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축동 재개발 풍경 사진전 열고 있는 김평기 사진작가

이주·철거·개발 중인 지축동 10년 동안 사진에 담아
다큐멘터리와 전통문화 기록작업 꾸준히 진행

마두동서 25년째 사진관 운영 중인 ‘친절한 이웃’
“시간 흔적과 사람들 삶 기록하는 게 가장 행복”

 


[고양신문] 고양시 구석구석의 흔적을 꾸준히 카메라에 담아온 김평기 사진작가가 택지개발이 진행 중인 덕양구 지축동의 풍경을 찍은 사진으로 연속 전시를 열고 있다. 5월 ‘재개발 시대’라는 타이틀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를 연 데 이어, 7~8월에는 전주 갤러리 파인의 초청을 받아 ‘살아온 터, 살아갈 터’라는 제목의 전시를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에서 김 작가는 2016년부터 2018년 사이 지축동에서 찍은 사진 중 24점을 엄선해 관람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창릉천을 경계로 서울 은평뉴타운과 마주하고 있는 지축동은 지축지구 택지개발이 시작되며 2010년부터 원주민 이주와 철거가 시작됐지만, 공사 진도가 늦어져 이제야 신시가지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곳이다.

김 작가가 포착한 흑백 화면 속에는 허물어진 과거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미래 사이에서 표정을 잃은 지축동의 황량한 풍경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작품 하나하나를 천천히 응시하면 쓸쓸한 장면 틈새로 은근한 서정성이 감지되기도 한다. 폐허를 바라보는 김평기 작가의 시선에 따뜻한 체온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것들을 잊지 않으려는 간절함, 그리고 그 터 위에 다시금 새로운 생명의 이야기가 뿌리내리기를 기원하는 애틋함이 동시에 전달된다.

그는 지축역 인근의 한 유치원의 전담 사진사로 일한 인연으로 지축동과 인연을 맺었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선에 터 잡고 살았던 이들의 소박한 보금자리가 사라지게 되자, 김 작가는 원주민들이 이주를 시작한 2010년부터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거의 매주 지축동을 방문해 기록사진을 찍고 있다. 그는 “지축지구 택지개발이 끝날 때까지 사진작업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남긴 사진들은 서울 변두리의 빈한했던 마을이 사라지고, 새로운 도시가 들어서는 과정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 될 듯하다.

지축뿐 아니다. 자연과 주거지가 혼재하는 공릉천변과 택지개발이 예정된 장항1동의 풍경도 김평기 작가의 부지런한 카메라에 차곡차곡 담기고 있다. 한편으로는 고양문화원과 연계해 유·무형 문화재를 기록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덕분에 고양땅 구석구석의 문화재들이 다양한 책과 자료집으로 묶였고, 고양상여회다지소리를 비롯한 다양한 전통문화와 공연 현장이 생생한 자료사진으로 남을 수 있었다. 김 작가는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예술사진이나 강렬한 에너지를 품은 본격 다큐멘터리 사진보다는, 성실한 기록자의 시선으로 삶의 흔적들을 담는 것이 체질에 맞는다”고 말한다.
 

김평기 사진작가는 마두1동 건너편에서 25년째 '원스튜디오'를 운영 중인 친절한 사진관 사장님이다.


김 작가는 사진작가이기 이전에 성실하고 친근한 동네 사진관 사장님이다. 그의 사업장인 마두1동사무소 건너편 ‘원 스튜디오’는 일산신도시가 입주를 시작한 1994년부터 꼬박 25년을 오롯이 한자리를 지키며 이웃들을 발걸음을 반기고 있다. 초기에는 아파트 단지마다 사진관이 한 곳씩 있었지만, 필름시대가 저물고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지금은 주변의 5개 사진관이 차례로 문을 닫고 원스튜디오 하나만 명맥을 잇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며 취미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본격적으로 사진관을 열며 새로운 인생이 열린 셈이다.

김평기 작가는 경기 예술활동 지원 공모에 선정돼 오는 10월 열리는 호수예술축제 기간 동안 ‘사진으로 떠나는 고양시 문화재 여행’이라는 연계 전시를 열 계획이다. 또한 지축지구와 장항지구, 행주산성 등을 꾸준히 찾으며 찍은 사진들을 하나하나 책으로 묶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어떤 것은 시간이 흐르며 변해가고, 또 어떤 것은 좀 더 오래 지속되지요. 같은 자리를 지키며 그 풍경들을 사진에 담는 일이 저에겐 가장 행복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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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 갤러리 - 김평기 사진전
‘살아온 터, 살아갈 터’

김평기 사진작가가 카메라에 담은 지축동 풍경들을 함께 감상해보자.

 

<사진=김평기>

▲ 아직 치워지지 않은 과거의 잔해더미. 그 안에는 수많은 삶의 흔적들이 형체를 잃고 뒤엉켜 덤프트럭에 실려 치워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너머로 새로운 시간의 주인공들이 당당한 형체를 드러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임무교대가 한 화면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

 

<사진=김평기>

▲ 구사일생의 운명일까. 전봇대로부터 가느다란 전선가닥 하나를 이어받은 덕분에 특별할 것 없는 나무 한 그루가 폐허 위에 덩그러니 남아버렸다. 이곳이 사람과 나무들이 함께 살았던 땅임을 외로이 증명하고 있는 듯하다. 김평기 작가는 지축을 찾을 때마다 나무의 안부를 묻듯 다양한 앵글과 각도로 이 나무를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김평기>

 ▲ 둥근 관이 박힌 흙더미 위로 기둥 하나가 비죽 솟아있고, 그 끝에 희미한 태양빛이 걸렸다. 원형 관은 대지의 숨구멍 같기도 하고, 기둥은 하늘과 교신하는 안테나 같다. 김 작가는 “이 장면과 마주하는 순간, 직관적으로 죽음과 희망의 이미지가 동시에 떠올랐다”고 말한다.

 

<사진=김평기>

 ▲ 이곳은 어디일까. 넓은 거실 같지만, 사실은 지축동에 자리하고 있던 고양동부새마을금고 본점 건물이다. 직원들도 손님들도 떠나 간 빈 공간을 의자들이 사이 좋게 지키고 있다. 사진 속 의자에 앉아 통장을 살찌우거나 생활자금 대출을 상담했을 이웃들의 모습이 상상된다. 지축동에서 소박하게 출발한 고양동부새마을금고는 지금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로 성장해 몇 해 전 원흥역 부근에 번듯한 사옥을 지었다.

 

<사진=김평기>

▲ 지축동 장고개 부근 언덕 기슭에 서 있던 신도제일교회. 6ㆍ25때 오금리에 자리잡고 있던 미군 공병대의 원조를 받아 마을 주민들이 창릉천변에서 호박돌을 날라 지은 건물이다. 60~70년대에는 고등공민학교를 운영하며 졸업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토지수용 경계점에 자리한 덕분에 예배당 건물만은 철거를 면했지만, 잔디마당에 느티나무 그늘이 드리웠던 정겨운 풍경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사진=김평기>

▲ 황량한 풍경을 흰눈이 덮어줬다. 창릉천 둑방 너머로 보이는 택지개발 선배 은평뉴타운이 “그쪽은 왜 그렇게 진도가 느리냐”며 훈계를 하는 듯하다. 그런 모습을 멀찌감치 북한산이 내려다보고 있다. 김 작가는 “이 사진에서 ‘시간’을 읽어달라”고 주문했다.

 

<사진=김평기>

 ▲ 분명 철근 박힌 콘크리트 덩어리가 뒤섞인 철거의 잔해일 뿐이다. 하지만 어딘지 둥글둥글 풍성한, 강가를 구르는 호박돌 무더기를 닮았다. 뒤편에 보이는 건물은 옛 지축초등학교다. 북한산의 우람한 산세가 시원하게 조망되던 운동장은 아이들만의 차지는 아니었다. 휴일엔 공 차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드높았고, 이런 저런 마을행사가 열리기도 했었다.

 

<사진=김평기>

▲ 홀로 버려진 의자를 보며 어떤 이는 누군가가 떠나간 자리를 연상할 것이고, 다른 이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풍경을 연상할 것이다. ‘살아온 터, 살아갈 터’라는 초대전의 타이틀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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