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희 『좋아서, 혼자서』 작가 일산 라비브북스 북토크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린 삶
단순·경쾌하게 이젠 혼자로
1인 출판사 ‘북노마드’ 경영
내 내면의 ‘실체·본질’에 집중
[고양신문] 과거의 미래는 결과로서의 현재이고, 미래의 과거는 과정으로서의 현재다. 과거-현재-미래는 사실 모두 동시에 존재한다. 윤동희 북노마드 대표는 대학 졸업 후 20년 가까이를 대기업의 직원으로, 국내 최고의 미술잡지인 월간미술 기자로,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를 새롭게 써왔던 디자인전문 출판 회사 안그라픽스를 거쳐, 문학동네에 스카우트 돼 편집자로 일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임프린트(유능한 전문 편집자를 영입해 별도의 브랜드를 주고 경영권과 출판권을 맡기는 시스템) 회사까지 운영하게 됐다.
“저 역시 한때는 한 학기에 7곳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도 연간 40권의 책을 펴낼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렸어요. 그런데 그렇게 쉼 없이 달려온 후 선택한 마지막 종착지는 ‘혼자’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의 보폭과 나의 속도로 흐리게 말고 선명하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단순하고 경쾌하게 ‘혼자’ 일하기로 했죠. 그렇게 좋아서, 혼자서 일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내게 됐습니다.”
윤 대표가 선택한 그 ‘혼자’ 속에도 역시 그의 과거-현재-미래가 오롯이 겹쳐진 채 동시에 존재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올해 초 『좋아서, 혼자서』 출간 후 전국을 다니며 1인출판, 1인사업, 작은 자영업체를 운영하고 있거나 운영하고픈 소망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있는 윤동희 대표가 지난 24일 저녁 라비브북스를 찾았다. 지난해 초 일산 정발산동 저동중학교 옆 한적한 주택가에 커피가 있는 작은 동네 서점을 표방하며 문을 연 곳이다. 이 공간을 아끼는 10여명의 독자들과 주인장 부부는 그 ‘혼자’가 왜, 어떻게 좋을 수 있다는 것인지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북토크는 작가가 준비한 일방적인 강연이 아니라 SNS 등을 통해 독자들이 사전에 남긴 여러 가지 질문에 답을 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가수 아이유가 그런다고 하는 것처럼 저도 슬럼프가 오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극복하거나 이겨내려고 애쓰지 않아요.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책을 읽고 싶지 않으면 안 읽고, 심지어 돈이 벌기 싫으면 돈도 안 법니다. 1인 출판사로 독립하면서 한 달에 딱 2주만 일해도 삶이 유지될 수 있도록 업무, 수입, 지출, 인간관계 등 삶의 모든 부분을 새롭게 세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슬럼프라는 것을 냉철하게 들여다보면 지나친 욕심과 욕망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것도 나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남을 향한 혹은 세상을 향한 욕망인 경우가 대분입니다.”
윤 대표는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경우에도 혼자서 일하는 것을 추천하겠냐‘는 질문에는 정작 중요한 것은 혼자이냐 함께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이 하려는 일의 기준을 명확히 해둘 것을 강조했다. 세상이 좋다고 정해 놓은 기준이 아니라 나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한 한다는 것이다. 그 내면으로부터의 목소리가 나를 이끌어가는 실체이자 본질이고, 그것을 구현할 수만 있다면 함께이거나 혼자이거나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혼자 일하려면 스마트하게 해야 합니다. 제가 비록 1인 출판사를 운영하지만 ERP(전사적자원관리)를 활용해 업무를 관리하고,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시공간 제약 없이 디자이너, 편집자들과 소통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저는 종이를 다루는 출판인이지만 그 누구보다 디지털을 잘 이용하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늘 이야기해요.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독자들의 정서와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는 책은 외면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윤 대표는 일산에 대한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몇 해 전 파주 출판단지 근무 당시 갑자기 심장에 이상을 느꼈지만 출동할 앰블런스가 없어 직접 자신의 손으로 자동차를 몰고 와 치료 받은 곳이 동국대일산병원이었다. 뇌혈관 질환에 이어 심장까지 더 이상 몸을 방치할 수 없었고, 자신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곤란하거나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모든 것을 정리해 놓았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 등 가족을 위한 유서를 써놓고 수시로 업데이트도 하곤 한다.
“내일 당장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유서를 한번 씩 써보세요. 내가 숨을 쉬는 동안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눈에 들어오면서 하루하루 삶 자체가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내 속에 감추어져 있던 실체와 본질을 발견하는 기회가 됩니다. 살면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설정해 놓은 목표가 아니라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나 자신만이 간직할 수 있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도 분명히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한때 췌장암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 받았던 스티브 잡스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은 죽음이고, 그 죽음은 새것에 길을 내주기 위해 헌것을 청소해주며 삶의 변화를 주도하는 존재’라면서 ‘타인의 견해라는 소음 때문에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져라’고 강조했던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축사가 윤 대표의 말과 오버랩 되면서 라비브북스라는 작은 공간에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