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우리 농장에서 농사짓는 이들은 결과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과정을 중요시한다. 농사를 짓다보면 그 해 날씨에 따라서 풍작의 기쁨을 만끽할 수도 있고, 흉작의 씁쓸함을 안고 돌아설 때도 있다. 그래도 농사를 시작할 때만큼은 누구나 수확에 대한 부푼 기대감을 품기 마련이고 그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월 초에 다양한 열매채소들의 모종을 심을 때만 해도 농장 식구들은 풍년을 기원하며 환한 웃음 속에서 텃밭을 오갔다. 예년보다 사뭇 낮은 봄추위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작물들은 무탈하게 잘 견뎌주었고, 무엇보다 감자와 마늘과 양파와 잎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수확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여주었다.

그러나 일찍이 겪어보지 못했던 장마가 지긋지긋하게 이어지면서 수확에 대한 기대감은 무참하게 꺾여버렸다. 열 평 내외의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은 하늘이 주시는 대로 먹어야지 하고 마음을 비우면 그만이지만 농사의 규모가 달라지면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농장의 시설작업 비용을 충당하느라 열다섯 명의 농산물꾸러미 회원을 모집한 나로서는 하루하루 마음을 졸여가며 하늘을 우러러 비손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거센 빗줄기는 밤낮 없이 퍼부으면서 피해를 키워나갔고 난 농산물꾸러미 회원들에게 아무 것도 보내지 못했다. 그 피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농산물꾸러미 회원들에게 호박즙을 한 상자씩 보내려고 맷돌호박 모종 삼십 개를 심었는데 장맛비에 꽃이 모두 떨어지는 바람에 백여 개쯤 달려있어야 할 늙은 호박은 서너 개만 달랑 달렸고, 묵나물을 만들어서 보내려고 야심차게 심었던 가지는 몇 개 따보지도 못하고 수명을 다했다. 시월 초까지 매주 달려야 할 토마토도 진작 녹아버려서 꾸러미 품목이었던 토마토잼은 구경도 못했고, 꾸러미 회원들에게 한 근씩 보내려고 계획했던 고춧가루도 겨우겨우 두 근을 말리고 종을 쳐야만 했다. 오이지를 만들어서 보내려고 했는데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오이지는 고사하고 이런저런 장아찌도 다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 배추밭 모습. 이런저런 작물들의 수확이 어려워지면서 요즘은 김장농사에 한껏 공을 들이고 있다.
▲ 배추밭 모습. 이런저런 작물들의 수확이 어려워지면서 요즘은 김장농사에 한껏 공을 들이고 있다.
▲ 사진 왼쪽이 총각무, 오른쪽이 고구마밭이다.
▲ 사진 왼쪽이 총각무, 오른쪽이 고구마밭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울금과 생강과 고구마와 땅콩농사가 잘 돼서 어찌어찌 면은 세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만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요즘은 김장농사에 한껏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태풍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부랴부랴 김장농사를 시작하다보니 시기가 예년보다 열흘쯤 늦어졌을 뿐만 아니라 흐린 날이 많다보니 배추 포기가 제대로 찰지 두고두고 마음이 쓰인다. 그래도 요 며칠 볕이 좋아서 총각무와 돌산갓은 잘 자라고 있다. 향이 짙은 가을상추도 백사십 개의 모종을 심었는데 자라는 모습을 보면 체면치레할 만큼씩은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마저도 이후 날씨가 받쳐줘야 가능한 이야기이다.

다 지나갔으니 하는 이야기이지만 올해 농사는 한바탕 홍역을 앓고 난 기분이다. 그런데 내년에도 날씨가 올해와 비슷할 거라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데 정말 대략 난감하다. 만약에 정말로 내년 날씨가 올해와 같다면 무슨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별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참 답답하다.

그래도 겨우내 지혜를 모아서 봄이 오기 전까지 대비책은 세워놓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하늘이 돕지 않으면 대비책을 세워놓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지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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