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의회 2019년 업무추진비 어떻게 사용했나

1억5천만원, 90%이상 밥값 지출
업무추진비 사용 다각화 필요
주민간담회 토론회 활용 등
사용방법의 혁신도 요구돼


“사람들이 다들 좋아하고 많이 가는 곳이라서 이용했던 것뿐이에요. 특별히 자주 방문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문제 삼는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서 억울함이 느껴졌다. 주인공은 중산, 고봉, 풍동을 지역구로 둔 조현숙 시의원(더불어민주당)이다. 8대 시의회 전반기 환경경제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작년 2019년 한해 업무추진비 125건 중 12건을 장항동의 한 양갈비 음식점에서 결제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방문한 셈이다. 총 사용금액은 200여만원. 방문 때마다 평균 10만~20만원의 업무추진비 카드를 긁었다. 

고양신문 취재결과 조현숙 의원의 이러한 ‘양고기 사랑’에는 이유가 있었다. 조 의원이 애용한 이곳 음식점은 바로 조카인 박모씨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조 의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동행했던 의원이나 직원들이 다들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고 이왕이면 조카가 하는 집에서 먹으면 좋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많아서 갔던 것뿐”이라며 “제가 (억지로)데리고 갔다면 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통화 말미에 그는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곳이니 나중에 꼭 한번 가보라”는 당부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2020년 1억5880만원 편성 
시의회 업무추진비를 둘러싼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고양시의회 의장, 부의장, 각 상임위원장 등에게는 매년 1억원이 넘는 업무추진비가 책정된다. 올해(2020년)예산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1억5880만원이다. 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장 업무추진비의 경우 여론의 감시가 활발한 편이지만 지방자치의회는 비교적 감시가 소홀한 사각지대에 있다. 고양시도 마찬가지다. 시장, 부시장은 물론이고 각 부서별 업무추진비 사용내역까지 모두 공개되고 있는 반면 시의회는 현재 의장, 부의장에 대해서만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그나마도 공개된 자료에 업무추진비 카드가 사용된 매장명이 표기되어 있지 않아 부실하다는 지적이 높다. 

이러한 가운데 고양시 풀뿌리 시민단체인 ‘고양시민회’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제공받은 2019년 고양시의회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에 대한 분석결과를 지난 20일부터 2차례 나누어 공개했다. 해당 자료에는 작년 한 해 동안 시의회 의장, 부의장, 의회운영위원장을 비롯해 4개 상임위원장(기획행정위, 환경경제위, 건설교통위, 문화복지위)과 예결위원장의 업무추진비 사용일시, 장소, 목적, 결제방법 등이 명기되어 있었다. 

시의회 의장과 부의장의 경우 그동안 시의회 홈페이지를 통해 매달 업무추진비 자료가 대략적으로 업데이트 되어 왔지만 각 상임위원장의 사용내역까지 모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양신문은 해당 자료를 바탕으로 시의회의 업무추진비 사용 실태를 살펴봤다. 

의장 4269만원, 직원격려 81건
시의회 업무추진비는 규정상 직무수행에 드는 비용과 의정활동 수행에 필요한 비용을 뜻한다. 때문에 시의회 의장단 내에서 의장, 부의장이 사용하는 예산 비중도 높다. 작년 한 해 이윤승 시의회 의장(더불어민주당)이 쓴 업무추진비는 총 399건에 4269여 만원. 월별로 355만원가량 사용됐다. 이규열 부의장(미래통합당)의 경우 총 219건에 2116여 만원이 쓰였다. 월 176만원 꼴이다. 각 상임위원장들에게는 이보다 적은 1600여 만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사용건수는 100~170건 사이였다.  

고양시의회 업무추진비는 대부분 식사와 다과, 간식비로 지출된다. 이윤승 의장의 경우 총 399건 중 5건(격려품 2건, 물품구입 1건, 부조금 2건)을 제외하고 모두 그러했다. 이규열 부의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219건 중 218건이 식사 및 다과, 간식비였다(격려품 1건). 그렇다면 이 비용들은 모두 어디에 쓰였을까. 눈에 띄는 항목은 의회사무국 직원 격려다. 의장은 81건, 부의장은 39건을 각각 이 같은 목적으로 사용했다. 나머지는 의회 현안사항 관련 논의, 지역현안사항 해결 논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논의, 시정발전논의 등이었다. 

이에 대해 의회사무국 관계자는 “의장과 부의장은 대외활동범위가 넓고 참여해야 하는 행사 수도 많기 때문에 의회 직원들이 수행목적으로 따라가야 하는 일들이 많다”며 “이럴 경우 수행직원 식대를 직원격려 명목으로 업무추진비로 결제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답변했다. 직원격려 항목은 대부분 수행 직원의 식비로 사용됐다는 설명이다. 

국회의원 사무실 미팅 13건 사용
상임위원장 업무추진비 내역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부적절한 집행내역도 눈에 띈다. 김수환 기획행정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업무추진비 169건 중 13건을 ‘지역 국회의원 사무실 미팅’항목으로 사용했다. 총 사용금액은 171만5500원으로 모두 식사비다. 시의원의 지역구 의정활동이 해당지역 국회의원과 연결되는 측면은 있지만 이것이 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 위원장의 업무추진범위에 속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고양시민회 관계자는 “상임위원장 역할에 쓰여야할 업무추진비가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과의 만남에 사용된 것은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수환 의원은 “지역현안과 관련된 민원처리를 위해 국회의원 지역보좌관들과 논의하는 자리에서 사용한 것”이라며 “(국회의원 사무실 미팅이)위원장의 업무추진과 무슨 관계가 있냐는 문제제기도 있지만 업무범위에 명확히 선을 긋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 충분히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조현숙 환경경제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지나친 ‘동료의원 챙기기’로 도마 위에 올랐다. 업무추진비 카드결제 125건 중 무려 77건이 상임위 위원 격려식비 혹은 간식비로 사용됐다(꽃 구입 1건). 건당 사용금액에도 거침없었다. 작년 1월 29일 한 참치전문점에서 상임위 위원 격려 항목으로 긁은 카드비는 단일 결제금액 중 가장 높은 49만원이었다. 환경경제위원회 상임위원 8명 전원참석을 기준으로 놓고 봐도 1인당 6만원 이상이 쓰인 것이다. 이외에도 조 위원장의 업무추진비 내역 중 상임위 동료의원 격려 식비로 20만원 이상 지출된 사례가 9건에 달했다. 

특정 식당에 집중적으로 사용된 흔적도 살펴볼 수 있다. 업무추진비 12건이 장항동 한 양갈비 전문점에서만 사용됐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방문한 셈이다. 상임위원 격려식비뿐만 아니라 간담회, 예산안 논의 식비 등 다양한 목적으로 이곳에서 결제가 이뤄졌다. 총 사용금액도 200만원에 달한다. 이에 대해 의회사무국 측은 “위원장님의 개인적인 음식기호와 관련된 부분이라 답변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난감해했다.  

이곳 음식점을 애용했던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바로 조 위원장의 조카가 운영하는 음식점이었던 것.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조 위원장은 “동행했던 의원이나 직원들이 다들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고 이왕이면 조카가 하는 집에서 먹으면 좋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많아서 갔던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같은 식당 집중 이용, 과한 지출 
조현숙 위원장이 ‘동료의원 챙기기’로 돋보였다면 김효금 문화복지위원장(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의회 직원 챙기기’가 눈에 띈다. 업무추진비 125건 중 36건이 ‘의회사무국직원 격려’항목으로 사용됐다. 총 사용금액은 192만8000원으로 카페부터 식당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사용됐다. 

김 위원장은 “의회 전문위원을 비롯해 사무국직원, 속기사 등 챙겨야 할 식구들이 많다”며 “돌아가면서 식사나 간식을 대접했던 것”이라고 답변했다. 직원들을 챙기는 마음은 좋지만 문제는 횟수가 지나치게 많았다는 점이다. 상임위원장이 부의장(39건)에 버금가는 직원 격려비를 사용한 것이 적절한 업무추진비 집행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업무추진비가 중복 결제된 사례도 있었다. 김수환 기획행정위원장의 경우 작년 5월 31일 이마트에서 ‘시의회 운영 관련 논의’항목으로 두 차례 결제했다. 각각 1만5000원, 1만8340원이었다. 이길용 건설교통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작년 1월 31일과 2월 1일 이틀에 걸쳐 원당의 한 고깃집에서 업무추진비 카드를 긁었는데 금액이 9만6000원으로 동일했다. 제출된 집행내역 또한 같은 내용이었다. 첫날은 건설교통위 간담회, 다음날은 건설교통위 간담회 오찬으로 기록됐다. 

특정기간에 업무추진비 사용이 집중된 경우도 있었다. 작년 12월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간 참가했던 ‘전국 지방의회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총 7건, 137여 만원이 사용됐다. 의장, 운영위원장, 환경경제위원장, 건설교통위원장이 번갈아가며 업무추진비 카드를 긁은 것이 눈에 띈다. 결제는 주로 행사가 열린 부산지역 횟집을 비롯해 휴게소, 식당가 등에서 이뤄졌다. 

한편 고양시의회 의장단이 작년 한해 가장 애용했던 식당은 화정에 위치한 한정식 식당인 ‘화정가든’인 것으로 확인됐다. 의장 10건, 부의장 4건, 의회운영위원장 4건, 환경경제위원장 5건 등 총 23건의 업무추진비 결제가 이곳에서 이뤄졌다.

투명한 집행위한 조례제정 필요 
이번 결과에 대해 김철기 고양시민회 정책팀장은 “업무추진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시민 눈높이에 맞춰서 그 목적의 합리성에 근거해서 집행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업무추진비 사용과 공개에 관한 명확한 규정을 마련하고 적법하게 사용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경기도를 비롯해 도내 13개 의회에서 ‘업무추진비 집행기준 및 공개에 대한 조례’를 제정해 운영하고 있지만 고양시는 관련 조례가 없는 상태다. 최근에 조례를 제정한 시흥시의회(대표발의 홍헌영 의원)의 경우 ▲공적인 의정활동과 무관한 개인용도의 사용 ▲공적인 의정활동과 관련이 적은 시간과 장소에서의 사용 ▲친목회, 동우회, 동호회, 시민사회단체 등에 내는 각종 회비 ▲의원 및 공무원의 국내외 출장 등에 지급하는 격려금 등에 대해 업무추진비 사용을 금하고 있다. 

이번 시의회 업무추진비 공개를 통해 시민들의 질타 여론이 거세지자 고양시의회도 관련 조례를 서두르겠다는 입장이다. 의회사무국 관계자는 “시민들의 비판여론이 거센 만큼 전향적으로 판단해서 조례제정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당 조례안에는 기존 의장, 부의장 업무추진비에서 상임위원장까지 공개범위를 확대하는 내용과 함께 공개항목도 보다 구체적으로 담을 예정이다. 의회 측은 올해 후반기 새로운 시의회 의장단 출범에 맞춰 이를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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