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백장현 한신대 초빙교수

[고양신문] 북미 간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던 문재인 정부가 안팎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국내 보수진영은 한국 정부가 미국과 물샐 틈없는 공조를 통해 북한 핵무기를 폐기시켜야지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재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펄쩍 뛰며, 문재인 정부를 북한의 입장만 대변하는 종북 정부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보수진영이 생각하는 빈틈없는 한미동맹은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의 정책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사안에 따라 한미 간 국익이 서로 다를 수 있기에 때로 이견과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발상은 애당초 존재할 수 없다.

북한 또한 문재인 정부를 향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제14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자주정신을 흐리게 하는 사대적 근성과 민족 공동의 이익을 침해하는 외세의존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모든 것을 북남관계 개선에 복종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북한 당국자들의 머릿속에는 한국정부가 사대주의 근성이 가득해 미국 눈치만 보며 스스로 북남관계 합의를 실천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이 가득하다. 한국은 북한과 달리 대외의존도가 90%에 이르는 개방경제로서 국제사회와 협력 없이는 하루도 존립하기 어렵다는 점은 고려되지 않으며, 기회만 생기면 자신들이 현재 유일하게 우위에 있다고 믿는 주체성 분야에서 공세를 펼친다.

중재가 빛을 발했던 캠프 데이비드 협정

‘중재’란 ‘다툼질의 사이에 끼어들어 화해를 시키는 것’인데, 현대 국제정치사에서 중재가 빛을 발했던 사례가 있다. 1978년 5월에 열렸던 캠프 데이비드 협정인데, 네 차례나 전쟁을 치렀던 당사자들이 미국의 중재로 평화협정을 맺었다. 카터 미국 대통령은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워싱턴 교외에 있는 캠프 데이비드 별장으로 초청해 무려 13일간의 회의를 통해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던 시나이 반도 철수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평화협정을 일구어냈다. 

당시 누가 봐도 어려운 협상에 카터 대통령이 중재역을 자임했던 데는 기독교적 신념도 작용했지만 긴박한 미국의 국익 때문이었다. 미국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면서 터진 오일쇼크로 인해 치명적인 경제타격을 받았기에 어떻게든 중동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초반의 열세를 뒤집고 이집트를 침공하자 아랍 산유국들은 원유 가격을 17%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철수할 때까지 원유 생산을 매달 5%씩 줄이고, 미국에는 단 한 방울의 석유도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5년이 지난 1978년 당시에도 미국은 여전히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카터가 처음에 생각한 협상의 방식은 베긴과 사다트가 직접 협상을 하고 미국이 제3자의 위치에서 심판을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접 부딪쳐보니 그런 방식은 불가능했다. 전쟁을 겪었던 양국 대표는 감정적이었으며, 처음 3일 동안 베긴과 사다트는 이성을 잃고 서로 상대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쏟아내기만 했다. 할 수 없이 카터는 협상방식을 바꿔 4일째부터는 자신이 직접 협상을 주도했으며, 온갖 우여곡절을 거쳐 13일 마지막 날 밤에 이르러서야 합의문을 작성할 수 있었다. 불가능할 것 같던 협정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에 온 세계가 흥분했다. 카터의 지지율은 합의 발표 직전 13%까지 떨어졌지만 발표 뒤에 51%로 껑충 뛰었다. 한 달 뒤에는 사다트와 베긴이 1978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은 1년 뒤 이스라엘 의회 승인을 거쳐 발효되었으며, 양국 사이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남북미 3자 회담으로 가야 한다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이지만 북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 주요 이슈인 북미 협상에서는 중재자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주요 결정과 실행이 북·미 양국의 몫이기 때문이다. 과거 6자회담도 형식은 남·북·미·중·러·일 6개 국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미·북이 먼저 만나 주요 이슈에 대해 논의해 합의를 이루고 이를 6자가 추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북한은 미국과의 양자회담만을 고집했고 미국은 이를 거부했기에 온갖 해프닝이 벌어졌고, 그나마 6자회담이 순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과 중국의 적극적인 중재 때문이었다. 2008년 이후 6자회담 무력화는 중재자가 사라진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북핵 리스트 신고와 검증을 두고 북미 간 갈등이 커졌을 무렵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협상무용론을 주창하자 미국 내 강경파와 일본 정부가 적극 호응하면서 6자회담은 무력화되었던 것이다.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북한을 믿을 수 없다며 협상 무용론을 펼치는 데 주변국들이 달리 뭐를 할 수 있겠는가? 한국 정부가 중재를 포기하면 한반도 문제는 해결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 전반기 미국은 북한에 대한 관여정책을 천명하면서 북한이 진정성을 보이고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노력하면 6자회담을 열겠다고 했지만 당사자인 남북한은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미·중의 압박에 의해 어렵사리 열린 남북회담에서도 남북 양측은 회담 참석자의 격을 둘러싼 실랑이나 벌이면서 대화시늉만 하다가 헤어졌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의 정책으로 한반도 문제를 방치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북핵 문제는 악화되었다.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높은 산 너머에 있는 세상은 눈부시게 찬란하다. 냉전과 남북 간 적대가 사라지고 교류·협력이 일상화되면서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분단체제에 기생했던 비정상이 정상으로 바뀔 것이다. 

백장현 한신대 초빙교수.

남북 통합경제를 중심으로 일본, 중국의 동북3성, 러시아의 연해주가 연결된 동북아 경제공동체가 펼쳐지고, 그 안에서는 경제 뿐 아니라 인적 교류와 문화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한반도에서 시작된 평화는 동북아 안보협력체제 구축을 거쳐 전 세계로 뻗어나갈 것이다. 단군 이래 최대의 기회이다. 반드시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구차하더라도 팔을 더 걷어붙이고 중재에 나서야 한다. 한국의 중재가 힘을 발휘하려면 남북미 3자 회담이 필요하다. 북한을 설득해 남북미 3자 회담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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