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고양신문] 황당했다. 박스에다 차곡차곡 싸놓은 종이와 투명 비닐봉투에 담은 비닐을 버리고 있었다. 지나가던 트럭이 멈춰서더니 운전석 창문을 열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처음에는 너무 어이없어 무슨 말인지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며 불법 쓰레기를 버리는 현장을 목격했으니 사진을 찍어 동사무소에 고발하겠다고 했을 때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아니, 재활용품을 내다놓는데 뭐가 불법이냐니까, 이미 버려져 있던 쓰레기를 가리키며 그것을 버리는 걸 보았다며 안하무인 격으로(이 시국에 마스크도 안 한 채로) 소리를 질렀다.
나도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만약 버리지 말라는 쓰레기를 버리려면 한밤중에 몰래 내다놓지 남들 다 보는 출근시간대에 일을 저지르겠는가. 거기다 주변에는 불법쓰레기 투기를 막아보겠다고 버젓이 CCTV까지 설치해놓았다. 들키기만 해보라, 왕창 벌금을 물리고 말겠다는 다짐이 담긴 현수막도 걸려 있다. 이 양반 설레발을 치다 멋쩍었는지 우리가 내놓은 비닐봉투는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야 맞다고 생떼를 부렸다(나중에 알아보니,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연전에 비닐봉투를 잘 못 분류해 벌금을 낸 적이 있는지라 철저히 지키고 있어 문제될 리 없다). 사진을 찍네마네 하며 소란을 피우다 늘어선 뒷차들이 경적을 울리자 겨우 자리를 떴다.
설왕설래하다 불쾌한 말을 들었다. 길거리에 방치된 쓰레기를 치우지 않자 자기가 동사무소에 연락하니, 자꾸 불법한 쓰레기를 버리니 그런 사람을 고소해달라 했단다. 순간, 두 개의 감정이 교차했다. 하나는 이 양반이 의외로 열혈 시민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동네 입구에 쌓인 쓰레기를 보면서 여러모로 못마땅해 민원을 넣었는데, 그 해결방도를 알려주었으니 누군가 한 명 걸리기만 하면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마음 먹었다가 마침 나를 만난 건지도 모르는 법이다. 사실 동네 입구가 좀 지저분하다 싶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은 나보다는 더 나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한켠으로는 포상금을 노리는 한낱 파파라치가 아닐까 의심도 들었다. 동네 사람이라 했지만, 우리 동네는 분명히 아니고 자기가 사는 곳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러니 동사무소 쪽에 화가 났다. 주민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면 해결하는 곳이 공공기관이지, 그 사람 말이 맞다면, 오히려 분쟁을 부추긴 것이 아닌가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문제를 해결하는 근원적인 방법은 청소차가 마을 안으로 들어와 주는 것이다. 현수막에도 버젓이 종량제 봉투에 담아 집 앞이나 점포 앞에 내놓으라 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이 동네 산 지 (사사오입하면) 15년가량 되는데, 청소차가 동네 안으로 들어온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경고성 현수막도 걸고 CCTV도 설치하면서 청소차가 어느 요일에 동네 안으로 들어와 수거해가겠다는 안내도 없었다. 내가 늘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청소차는 여전히 동네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부아가 낫다. 시민 알기를 뭘로 보고 이따위로 행정을 하느냐 싶었다. 아는 게 병이라고 <맹자> 등문공 상편에 나온 이야기, 그러니까 “백성들이 죄의 함정에 빠진 뒤에야 그들을 붙잡아서 처벌한다면 이는 백성을 법이라는 그물로 잡는 것이니 어찌 어진 사람들이 조정의 지위에 있으면서 백성들을 그물질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전철을 타고 목적지로 가면서 고양시청에 민원 넣으려고 이것저것 찾아보았더니, 카톡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방법이 있었다. 나는 상황을 설명하고 동네로 청소차가 들어오게 해달라 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제주도처럼 마을마다 설치한 클린하우스 사례를 참조하라며 친절하게 사진을 보내주었다. 클린하우스는 ‘공원, 놀이터, 주차장 등 일정한 거점장소에 일반쓰레기, 재활용품, 음식물쓰레기 등 생활쓰레기 분리수거용기를 갖춘 신식 비가림 시설을 설치하여 자동상차식 차량으로 수거‧처리하는 선진 거점수거방식’을 가리킨다. 고양시민원콜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동구청 환경녹지과로 민원사항을 넘겼다고. 이제는 기다려보자. 100만 도시를 이끄는 공무원의 창의적인 문제 해결능력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