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태화 파라북스 출판사 대표

16년 동안 200여 종 책 출간
‘귀가쫑긋’ 인문학 모임과 인연
고양에서 만난 이웃 책 꾸준히 펴내

책 만들 땐 여전히 ‘설레는 상상’
사람과 삶에 대한 따듯한 시선
“지역 중심 소량 출판도 가치 충분”

[고양신문] 파라북스 출판사(이하 파라북스)는 고양시민을 특별히 사랑하는 게 분명하다. 고양에 살고 있는 이현복 교수(한양대 철학과), 권정우 시인, 김혜성 이사장(사과나무의료재단), 박경만 기자(한겨레신문) 등의 책을 연이어 출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르도 전문학술서, 문학작품, 생명과학, 포토에세이 등 다채롭다. 하나같이 재미와 깊이, 그리고 저자의 색깔이 드러나는 책들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의 필력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진 이는 김태화 파라북스 대표다. 그가 2004년 설립한 파라북스는 아동·청소년 분야의 파라주니어, 과학 분야의 파라사이언스, 학술 분야의 파라아카데미 등의 전문 브랜드를 선보이며 16년 동안 200여 종의 책을 출간했다. 김태화 대표에게 ‘책 만드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드린다.

김태화 대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박식한 사람, 더 유명한 사람, 사회적 지위가 더 높은 사람이 쓴 책이 아니라,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한 책,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 책이 좋다고 한다.

대구에서 태어나 철학을 공부했다. 책읽기를 좋아했었는데, 1990년대 초 대학원을 휴학하는 동안 우연히 디자인하우스의 구인 신문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입사할 때 10년만 직장생활을 하고 직접 출판사를 차릴 계획을 세웠는데, 운이 좋게도 계획을 실현할 수 있었다. 퇴사와 더불어 지업사, 인쇄소, 제본소, 출력소 등 출판 관련 업체로부터 투자를 받아 2004년 1월 (주)파라북스를 설립했다. 이후 아동·청소년 분야의 파라주니어, 과학 분야의 파라사이언스, 학술 분야의 파라아카데미 등의 전문 브랜드를 출시하며 200여 종의 책을 출간했다.

 

▲ 파라북스만의 차별화된 색깔이나 특징이 있다면.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일까? 출판사의 색깔이나 특징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드러나지 않을까. 출판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내가 만들고 싶은 책, 사람들이 원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저자와 독자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어떤 분야의 책이든, 책에는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다. 모든 사람이 존중받아야 하듯 사람의 삶이 반영된 책 역시 모두 존중받아야 하지만, 더 좋은 책은 있다. 더 박식한 사람, 더 유명한 사람, 사회적 지위가 더 높은 사람이 쓴 책이 아니라,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한 책이다. 관점이라고 할 수도 있고 세계관이라고 할 수도 있고 문학이라면 문학관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저자가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 책이 좋은 책이 아닐까. 그래서 파라북스는 잘 쓴 글을 찾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우선으로 여긴다.

 

▲ 파라북스에서 출간한 책들 중 독자들의 호응을 얻은 책들은.

2004년 파라북스의 첫 책으로 기획한 『스티프-죽은 이후 새로운 삶』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딱딱한, 굳은’의 뜻을 지닌 스티프(stiff)는 시체를 의미한다. 무겁고 마주 대하고 싶지도 않은 시체 이야기를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접근해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메리 로취는 이후에도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영혼과 섹스에 대해 기발한 접근을 시도했고, 파라북스에서는 그 결과물인 『스푸크』와 『봉크』도 번역해 출판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였던 이 책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초판 내지 2쇄 정도만 판매되는 정도에 그쳤다. 오히려 많이 팔린 책은 2005~2006년에 출간한 『상위 1%로 가는 10분 공부법』, 『기적의 노트 공부법』 등과 같은 공부법 관련 책들과 『정판교의 바보경』과 『내 인생의 지침 논어』 등의 자기계발류 책이었다. 자기계발 도서가 붐을 일으켰던 당시 상황이 반영된 결과다.

 

▲ 최근에 낸 책은 어떤 것이 있나.

세계의 음식문화를 만든 7가지 식재료의 이야기를 담은 『호모 코쿠엔스의 음식 이야기』

올해 초 출간한 『호모 코쿠엔스의 음식 이야기』가 꾸준하게 판매되고 있다. ‘세계 음식 문화를 만든 주요한 7가지 식재료’라는 부제가 말하는 것처럼, 돼지고기·꿀·소금·칠리·쌀·카카오·토마토 등 7가지 식재료에 담긴 문화·정치·경제·종교적 의미를 촘촘하게 짚어보는 책이다.

이 책은 제목을 정하는 과정에서 고심을 많이 한 책이기도 하다. 저자가 영국의 유명 음식 칼럼니스트인 제니 린포드인데, 원서의 제목은 ‘7가지 주요한 식재료(Take Seven Ingredients)’였다. 제목이 너무 재미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요리하는 사람’을 학명 형식으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인터넷 검색을 했고, 10년 전에 당시 동아사이언스의 강석기 기자가 기사에 사용한 ‘호모 코쿠엔스’라는 용어를 알게 됐다. 책이 출간된 후 인사를 하려고 연락했더니, 서울대 독문과 이경진 교수와 공동으로 작명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두 분께 모두 책을 보내드리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책을 내는 일이 여전히 즐거운가.

200여 종의 책을 출간하면서 16년을 보냈지만, 새로운 원고를 접할 때면 지금도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신간이 출간될 때면 늘 그렇다. 제본소에서 이제 막 제본되어 나온 책을 받아들었을 때의 느낌은 출판업에 종사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울 거다. 최근에는 그런 느낌이 더 강해지는데, 좋은 사람을 만나 글을 받고 고심하여 만든 책일수록 더욱 그렇다. 물론 모든 책들이 기대처럼 호응을 얻진 못한다. 그럼에도 출판을 계속하는 이유는 그 셀렘과 기대가 조금도 퇴색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 고양과의 인연을 들려 달라.

1994년 원당 주공아파트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다가 2005년에 일산으로 이사 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인문학 모임인 ‘귀가쫑긋’을 알게 된 것은 한양대 철학과 이현복 교수님 덕분이었다. 2015년경부터 사과나무치과병원 대강당에서 이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귀가쫑긋의 회원이 됐다. 교수님의 책 『확신과 불신-소크라테스의 변론 입문』도 그때 들은 강의를 기반으로 만든 책이다. 또한 귀가쫑긋 산행반에서 5년째 함께 산행을 즐기는 은평구 신도고등학교 국어과 강영임 선생님과는 『어린이를 위한 한글 이야기≫를 기획 출판했고, 한겨레신문 박경만 선임기자와는 사진집 『바람의 애드리브』를 만들었다.

김혜성 사과나무의료재단 이사장의 저서 『미생물과 공존하는 나는 통생명체다』

미생물에 관심에 많고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과나무치과병원 김혜성 이사장을 만나고 집필을 권유하게 된 것도 귀가쫑긋을 통해서다. 김혜성 이사장과는 『미생물과의 공존』, 『입속에서 시작하는 미생물 이야기』, 『미생물과 공존하는 나는 통생명체다』 등의 책과 다수의 번역서를 출간했는데, 특히 김 이사장의 저서 세 권이 모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증 우수과학도서’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세 권이 연달아 ‘우수과학도서’로 선정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이들 도서에 발생하는 인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각가 유영호 작가의 작품활동에 기부하고 있다.

귀가쫑긋 문학공부반을 이끌어 주시는 권정우 교수님의 책은 나의 대학 후배이자 아내인 파라북스 편집자 전지영 실장이 기획한 책이다. 전지영 실장은 문학공부반에서 3년 넘게 문학 감수성을 키워왔는데, 이런 인연으로 권정우 교수님의 첫 산문집인 『세상에 없는 풍경』과 시집 『손끝으로 읽는 지도』를 출간하게 됐다. 그동안 문학 분야에서는 번역서 몇 권만 내온 터라 파라북스로서는 새로운 도전이었는데, 훌륭한 저자를 만나 멋진 출발을 했다.
이렇듯 귀가쫑긋은 나에게 훌륭한 공부방이자 놀이터이자, 좋은 저자들을 발굴하고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 파라북스와 별도로 파라아카데미라는 브랜드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청소년기까지는 시문학과 체육을 하고, 청년기에는 논리와 수학 등을 공부하고, 나이 50이 넘으면 철학을 공부하라고 했다. 나이를 먹고 읽는 책이 재미있었는지 대학 4년간 읽은 것보다 귀가쫑긋에서 읽은 철학책이 더 많았다. 게다가 학교에 다닐 때 같이 공부했던 동학들이 대학교수가 되어 함께 철학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 중에 책을 배고 싶다고 원고를 보내온 이도 있고, 때로는 내가 책을 내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보내온 원고도 읽는 재미가 있었다. 어린 시절 같은 선생님께 배웠기에 사용하는 용어가 비슷하고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철학 관련 학술전문서적을 출간하는 파라아카데미를 만들었고, 경기대 이봉호 교수의 『최초의 철학자들』과 강남대 임헌규 교수의 『주자의 사서학과 다산 정약용의 비판』 등 10여 종의 책을 출간했다.

 

▲ 최근 선보인 하이데거 전집 10권 『근거율-강의와 강연』의 번역·출간에 많은 공을 들인 것 같다.

철학자 하이데거의 만년의 강의를 모은 책 『근거율―강의와 강연』

하이데거는 자신의 철학을 강의하는 데 다양한 용어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하여, 그 책은 번역하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다. 제 모교인 경북대에서 현대철학을 강의하시는 김재철 교수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번역해 우리 출판사에 연락해 주었다. 김재철 교수님은 하이데거에 대한 논문을 여러 편 썼을 분 아니라 하이데거의 책을 5권이나 번역하신 분이다.

『근거율―강의와 강연』은 하이데거의 마지막 대학 강의록이다. 하이데거는 1955~ 56년 ‘근거율’을 주제로 열세 번의 강의와 두 번의 강연을 했는데, 이것을 정리하여 출간한 것이다. 하이데거 전기 사상의 핵심이 담긴 책이 『존재와 시간』이라고 한다면, 『근거율』은 후기 사상의 백미를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이제야 번역된 것은 한국에서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 전기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서 내용을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하이데거가 존재사유와 근거율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이용한 안겔루스 질레지우스 시는 소개하고 싶다.

- 장미는 왜 없이 있다. 그것은 피기 때문에 핀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주의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지 안 보는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는다.

 

▲ 독서 문화와 출판 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바뀔까. 그에 대한 파라북스의 준비도 궁금하다.

1440년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유럽 사회에 가져온 ‘정보의 대폭발’에 비견될 수 있는 전환기가 오늘날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심지어 엄청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IT기술의 발전은 전 세계를 하나로 묶고 있다. 디지털로 축적되는 지식의 양은 나날이 증가하고, 화상 회의가 일상화되고, 인공지능의 번역 기술은 오류를 급속히 줄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소규모 출판사가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그랬듯이 기술이 널리 보급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고 대형출판사가 개입하지 못하는 영역도 상당히 많다. 예컨대 지역 중심의 소량 판매가 예상되는 출판은 중소형출판사에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편집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과거에 비해 편집과 디자인에 소요되는 비용이 줄었고, 인쇄기술 또한 발전하여 시간과 비용이 절약됐다. 베스트셀러에서 벗어나 내용이 충실한 책을 독자에게 권한다면 과거보다 출판환경이 나빠졌다고 할 수는 없다. 10여 년 전에 출판계에 ‘다품종소량생산 vs 소품종대량생산’의 논쟁이 있었다. 오늘날 출판계에서 후자를 택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 고양의 이웃과 고양신문 독자들에게 인사를 전해달라.

우리는 이미 세계가 하나임을 인식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얻는 정보에는 국경이 없고,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역시 경계가 없다. 인식과 활동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은 흥미진진한 모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을 가져오기도 한다. 헬레니즘시대 알렉산드로스가 인도까지 영토를 넓히자 급격한 변화에 불안을 느낀 지중해 도시국가 사람들은 마음의 평정을 얻기 위한 철학이 유행했다. 지금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인문학 모임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경에는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나 자신과 주위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가까이 있는 사람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가꾸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가까이 있는 카페, 동네 책방, 골목 가게 등을 이용하고 고양시 지킴이 고양신문을 열독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늘 함께하면 좋겠다.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에서 만난 김혜성 사과나무의료재단 이사장의 책을 여러 권 냈는데, 저자인 김혜성 이사장이 인세를 모두 유영호 작가에게 기부했다. 유영호 작가는 대형 조각 ‘그리팅맨’을 세계 곳곳에 세우며 인류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셋이 나란히 섰다. (왼쪽부터 김태화 대표, 유영호 작가, 김혜성 사과나무의료재단 이사장)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