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싱글음반 발표하는 팝피아니스트 이권희씨
[고양신문] “한 달에 최소한 한두 번은 공연을 계속 해왔었죠.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무작정 쉰 적은 프로 뮤지션 길을 걸은 이후로 처음이에요. 코로나 때문에 팔다리가 다 잘렸어요. 올해는 좋게 말하면 안식년이죠.”
코로나19로 생계가 막막해진 부류에는 문화예술계 종사자를 빼놓을 수 없다. 이권희(56세) 팝피아니스트도 마찬가지다. 그가 아무리 솔로 음반 6장을 낸 베테랑 뮤지션이라 해도, 한국 최고참 록밴드 ‘사랑과 평화’의 멤버라 해도 야코가 죽을 수밖에 없다.
지난 5월 롯데백화점 일산점에서 조심스레 펼친 두레콘서트 이후로 공연을 하지 못한 그는 허탈한 듯 너털웃음을 지었다. 피아노나 키보드를 연주해서 밥벌이를 이어가는 뮤지션에게 코로나19란 경제적 궁핍감으로 먼저 다가왔다.
코로나 극복 위한 음반 발표
그런데 조그만 행운이 찾아왔다. 경기문화재단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내용으로 기획·실행하는 모든 소규모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지원한다는 소식을 듣고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바로 경기도형 문화뉴딜 코로나19 ‘예술프로젝트’였다. 이 소식에 ‘코로나로 위축된 사람들과 고생하는 의료진을 응원하고 위로하는 음악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그를 스쳤다. 그리고 그 생각은 그를 여름 내내 음악작업실로 끌고 갔다. 한동안 정적에 휩싸였을, 고양시 일산동구 풍동에 있는 그의 음악작업실에는 프로 음악가의 치열함이 다시 풍겨져 나왔다.
이권희씨가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담아 이번에 발표하는 음악은 3분20초 길이의 싱글이다. 8월 말 신작음원으로 발표할 예정인 이 곡의 이름은 ‘K-Miracle’. 그에 따르면 이 곡은 기존 솔로 음반에서 들려줬던 서정적이고 단아한 피아노 선율에서 벗어나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전개를 특색으로 한다. 또한 곡과 조화를 이룰 영상도 함께 제작한다. 그는 “K-Miracle은 코로나로 인해 의료진들이 겪는 긴박한 현장상황과 각지의 방역단들과 국민들이 코로나에 의연히 대처하는 모습,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생해 가야한다는 메시지를 영상에 담아 유튜브와 각종 SNS에 공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랑과 평화 멤버로 키보디스트로 활동
이권희씨를 6장의 솔로 음반을 발표한 팝피아니스트로 소개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는 록밴드 사랑과 평화의 멤버로 오랫동안 키보디스트로 활동해왔다. 현 멤버 중 리드보컬을 맡은 이철호씨 다음으로 연배가 높은 멤버다. 사랑과 평화가 어떤 밴드였던가. 사랑과 평화가 1978년 발표한 1집 타이틀곡 ‘한동안 뜸했었지’ 1979년 발표한 2집 앨범의 ‘장미’ 같은 곡들은 당시 국내 가요 분위기에서는 새롭다 못해 거의 도발적인 곡들이었다. 8비트 위주의 록음악을 거부하고 흑인음악의 16비트 훵키(funky) 리듬을 차용한 산뜻하고 세련된 록사운드는 많은 음악팬들을 매료시켰다.
이권희씨는 1993년 강산에밴드에서 키보디스트로 활동하면서 대중음악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콘서트에서 건반악기를 연주했다. 그가 참여한 가수 목록은 권인하, 최진희, 인순이, 김종찬, 박강성, 조관우, 김종서, 노사연, 패티김 등 쭉 이어진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음악을 더 깊이 배우기 위해 전세금을 털어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온 후로 그의 음악적 선택폭이 더 넓어졌다. 한국을 다시 찾았을 때는 조용필과 위대한탄생의 멤버로 가입하라는 제의까지 받았다. 가입 여부를 고민하고 있던 중 사랑과 평화에서도 가입 제의가 들어왔다. 그래서 수입은 더 많지만 조용필이라는 큰 그늘에 묻히는 것보다 본인의 음악성을 더 발휘할 수 있다고 판단한 사랑과 평화에 가입했다. 더구나 사랑과 평화는 그가 선망하던 밴드였었다. 이 때가 1998년이었는데, 30년 동안 계속 사랑과 평화에서 활동한 것이 아니라 중간에 탈퇴해 나훈아 콘서트에서 건반악기를 다루기도 했다. 그는 적지 않은 시간 함께 공연한 나훈아에 대해 “재벌 총수가 억만금을 줘서 불러도 가지 않을 사람이에요. 아무리 재벌 총수라도 본인의 콘서트에 표를 사서 오라는 거죠. 그만큼 프라이드가 강한 사람이었어요. 살벌한 자기관리에다 의리까지 갖춘, 한마디로 상남자였어요”라고 말했다.
이권희씨는 우연히 솔로로 연주한 피아노 곡에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자, ‘피아노 하나로 사람을 이렇게 행복하게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솔로로 전향했다. 때로는 간이역이나 노을에 대한 단상을, 때로는 울창한 삼나무 숲에서 느끼는 그윽한 정취와 행복감을 피아노 선율로 옮기기도 했다. 그에게 피아노 건반은 손가락 끝에서 돋아난 몸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를 처음 접한 이후 건반 악기에 매력을 느낀 지 50년 가까이 된다. 결국 좋아하는 바를 따라 본인의 인생을 피아노에 맡기기로 했고, 결국 프로뮤지션의 길을 걸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