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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이 들려주는 깊고 그윽한 이야기<유경종 기자의 반나절 나들이>
  • 유경종 기자
  • 승인 2019.06.14 10:57
  • 호수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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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 장남면 - 호로고루성·경순왕릉·고랑포구 역사공원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초소였던 연천 호로고루성 전경.

 

[고양신문]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은 고양시에서 반나절 나들이로 둘러보기에 맞춤한 곳이다. 행정구역은 연천군이지만 파주시 적성면 두지리에서 임진강 다리 건너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고양시에서 승용차로 40~5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원래는 북녘 땅 개성에 속했다가 휴전선이 그어지며 남한 땅이 된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접전이 펼쳐진 격전지였고, 지금도 접경지역 특유의 묵직한 정적이 감도는 지역이다. 하지만 조금만 눈여겨보면 한반도 중심을 흐르는 임진강과 함께 깊고 풍부한 역사의 이야기를 품은 곳이기도 하다.
고구려시대 국경 요충지였던 호로고루성,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능, 그리고 일제강점기 경기 북부 최대의 물류항이었던 고랑포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호로고루, 고구려 vs 신라 국경의 최전방 경계초소

호로고루성을 찾아가는 초행길이라면 좁은 농로로 이어진 진입로를 보며 ‘과연 뭐가 있기나 할까’ 미심쩍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적지에 다다르면 적어도 몇 번은 놀라게 된다. 나지막한 구릉처럼 솟은 호로고루 성의 자태, 주변에 조성된 보리와 귀리밭, 그리고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펼쳐진 시원한 임진강 풍경이 어우러져 좀처럼 만나기 힘든 우아하면서도 장쾌한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석성과 토성의 특징이 결합된 호로고루성은 일종의 군사기지다. 역사를 살펴보면 임진강 일대가 삼국시대 초기부터 각국의 국경이 충돌하는 격전지였음을 알 수 있다. 임진강 일대를 가장 먼저 차지한 나라는 백제였지만, 광개토대왕의 영토확장 이후 고구려땅이 되었다가, 이후에는 고구려와 신라가 임진강을 경계로 국경을 마주하는 대치상태가 이어진다. 임진강은 삼국시대부터 DMZ의 운명을 타고 난 셈이고, 호로고루는 삼국시대 임진강 DMZ의 가장 중요한 OP(경계초소)였던 것이다.
 

깔끔하고 호젓하게 정비된 호로고루 성터 잔디광장.


강줄기를 따라 북쪽과 남쪽에 각각 고구려와 신라가 구축한 여러 개의 성이 이어지는데, 호로고루를 가장 중요한 성으로 지목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호로고루 아래 쪽 고랑포 여울이 임진강 구간 전체에서 가장 넓고 수위가 얕았기 때문이다. 다리가 없던 시절, 대규모 병력이 강을 건너려면 고랑포 여울을 노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넓은 여울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현무암을 쌓고 흙은 다져 든든한 경계기지를 세웠던 것이다. 고랑포 일대의 옛 이름인 호로하(瓠蘆何)를 지키는 오래된 성채(古壘)라는 뜻으로 ‘호로고루’라는 인상적인 어감의 이름이 붙여졌다.

사적 제 467호인 이곳은 뒤늦게 본격 발굴과 정비가 이뤄졌는데, 완만한 성채를 오르는 하얀 돌계단, 넓은 잔디밭 끝의 전망대가 호젓하면서도 평화로운 분위기를 선물한다. 강물 쪽을 바라보면 커다란 건물이나 도로 등 시선을 방해하는 인공의 흔적이 전혀 없는 순수 자연의 풍광이 펼쳐진다.
 

호로고루 성터에서 내려다 본 임진강 고랑포 여울의 시원한 풍경. 수면이 낮아 강을 건너기에 용이한 요충지다.


성채 아래쪽으로는 장남면 마을 주민들이 정성으로 가꾸는 보리와 귀리밭이 자뭇 목가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금은 황금빛으로 익은 보리밭과 초록이 짙어진 귀리가 어우러지고 있지만, 8월이면 눈부신 해바라기가 이곳을 뒤덮을 예정이다. 개화시기에 맞춰 장남면 주민들이 ‘통일바라기 축제’를 여는데, 매 년 많은 방문객이 찾아와 호젓했던 호로고루가 일 년에 한 번 흥성거리는 진풍경을 자아낸다고 한다.

주차장 바로 옆, 호로고루의 역사와 유물을 소개하는 홍보관에 들르면 1500년 전 임진강을 끼고 전개된 삼국의 역사를 그려볼 수 있다. 유물도 스토리도 백제와 고구려, 그리고 신라의 흔적이 골고루 섞여 있기 때문이다.
 

연천 호로고루 홍보관. 우측에 세워진 비석은 광개토대왕비의 축소모형이다.


신라 마지막 왕이 잠든 소박한 무덤

경순왕릉은 호로고루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잘 아는 것처럼 경순왕은 56대를 이어온 신라의 마지막 왕이다. 삼국의 치열했던 격전의 최후 승자는 신라였지만, 한반도를 장악한 통일왕조도 10세기가 되자 결국 국운이 기울어 왕건이 이끄는 신생국 고려에 역사의 주역 자리를 넘겨주고 만다.

기록에 의하면 경순왕은 고려와의 승산 없는 싸움에 무고한 백성들이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신하들과 태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려에 스스로 귀속되는 길을 택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굴욕적 결정을 반대하며 금강산으로 들어간 아들이 바로 마의태자다.

고려에 귀속된 후 경순왕은 서라벌을 떠나 낯선 개경 땅에서 만년을 보내야 했다. 살아생전 돌아가지 못한 고향 땅에 시신이라도 묻히고 싶었겠지만,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임진강변 한적한 숲속에 경순왕의 무덤이 자리한 이유다.

왕릉은 규모도 소박하고 찾는 이의 발길도 뜸하다. 무덤 주인의 쓸쓸한 생애를 떠올리기에는 오히려 제격일 수도 있겠다.
 

신라 마지막 임금이 잠든 경순왕릉.


가상현실로 생생하게 되살아난 고랑포구의 역사

경순왕릉으로 이어진 길 초입에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이 최근 개장했다. 이름은 공원이지만, 유료 입장을 하는 건물이라 체험관이나 전시관에 가깝다.

고랑포구는 옛날부터 서해바다에서 임진강으로 진입한 배가 닿을 수 있는 마지막 포구였다. 바로 위가 수심이 얕은 고랑포 여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형상의 이유로 고랑포구는 바닷배와 황포돛배가 북적이는, 일제강점기 임진강 유역에서 가장 번성했던 포구마을을 형성한다. 외부의 물자가 이곳으로 들어오고, 반대로 콩과 인삼 등 이 지역의 특산물이 팔려나가는 시장이기도 했다. 정점을 찍었던 1930년 무렵에는 우체국, 양장점, 시계포, 우시장 등은 물론, 종로 화신백화점 분점과 금융조합도 버젓이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전쟁 참화를 겪고, 남북 분단이 고착되며 과거의 번영은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지난달 개장한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


고랑포구 역사공원은 장남면의 다채로운 과거 역사를 콘텐츠 삼아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나들이 장소로 꾸며졌다. 전시공간은 크게 삶의 찰나, 역사와 문화의 찰나, 오감의 찰나로 구성됐는데, 가장 먼저 둘러보는 ‘삶의 찰나’는 전성기의 고랑포구 저잣거리를 재현해 놓은 공간이다. 연배가 있는 방문객은 과거의 향수에 젖어보고, 젊은 세대는 첨단 장비를 활용한 증강현실(AR) 체험이 재미를 더한다.

‘역사와 문화의 찰나’는 고랑포구를 둘러싼 역사와 자연의 특성을 다양한 자료로 만나보는 공간이다. 무엇보다도 연천의 명승지를 만나는 패러글라이딩, 호로고루성 지키기, 황포돛배 타기, 레클리스 구출 전투 등 자연과 역사를 활용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가상현실(VR) 체험을 할 수 있다. ‘오감의 찰나’는 호로고루 오감놀이터, 샌드아트, 그리고 2층에 마련된 팡팡놀이터로 이어져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의 만족도를 높여준다.
 

1930년대 번성했던 고랑포구 저잣거리를 재현해 놓은 '삶의 찰나' 구간.
삼국시대 성벽전투를 모티프로 삼은 호로고루 오감놀이터 <사진제공=연천군청>

 
전시관 마당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맹활약하며 훈장까지 받은 미 해병대 소속 군마(軍馬) 레클리스의 동상이 서 있다. 삼국시대에도 그랬지만, 고랑포구 일대는 한국전쟁 당시에도 서부전선에서 가장 길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격전지 중 한 곳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 곳곳에 처참한 역사의 고통이 겹겹이 중첩돼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토박이 깊은 손맛 지닌 동네 맛집 

식사는 어디서 하면 좋을까. 이왕이면 장남면 동네식당을 찾아가보자. 고래성손두부(031-835-5745), 고랑포매운탕(031-835-0439)에서 장남면의 주산물인 콩요리와 민물고기 매운탕을 즐길 수 있다. 파주로 넘어가는 다리 건너기 바로 전에 만나는 장단콩사랑(031-835-3243)을 찾아가면 손수 농사지어 담근 청국장의 깊은 맛과 함께 오랫동안 장남면 부녀회와 주민회에서 일한 여사장님의 동네 자랑이 양념이다. “해바라기 축제 할 때 호로고루가 제일 예뻐요. 꼭 다시 들르세요.”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
관람료 : 어린이 3000원, 청소년 4000원, 성인 5000원
주소 : 연천군 장남면 장남로 270
문의 : 031-835-2002

 

연쳔 고랑포구 역사공원 2층의 팡팡놀이터.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사진제공=연천군청>

 

오감의 찰나에 마련된 샌드아트를 체험하는 꼬마손님들. <사진제공=연천군청>

 

연천의 명승지를 생생한 가상체험(VR)으로 돌아보는 패러글라이딩 체험.

 

1930년대 고랑포구의 번성을 증명하는 옛 신문기사들.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 마당에서 방문객을 맞는 미 해병대의 전설적 군마 레클리스 동상.

 

성채와 성벽 축조방식을 엿볼 수 있는 호로고루성의 측면부.

 

호로고루 성채로 오르는 돌계단.

 

호로고루 성 주변에 조성된 보리밭. 보리를 베고 나면 마을 주민들이 화사한 해바라기를 심을 예정이다.

 

임진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고랑포구 역사공원 인근의 원두막.

 

유경종 기자  duney78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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