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 노동당 전 대표

[고양신문] 예능프로그램에서 외국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한국을 경험하는 일들이 늘고 있다. 그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사는 이들은 당연하게 여기지만 외국에서 살아온 이들에겐 낯선 것에 대해 재조명하며 한국사회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어느 한 예능프로그램에서도 한국을 여행할 때에만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배달음식’을 추천할 만큼, 어떤 물건 등이 나의 집에 빠른 시간 내에 배달되는 것이 매우 익숙한 특수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너무 당연해서 인식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무료배송’, ‘총알배송’, ‘로켓배송’ 등이 상품을 구매하는 주요한 이유가 되는 이 때, ‘택배 없는 날’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일주일에 6일, 하루 12시간 이상, 개인사업자로 일해야만 하는 택배노동자들이 몇 년 동안 갖지 못했던 여름휴가를 갖자는 제안이었다. 8월 16, 17일 딱 이틀만이라도 휴식을 하고 싶다는 절박한 요구 뒤에 씁쓸한 이유도 붙었다. 딱 그 시기는 평소에 비해 물량이 없다는 것. 택배를 통해 편리함까지 소비하고 있는 이들의 호응을 받아야만 모든 노동자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휴식을 가질 수 있기에 내건 절실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에 시민사회는 지난 13일부터 딱 3일간만 택배를 주문하지 말자는 운동으로 응답하기도 했다. 택배노동자들은 몇 년 만의 여름휴가를 떠났을까.

작년 여름, 배달노동자가 ‘폭염수당 100원’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했다. 폭염에도 바깥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것에 대한 당연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당시 큰 화제가 되었던 1인 시위 덕분인지 정부는 올해 폭염 대비 노동자 건강보호 대책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하루 최고 기온이 33℃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계속된다고 예상할 경우 기상청에서 폭염특보를 발표하는데, 이 때 노동자가 건강상의 이유로 작업 중지를 요청하면 즉시 조치하게 하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권고사항이기에 노동자가 작업 중지를 요청하는 것에는 큰 용기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폭염에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요즘, 한 노동자의 죽음의 소식이 서늘하게 들려왔다. 서울대학교의 청소노동자가 찜통인 휴게실에서 쉬다가 명을 달리한 것이다. 야외가 아닌 실내에서 일한다 하더라도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을 전혀 예방할 수 없는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수없이 많다. 매년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일하는 공간인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도 논란거리이며, 설사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라 하더라도 쉽사리 에어컨을 켜지 못하는 환경이 분명히 존재하기도 한다.

올해 고용노동부가 폭염 대비 노동자 건강보호대책을 시행한 것은 기후위기가 심해진 탓이다. 기후위기의 한 측면으로 폭염의 시간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기후위기 혹은 재난의 상황마다 불평등이 도드라지고 있다. 휴식하는 것이 노동자의 기본 권리라면, 특히나 폭염과 같은 건강을 해칠 수 있는 환경에서 기본권리가 더욱 잘 지켜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누군가의 노동환경이 나의 삶과도 연결되어 있을 때, 우리는 일방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고 상생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실천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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