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능곡 이야기 보물-전

<전시> 능곡 이야기 보물-전
예술수색단 & 아트랩 유길사 협업
퇴락하는 공간에 깃든 시간의 흔적
젊은 작가의 참신한 시선으로 조명
“능곡 주민들과 소통하며 창작 지속할 것”

예술수색단 정현식 대표(오른쪽)과 아트랩 유길사 김진아 작가.

[고양신문] 오랫동안 비어 있던 능곡시장 골목의 빈 집에서 소박하지만 감성 가득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예술수색단이 기획한 ‘능곡 이야기 보물-전’에선 10년째 방치되고 있는 옛 능곡역사의 모습들이 담긴 사진과 영상물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은 능곡시장 골목에 ‘아트랩 유길사’라는 창작공간을 마련하고 지역주민과 소통하며 다채로운 장르의 창작을 펼치고 있는 김진아 작가가 찍었고, 영상은 예술수색단 대표이기도 한 정현식 작가의 작품이다. 젊은 문화기획자의 참신한 기획과 청년 예술가의 발랄한 감성이 만나 흥미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낸 셈이다.

전시가 열리는 빈 집은 수 십 년간 한 가족이 살았던 일상의 공간이었지만, 5년 전 주인이 떠난 후 오랫동안 텅 빈 채 쇠락하고 있는 공간이다. 두 작가는 인간의 온기가 사라진 황량한 빈 집에 예술가의 섬세한 시선으로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햇살이 비추는 창가에 놓인 프리즘 무지개 사진.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키 큰 감나무가 서 있는 마당에서부터 작품과 대면하게 된다. 자주색 타일이 입혀진 외벽에도, 대문 옆 장독대로 오르는 계단 옆에도 마치 배경의 일부인 듯 사진작품이 걸려있다. 현관으로 들어서면 거실과 큰방, 작은방, 다락방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다채로운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구 능곡역사에서 촬영된 사진들은 하나같이 시간의 퇴적, 또는 존재의 쇠락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한때 능곡역사 외벽을 장식했던 울긋불긋한 단청 문양이 페인트와 함께 벗겨져 바닥을 나뒹굴고 있고, 마당에서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이 석양빛을 받아 오묘한 그림자를 대합실 벽면에 드리우기도 한다.

능곡역에서 찍은 사진과 벽지의 얼룩이 묘한 이미지로 연결된다.
사진과 빈 집 찬장의 바탕 무늬가 마치 하나인 듯 보인다.

사진작품의 배치에도 김진아 작가의 예술적 의도가 깃들어 있다. 네모난 나무 창틀 옆에 비슷한 크기의 액자가 걸리고, 창밖에서 햇살이 비치는 위치에는 프리즘 무지개를 포착한 사진이, 곰팡이가 슨 벽지 구석에 유사한 느낌의 사진작품이 배치되는 식이다. 능곡역, 그리고 능곡시장의 빈 집이라는 두 개의 공간이 작가의 세밀한 감각을 매개로 연결되며, 새로운 이미지의 자장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김진아 작가는 “언뜻 보면 아무것도 아닌 풍경들이지만, 천천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릴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이 쌓인 것들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는 김 작가는 “능곡 시장골목 주민들을 만나 옛 이야기를 듣는 일도 무척 흥미롭다”며 예술가의 시선으로 지역을 기록하는 작업을 지속할 뜻을 밝혔다.

안방 천장으로 뚫린 작은 다락방 계단에 올라서면 1904년부터 2020년까지 능곡 주민들과 역사를 함께 한 능곡역 이야기가 짧은 영상작품으로 리플레이 된다. 비록 한번에 한 사람만 감상할 수 있는 좁은 상영관이지만, 반복해서 울리는 기차 기적소리와 함께 상상의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정현식 대표는 “도시재생, 또는 문화도시 추진지역을 중심으로 사회적경제를 접목한 커뮤니티 문화·예술활동을 펼치고 있다”며 예술수색단을 소개했다. 정 대표는 “경기문화재단의 ‘보이는 마을’ 사업 지원을 받아 공간을 물색하던 중, 능곡시장 번영회장님의 적극적 도움으로 이 빈 집을 소개받았다”고 말한다.

아쉽게도 이번 첫 전시는 6일 종료되지만, 정 대표와 김 작가는 “계약기간 동안 빈 집을 무대로 다양한 전시와 커뮤니티 활동을 펼칠 예정”이라며 추후 작업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요청했다. 나아가 능곡도시재생 뉴딜사업과 연계해 주요 거점으로 활용될 구 능곡역사에서도 의미 있는 문화·예술 활동을 펼치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전시문의 02-3210-1918(예술수색단)

전시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정현식 대표와 김진아 작가.
능곡시장 골목에 서 있는 배너 현수막 뒤로 전시공간인 빈 집 대문이 보인다.
능곡역과 빈 집 모두 창을 덩굴식물이 잠식하고 있다.
두 사람 가운데 걸린 사진도 구 능곡역사에서 찍은 전시작품이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