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빈(이미영) 사진 작가

수련의 고요한 모습 흑백화면에 담아
작은 생명 속에서 찾아내는 아름다움

[고양신문] 잠자리 한 마리가 호수 위로 솟아오른 가냘픈 식물 줄기 위에 앉아 있다. 주변에 자그마한 수련 잎이 드문드문 보인다. 물에 비치는 구름 반영까지, 흑백 사진이라 더 운치 있는 서빈(본명 이미영) 사진작가의 작품에는 단아한 회화적인 느낌이 배어있다. 너무 작고 흔해서 사람들이 그냥 지나쳐 버리는 작은 생명이나 곤충, 식물이 그의 작품 주인공이다.

수련 사진을 주로 찍는 서빈(이미영) 작가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2000년대 초반 유화를 시작해 왕성하게 활동했다. 한국미술협회 회원인 그는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두 번 입상하고, 세계미술교류대전에 특선과 입선을 수상했고, 세종문화회관주최 국제 아트페어, 한국미술협회회원전 등 여러 공모전에 출품했다.

서빈 작가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걸 아주 좋아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소꿉놀이를 해도 자신이 그린 만화로 만화책방주인을 하고, 종이 사진기로 사진을 찍고, 누런 갱지에 친구들 얼굴을 그려 주면 다들 깜짝 놀라며 좋아했다.

그가 수련을 찍기 시작한 계기는 소박하다. “어느 날 시흥에 있는 관곡지를 가게 됐어요. 제 키보다 큰 연잎들이 빽빽하게 군집을 이루고 있는데 그 옆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수련들이 물 위에 피어 있었죠. 한 줄기 바람이 밀려와서 수면을 간지럽히면 작은 파문이 일다 지워지고, 조용한 파동이 일다 사라지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한참을 바라보았어요.” 잠자리에게도 쉬어갈 자리를 내어주는 수련 모습이 포근한 엄마처럼 보이기도 했다. 옆에 있는 부평초와 친구가 되어 삶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앵글에 담았다.

올 10월 이 사진들로 고양국제아트페어에서 부스 전에 참여했을 때, 일반 시민들뿐만 아니라 전문 작가들 반응도 좋았다. “한 관객분이 부스를 돌며 형형색색 아름다운 작품들을 보다 제 사진 앞에 발걸음이 멈춰졌다고 하더라고요. ‘흑백으로 어떻게 연을 이렇게 표현했을까?’라며, 피곤했던 눈이 편하고 쉬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했어요.” 많은 이들이 ‘쉼’이라는 타이틀에 공감했다. 그의 작품 속 잠자리나 소금쟁이만 쉬는 게 아니라 보는 이들도 쉬어가는 느낌이 든 것. 마음이 통했다는 생각에 너무 행복했고, 자신의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사진을 특별히 배운 적이 없다. 대학 다닐 때 1학기 배운 게 전부다. 예전에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진을 찍었지만, 지금은 사진을 위한 사진을 앵글에 담는 게 일상이 되었다. 다른 작가들이 규칙이나 기술, 이론적인 것을 바탕으로 사진을 찍을 때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찍는다. 규제가 없으니 폭넓은 생각을 할 수 있다.

쉼1 (사진=서빈)

그는 관곡지나 벽초지, 일산호수공원에 자주 간다. 커다란 연과 달리 물 위에 잔잔하게 떠 있는 수련. 천천히 음미하면서 걸어야 작은 물고기까지 세세하게 볼 수 있다. “남들은 그렇게 작은 것에서 무슨 작품이 나오느냐고 하지만, 본인이 좋으면 찍고 아름답다고 느끼면 돼요. 단순한 사물이나 풍경이라도 유심히 보고 혼자만의 사색을 오래하고 마음에 드는 것을 찍어요. 작품은 먼 데 있지 않고, 자기 발밑에 있다고 생각해요.”

전시가 내년 6월까지 꽉 잡혀있다. 12월엔 코엑스에서 아트쇼가, 내년 1월엔 파주 출판단지 내 김영사에서 개인전이, 2월엔 뉴욕 첼시에 몇 작품을 출품하고, 5월엔 예술의전당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티벌에서 부스전을 하고, 6월엔 덕양구청 꿈갤러리에서 3인전도 한다.

“사진을 찍는 것이 쉬는 것”이라고 말하는 서빈 작가는 “앞으로도 당분간 연 사진을 계속 찍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사진과 그림을 접목하기도 하고, 오브제를 이용해서 작업도 할 생각이다.

“오늘날을 융복합시대라고 하잖아요. 시대가 원하는 새로운 작품과 남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쉼2 (사진=서빈)
쉼3 (사진=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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