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덕은 안곡초 교사
두 번째 산문집 『설국』 출간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문장이다.
교직에 근무한 지 21년, 안곡초등학교에서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권덕은씨가 두 번째 산문집 『설국』을 출간했다. 8년 전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 문학반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후 3년 만에 첫 번째 산문집을 선보였고, 이후 4년간 쓴 글을 다듬어 두 번째 산문집을 발간한 것. 주변의 감사한 이들에게 전하기 위해 100권 정도 자비 출간한 책이지만, 출판사 편집장인 문학반 문우의 손길에 의해 판매용으로도 손색이 없는 책이 만들어졌다.

 

두 번째 산문집 '설국'을 출간한 권덕은 안곡교 교사. 

산문집 제목이 왜 설국인가.
작년 1월 문학공부반에서 야스나리가 『설국』을 집필한 일본 유자와로 문학 기행을 다녀왔다. 그 여행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재발견했다. 어느 순간 ‘내가 혹시 소설 『설국』 에 등장하는 고마코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골에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꼿꼿이 살아가는 고마코. 내가 그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불현듯 깨달았다. 그리고 설국의 이미지는 순백의 세상, 순수함, 아름다움이다. 내가 추구하는 바도 설국에 다 담겨 있어서 제목을 그렇게 지었다.

본인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가.
나를 발견하고 나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도구다. 글로 대단한 것을 이루려는 마음은 없다. 4년간 모았던 산문을 다듬고 순서를 배열해 이 책을 만들었다. 책을 내고 20번 정도 읽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를 잘 모른 채 우울증에 빠져 살아가던 중년의 성장기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문집을 낼 때마다 글이 계속 달라지는 것 같다. 늘 글에 변화를 주고 싶은 욕구가 있고, 요즘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풀어내고 있다.

글을 쓰면 뭐가 좋은가.
세상을 보는 안목이 깊어지고, 넓어지고, 섬세해지는 것 같다. 그게 좋다. 책을 계속 읽기만 하면 지식으로서 앎의 기쁨이 있는데, 글을 쓰다 보면 깨달음을 정리할 수 있는 것 같다. 머릿속에 지식을 채우기보다, 살면서 직접 부딪치면서 깨닫는 것이 즐겁고, 그렇게 깨달은 것을 글로 표현하는 게 재미있다.

책을 읽은 이들의 반응은.
사람들은 내 글의 솔직함과 진솔함을 좋아하는 것 같다. 1부에 가족이야기가 많은데,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다. ‘표정을 봐서는 마냥 피터팬 같기만 해서 몰랐는데 충격을 받았다, 소설 같다, 순간의 경험을 어떻게 그렇게 세밀하고 적나라하게 표현을 할 수 있느냐’ 이야기하더라. 또 ‘어떻게 이렇게까지 드러낼 수 있나?’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게 저와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점인 것 같다.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내 안에서 이미 다 해소가 됐다는 의미다. 내가 쓴 결과물이고 작품이기 때문에 남이 읽고 안 읽고에 대해서 두려움은 없다. 다만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공모전에는 가족이야기를 내지 않는다. 

권덕은 산문집 『설국』. 표지 사진도 저자가 직접 찍었다.

공모전에서 상도 여러 번 받았고, 모든 일을 재미있게 하는 것 같다. 그 비결은.
글을 썼기 때문인 것 같다. 글을 한 꼭지씩 쓸 때마다 계속 나를 발견하는 작업이니까, 계속 스스로가 변화하게 됐다. 변화하는 모습을 기록하면 또 변화하고…. 누군가 나에게 ‘인생을 디자인하면서 사는 사람 같다’고 하더라. 어차피 주어진 고난이나 역경처럼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면, 그 사이 사이에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은 제 몫이고, 글을 쓰면 길이 보이는 것 같다. 항상 저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고, 글이 모든 것의 기본이다. 문학반에서 권정우 교수님으로부터 글쓰기 수업을 듣는 것이 내 삶을 바꿔 놓은 사건이었다.

한양문고에 1년간 서평을 썼다. 책은 얼마나 읽나.
체험 위주의 삶을 중시하다 보니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한다.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으려고 하는 편이다. 서평을 쓰려면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 깊이 읽어야 하는데 춤을 열심히 추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서 그만뒀다. 서평도 내 체험을 가지고 썼더니 남들과 다른 색다른 글이라는 평을 들었다. 처음으로 글을 의뢰받아서 쓴 경험이어서 색다른 도전이었고 즐거운 이벤트였다.

시도 50편 정도 썼고, 재능이 많은 것 같다.
사람들은 재능이 많다고 말하는데, 쉬지 않고 꾸준히 노 젓는 백조의 노력 같은 거다. 춤도 남들보다 빨리 늘었지만, 그만큼 집중해서 배로 연습했고, 글쓰기 수업에서도 남들이 안 쓸 때도 끊임없이 계속 썼다. 재능은 많지 않은데 많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노력을 많이 했다. 산문을 쓴 게 시, 서평, 소설 등 어떤 글도 다 쓸 수 있는 힘을 키워준 것 같다.

앞으로 계획은?
내가 즐기고 몰입하는 것은 대부분 내 안에 있는 소리와 에너지를 다른 무엇으로 창작하는 일과 표현하는 일이다. 글로 표현하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언어의 범주가 문자에 국한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문자와 말이 생기기 이전의 언어는 몸짓과 표정, 그리고 음악(노래)이었다. 자기를 표현하는 언어는 다양하다. 그래서 글 이전의 언어인 몸짓과 음악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몰입해가는 중이다. 앞으로도 글을 포함해 다양한 언어를 활용하여 나 자신을, 내 안에서 울리는 소리를 제대로 표현해보고 싶다. 뭐든지 창작하고 표현할 때 가장 행복하다. 50대에는 밸리댄스 강사가 되어서 어디서든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이 되고, 60대에는 내가 만든 곡으로 직접 노래를 부르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다. 무엇보다도 인간애가 많이 묻어나는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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