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한 산악인이 세계에서 11번째로 히말라야 고봉 14좌를 완등했다는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대단한 사건이라는 데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 산악인의 노력과 용기에 진정한 갈채를 보냈다. 고봉산을 주로 다니는 우리에게 저 8000미터가 넘는 고봉은 상상의 한계를 한참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해외원정 가는 산악인들이 가지게 될지도 모를 ‘성과’와 ‘과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우리, 우리 사회는 가시적인 성과를 올리는 것에 그리고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않는가 하는 반성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남들이 인정해줄 수 있는 기록을 달성하려고 애를 쓰고 조그만 성과가 있어도 과시하려고 기를 쓰지만, 이것은 결국 사회의 후진성이나 영혼의 미천성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런 생각이야 진부하고 식상한 것이지만, 모처럼 그냥 좋아서 설악에 오른 우리 같은 잔챙이에게는 한번 환기할 수도 있는 상념이었다.
설악에서의 이런 반성은 몇 달 전 고양시 전역에 걸려 있던 현수막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고양시가 ‘MBC 느낌표 기적의 도서관’ 유치지로 선정되었다는 것을 ‘경축’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그 현수막은 나를 한동안 아주 당혹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문화방송과 한 국민운동 본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을 TV에서 몇 번 시청한 적이 있었다.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인데, 왜 이런 것을 아직도 못하고 있었으며, 더구나 방송사와 시민단체가 나서기까지 당국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다는 건가’하는 안타까움과 못마땅함이 가득했던 터였다. 그런데 그 기적의 도서관이 고양시에 유치하게 되었으니 경축할 일이라는 고양시의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한 일이었다.
그런데 설악은 이 문제를 정리해 주었다. 먼저, 기적의 도서관을 유치한 주체는 고양시이고, 그래서 그것에 대한 경축은 ‘자축’이며, 이때 자축은 ‘자기 과시’라는 점이다. 그런데 기적의 도서관 유치가 과연 과시의 대상일 수 있는가. 어린이 도서관 건립은 결코 ‘기적’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미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을 이제야 있게 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못할 망정, 그것을 경축하고 자축하며 자찬하고 있다는 것은 고양시 의식의 폭이 고만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나아가 이 도서관의 유치 결정을 홍보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고양시민들이 그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될 일이라도 있단 말인가. 여러 해를 고양시에서 보냈건만 고양소식지로도 충분한 일에 그토록 ‘호들갑’을 떨었던 적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저 유명한 현수막이 ‘쫙 깔려’있었으니 말이다. 왜 일까. 그것이 어린이 전문 도서관이어서 일까, 얼마의 돈을 지원 받아서 일까, 아니면 MBC 느낌표의 시청률이 높기 때문일까.
우리가 지금 여기서 이미 사라진 저 현수막을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그것이 고양시 행정 책임자의 현재 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홍보를 위해 쓸 돈이 있으면 차라리 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는 편이 나을 것이고, 그것보다는 ‘소개울에 붕어와 미꾸라지가 살게 되었어요’라는 현수막이 훨씬 더 호응을 받을 것이다. 새 시장이 일을 시작한지 1년이 넘어선 지금 우리는 ‘성과집착증’과 ‘과시증후군’에서 벗어나 좀 더 성숙하고 진솔한 모습의 고양시정을 보고 싶을 뿐이다.
<한양대 철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