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이십대 초반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나는 사 년 전부터 담배농사를 직접 짓기 시작했다. 금연이 대세인 요즘 담배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다들 깜짝 놀라면서 신기해한다.

처음에는 담배농사에 대한 호기심으로 담배를 키우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담배 맛 때문에 농사를 짓는다. 시중에서 파는 담배와 직접 농사지은 담배는 맛이 상당히 다르다. 시판담배는 수십 가지에 달하는 화학첨가물이 들어가지만 손수 재배해서 피우는 담배는 아무 것도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담배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어쩌다 담배가 떨어져서 시판담배를 얻어 피울 때가 있는데 다 피우고 나면 입안이 개운하지가 않다. 그렇다고 손수 재배한 담배라고 해서 맛이 항상 일정한 것은 아니다. 기후와 토양환경에 따라서 담배는 그때그때 조금씩 맛이 달라진다. 참 신기한 일이다.

담배는 성장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오월 초에 모종을 심으면 쑥쑥 자라서 칠월 초가 되면 이 미터 넘게 자란다. 이때부터 아래쪽에 달린 담뱃잎을 수확하게 되는데 잎 한 장의 크기가 어지간한 우산 절반만 하다. 문제는 장마이다. 장마철에 폭우가 쏟아지면 담배는 잎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일제히 쓰러진다. 일일이 하나씩 지지대를 세워서 끈으로 묶어줄 수도 없고 그냥 쓰러진 채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 그럼 생명력이 강한 담배는 장마가 끝나자마자 스스로 일어선다. 넘어진 아이가 벌떡 일어나서 흙을 툭툭 털어내 듯이 쓰러진 담배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새로운 담뱃잎을 매달고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래도 폭우에 담배가 쓰러질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쓰러진 담배를 보면 키가 작았으면 넘어지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안타까움에 인터넷에서 담배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다가 토종담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담배는 대부분 미국산 버지니아 품종인데 토종담배는 잎의 크기는 똑같지만 키는 서양품종의 반도 되지 않아서 장마철에 쓰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품종도 수십 가지나 되었다. 그러나 전매청이 생기고 국가에서 담배를 관리하면서부터 토종담배는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토종담배의 키가 작은 건 아마도 진화의 산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건 사백 년 전으로 추산되는데 그때에는 버지니아 품종처럼 키가 컸을 것이다. 그러나 장마철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담배는 스스로 키를 줄여가며 이 땅의 기후에 맞게 적응했을 것이다. 품종이 수십 종에 달하는 이유도 전국적으로 재배를 하면서 각 지방의 기후에 맞게 진화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수십 종에 달했던 토종담배는 단 한 종류도 남지 않고 이 땅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토종담배는 과연 어떤 맛일지 정말 궁금하지만 그 맛을 재현할 길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토종담배가 사라졌다면 모를까, 더 많은 수확을 목표로 토종담배를 도태시켜서 멸종시켜버린 무지를 생각하면 더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토종씨앗을 지키고 보급하는 일이 정말로 중요하다. 우리가 토종씨앗을 지켜내지 않는다면 토종씨앗들은 순식간에 담배와 똑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