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공감공간] 파주 ‘평화를품은집’

임진강 근처 소박한 마을에 자리한
평화를 읽고 이야기하고 만드는 집

[고양신문] 소란했던 태풍이 지나간 하늘이 맑다. 파주 파평면 두포리에 자리한 ‘평화를품은집’을 찾아나섰다. 임진강을 따라 문산과 적성을 잇는 큰길을 달리다 두포천을 따라 작은 마을길로 들어선다. 푸르른 숲에 둘러싸인 소박한 마을 풍경이 초행길 방문자의 마음을 푸근하게 안아준다.

대장간과 교회를 지나니 평화를품은집 이정표가 눈에 띈다. 작은 언덕길을 올라 커다란 나무그늘 아래 차를 세우고 입구에 적힌 간판을 천천히 읽는다. 평화를품은집, 평화도서관, 다락갤러리, 평품소극장, 북카페 소라브레드. 리플렛을 보니 여기에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과 책방까지 보태진다. 한 채의 건물 안에 이 시설들이 다 들어있단 말이야? 호기심을 한가득 안고 안으로 들어서는 기자를 황수경 평화도서관 관장이 반갑게 맞는다.

두포리마을과 파평산이 조망되는 언덕에 자리한 ‘평화를품은집’
두포리마을과 파평산이 조망되는 언덕에 자리한 ‘평화를품은집’

벽마다 평화를 담은 책들로 가득

“평화를품은집은 원래 ‘꿈꾸는교실’이라는 어린이작은도서관에서 출발했어요. 교하와 출판도시에서 10년 넘게 작은도서관을 이어오다가 ‘평화’라는 새로운 테마로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6년 전 이곳 임진강가 두포리에 평화를품은집을 지었습니다.”

황 관장의 설명대로 평화를품은집에는 평화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와 전시물, 그리고 프로그램들이 가득하다. 평화도서관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은 이 공간을 채우고 꾸려가는 이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평화가 짓밟힌 세계 곳곳의 참혹한 역사에서부터 노동, 인권, 차별과 편견, 전쟁, 통일, 그리고 환경과 생명까지, 집이 품은 ‘평화’의 범위는 경계가 무한해 보였다.

‘평화를품은집’은 평화를 주제로 한 도서관이자 서점, 자료관, 교육장이다.
‘평화를품은집’은 평화를 주제로 한 도서관이자 서점, 자료관, 교육장이다.

가장 먼저 둘러본 곳은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이다. 이곳에선 아르메니아, 르완다, 오키나와, 난징, 캄보디아 등 세계 역사 속의 대표적 집단학살 사건에 대한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 역사의 비극인 제주4·3, 보도연맹사건, 광주5·18 등의 사건 개요도 함께 전시됐다.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한 이는 평화를품은집 명연파 집장이다. 명 집장은 여러 나라를 돌며 제노사이드 현장을 직접 방문해 현지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평화를 꿈꾸는 공간에서 끔찍한 학살의 역사를 보여주는 이유는 뭘까.
“제노사이드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에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데서 시작하는 사소한 차별이 얼마나 무서운 폭력으로 커질 수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이지요.”

세계 곳곳에서 자행된 집단학살의 책자와 자료들을 전시한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  사진은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보여주는 전시공간.
세계 곳곳에서 자행된 집단학살의 책자와 자료들을 전시한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 사진은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보여주는 전시공간.

아기자기한 갤러리, 책방, 소극장

다락갤러리는 평화를품은집에서 가장 천장이 낮은 공간이다. 갤러리 한쪽에는 위안부 역사를 그린 닥종이 미니어처가 전시돼 있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마을공동체,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는 소녀들, 그리고 위안소의 가슴 아픈 풍경까지 고증을 거쳐 세심하게 표현해놓았다. 평화를품은집 자원활동가들이 닥종이 작가의 지도를 받으며 오랜 기간 수고를 기울인 작품이라고 한다. 중앙에는 닥종이로 만든, 댕기머리를 한 평화의 소녀상도 자리하고 있다.

위안부 조형물이 상설전시라면, 다락방 맞은편 공간은 주기적으로 테마가 달라지는 기획전시공간이다. 현재는 『국경 없는 마을』이라는 책을 주제로 이주노동자 문제를 질문하는 전시를 마련해놓았다. 황 관장은 다락갤러리를 “천장 낮은 다락방처럼, 낮은 마음으로 생각을 정리하기에 좋은 공간”이라고 소개한다.

다락갤러리에 상설 전시되고 있는 위안부 미니어처. 닥종이 작가와 활동가들이 함께 만든 작품들이다.
다락갤러리에 상설 전시되고 있는 위안부 미니어처. 닥종이 작가와 활동가들이 함께 만든 작품들이다.

평화를품은책방은 이름 그대로 평화와 관련된 책들을 판매하는 작은 서점이다.
“도서관을 방문한 분들로부터 이곳에서 만난 책들을 직접 팔아달라는 요청이 이어졌어요. 일반 서점에선 찾기 힘든 책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아예 정식으로 서점 등록을 하고 평화를품은집의 정체성에 맞는 책들을 구비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책방에는 평화를품은집에서 직접 출간한 책들도 여러 권 눈에 띈다. 주로 역사적 비극을 다룬 그림책들이다. 5·18 당시 영문도 모르고 죽음을 맞은 아이의 이야기를 그린 『운동화 비행기』, 4·3사건 때 홀로 살아남은 아이의 아픔을 따라가는 『나무 도장』,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트럭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낸 『제무시』 등은 독자들의 커다란 반향을 얻었다. 황 관장은 “아르메니아와 시리아, 난징 등 세계 제노사이드 사건을 다룬 그림책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평품소극장은 영화를 관람하거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 진행 공간이다. 아래층에는 탁자와 의자가 놓여있고, 위층에는 긴 관람석이 배치됐다. 좁은 공간을 지혜롭게 활용한 설계가 알뜰하다.

평화를 품은 책방. 시중애서는 만나기 힘든, 평화를 다룬 책들을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작은 서점이다.
평화를 품은 책방. 시중애서는 만나기 힘든, 평화를 다룬 책들을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작은 서점이다.

함께 꾸리는 흥미진진 프로그램

공간을 구경했으니, 프로그램을 살펴보자. 평화를품은집에서는 강연, 영화관람을 비롯해 각양각색의 모임이 열리고, 다양한 주제의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평화를품은집의 가장 큰 자산은 자원활동가들의 활약입니다. 서로 다른 재능과 관심을 가진 이들이 평화를품은집의 색깔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거든요.”

자원활동가 중에는 어린이도서관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오는 이들도 있고, 우연히 이곳을 방문했다가 멤버가 된 이들도 있단다. 활동가들은 함께 공부하며 평화를품은집에서 내는 출판물에 글을 싣기도 하고, 평화도서관과 다락갤러리의 전시 큐레이션을 주기적으로 새롭게 선보이기도 한다. 

평화를품은집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을 묻는 질문에 황 관장은 ‘평화책보따리 체험’을 소개한다.
“여러 개의 보따리마다 각각 다른 책, 그리고 게임도구가 함께 들어있습니다. 참가자들은 함께 책을 읽고 제시된 게임을 즐기며 책의 내용을 숙지하게 됩니다. 어느 누구와 함께 해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입니다.” 

보따리를 풀면 무엇이 나올까? 평화 도서를 좀 더 꼼꼼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읽어보자는 취지에서 만든 평화책보따리.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란다.
보따리를 풀면 무엇이 나올까? 평화 도서를 좀 더 꼼꼼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읽어보자는 취지에서 만든 평화책보따리.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란다.

전쟁의 상흔을 평화의 꿈으로

평화를품은집은 혼자 들러 각자의 관심사에 맞는 자료들을 찾아봐도 좋고, 모임이나 단체에서 프로그램을 신청해 방문해도 좋을 듯하다. 아이 손을 잡고 찾아와 책을 함께 읽고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황수경 관장은 “평화를품은집을 찾는 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카페 소라브레드”라고 소개한다. 주말이면 야외 테라스에 놓인 파라솔 테이블에서 향기로운 커피와 직접 구운 빵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테라스에 서니 초록의 자연이 싱그럽고, 멀리 두포리 마을과 건너편 파평산 풍광이 멋지게 조망된다.

평화를품은집은 DMZ와 임진각에서 멀지 않다. 주변에는 한국군과 북한군, 유엔군과 중공군이 치열한 전투를 치른 격전지들이 산재해있다. 더욱이 평화를품은집이 자리한 두포리야말로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점령과 수복을 반복하고 휴전 후에도 오래도록 미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었던, 고통의 역사를 고스란히 치러낸 마을이라고 한다.

황수경 관장은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있는 이곳이야말로 평화를 꿈꾸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며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함께 행복한 마을을 만들어가는 사업도 꾸준히 펼치고 있다”고 말한다.
돌아오는 길, 자유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철조망 울타리가 새삼 눈에 들어온다. 평화를품은집에서 엿본 생각의 실마리를 곰곰이 되새겨본다.

평화를품은집
파주시 파평산로 389번길 42-19
031-963-1625


평화를품은집은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방역수칙 준수를 위해 임시 휴관중입니다. 상황이 완화되면 다시 개관할 예정입니다.

평화를품은집 황수경 관장과 명연파 집장 부부.
평화를품은집 황수경 관장과 명연파 집장 부부.
평화를품은집에서 출간한 평화책. 우리 역사의 비극적인 사건들을 그림책으로 만들어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들이다.
평화를품은집에서 출간한 평화책. 우리 역사의 비극적인 사건들을 그림책으로 만들어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들이다.
주말이면 파라솔을 펴고 자연 속 힐링공간으로 변신하는 카페 소라브레드. 멀리 건너다보이는 산은 파평산이다.
주말이면 파라솔을 펴고 자연 속 힐링공간으로 변신하는 카페 소라브레드. 멀리 건너다보이는 산은 파평산이다.
다문화를 주제로 꾸며놓은 다락갤러리 기획전시공간.
다문화를 주제로 꾸며놓은 다락갤러리 기획전시공간.
권윤덕 작가의 그림책 『씩스틴』을 펼쳐들고 있는 황수경 관장.
권윤덕 작가의 그림책 『씩스틴』을 펼쳐들고 있는 황수경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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