설립자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오전 청소만 시킨 후 그 대가로 매달 200만원씩 급여를 지급했다. 기가 막힌 것은 그 급여를 정작 아버지도 아닌 자신의 여동생 명의 통장으로 입금했다는 점이다. 사실상의 횡령이 ‘최소한의 성의조차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 것이다.

어떻게 이런 비리가 가능했던 걸까. 답은 사립유치원이 가진 막강한 로비력 때문이다. 전국 곳곳에 실핏줄처럼 퍼져있는 사립유치원은 정치인에게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실제로 경기도교육청에서 사립유치원을 감사하면서 우리는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는 유력 정치인으로부터 유무형의 외압을 받았다. 별별 밑도 끝도 없는 이유를 들어 감사의 중단을 요구 당했다. 모 경기도의원은 “다음 지방선거 때까지 만이라도 감사를 중단해 달라”고 협상해 오기도 했다. 그런 어려움을 뚫고 여기까지 감사를 진행해 온 것이었다.

이처럼 어렵게 어렵게 사립유치원 감사를 이어 오던 2018년 9월, 묘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경기도 교육청에서 새로 임명된 감사관이 ‘사립유치원의 특정감사 중단을 선언하는 메시지’를 밝힌 것이다. 지난 10월 15일 경기도교육청 국정감사에서 교육감은 이를 부인했지만 10월 2일 경기도교육청 이재삼 감사관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언론사 역시 그렇게 제목을 뽑아 보도했다. 이 상황에서 민주당 박용진 국회의원이 나선 것이다. 사립유치원의 감사가 왜 필요한지 그 이유를 밝히는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그 역시 많은 외압에 시달렸다고 한다. 일일이 밝힐 수 없는 이들로부터 토론회를 중지하라는 압박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 토론회에 있었다.

그야말로 참담했다. 전국에서 300여 명의 유치원 원장이 몰려와 토론회 무산을 위해 힘을 썼다. 여기저기서 줄다리기 할 때나 쓰는 ‘영차 영차’ 소리가 사방으로 메아리치며 유치원 원장들은 토론회 발제를 중단시킨다며 국회 방호원들과 힘으로 대치했다. 그런데 나는 거기서 뜻밖의 희망을 봤다. ‘국회 골방에서 2시간이면 끝날 토론회를 유치원 원장들이 전국 이슈로 만들어 주겠구나.’ 사실은 기뻤던 이유다.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됐다. 덕분에 사립유치원 비리를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비리를 바로 잡을 학교 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 프로그램을 사립유치원에도 적용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참 다행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사립유치원의 힘은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 끝까지 지켜봐 달라. 그래야 바로 잡을 수 있다. 이번에 끝내자. 사립유치원 비리, 이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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