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학교 명사초청 강연회 심재명의 ‘한국영화 30년’
국내 대표 여성영화인이자
20년전 여성영화인모임 주도
“도전 줄고 자본 눈치 늘어
코로나, 새 플랫폼 등장 등
영화산업의 고민은 깊어져.
여성감독 평단 평가 고무적”
[고양신문]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여성영화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고양시를 찾았다. 사단법인 마을학교와 고양신문은 24일 ‘영화하는 여자 심재명의 한국영화 30년 이야기’라는 주제로 온라인 명사초청 강연회를 진행했다.
심재명 대표는 95년 영화사 명필름을 설립한 뒤 <접속>(1997년), <해피엔드>(1999년),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등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주요 작품을 제작한 실력자다. 특히 국내 최초로 여성영화인 모임 창립(2000년)을 주도했으며 최근 출간된 ‘영화하는 여자들’에 인터뷰이 중 한 명으로 참여하는 등 여성영화인으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다. 2015년 파주출판단지에 명필름 영화학교·아트센터를 건립하며 고양파주지역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
이날 강연에서 심 대표는 87년 서울극장 입사 이후 30년간 영화인으로 살면서 경험한 이야기, 95년 명필름 설립 이후 명필름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은 47편의 영화 이야기 등을 풀어냈다. 이날 강연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민주화운동 이후 찾아온 한국영화 르네상스
한국영화산업의 역사는 정치적 변화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60년대 당시 한국영화 붐이 일던 시기가 있었지만 유신정권이 들어서면서 검열과 통제에 의해 암흑기를 거치게 된다. 전환점을 맞이한 계기는 87년 민주화 운동부터였다. 사회 전반에 표현의 자유가 되살아나고 영화산업 또한 90년대부터 신 르네상스를 맞게 된다. 박찬욱, 봉준호, 임순례 등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재능 있는 감독들도 이때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영화제작자로서 이 시기에 만든 대표작이 <접속>과 <공동경비구역 JSA>다. 지금은 흥행작이 됐지만 시작 당시만 해도 ‘무모하다’는 평이 많았다. 특히 새로운 시선의 분단영화였던 <공동경비구역 JSA>는 제작자로서도 큰 용기를 냈던 시도였다. 영화촬영 도중 남북 간에 서해교전 사태가 발발하면서 영화상영 자체에 대한 위기도 있었지만 다행히 개봉을 앞둔 시점에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고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됐다.
90년대 영화산업이 활성화 될 수 있던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정부차원의 지원도 있었고 96년 부산국제영화제 등 각종 국제영화제들이 생겨나면서 영화산업의 저변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젊고 유능한 영화인들이 대거 진입한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 지금은 유명무실해졌지만 초창기 스크린쿼터제 시행을 통해 한국영화산업을 일정정도 보호했던 것도 큰 힘이 됐다.
코로나 이후 영화산업 새로운 전망 필요
98년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시작으로 대기업 자본이 유입되면서 지난 7년간 연간 관객 수는 2억여 명에 달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한국영화가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 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도전적이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영화들이 줄어들고 자본의 눈치를 보는 영화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스크린독과점으로 인한 ‘제로섬싸움’도 문제가 되고 있는데 실제로 최근 몇 년간 한국영화산업은 마이너스 수익에 돌입하고 있다.
여기에 올해 코로나 팬데믹이 결정타가 되고 있다. 영화산업 매출이 –70%대로 떨어지면서 산업의 위기가 도래한 상황이다. 게다가 넷플릭스 등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으로 이제는 영화를 영화관에서만 본다는 고정관념이 변화되면서 어떤 콘텐츠로 나아가야 할지 영화제작자로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편으로 여성들의 영화계 진출이 점차 눈에 띄고 있다. 현재 제작자 중 15~30%. 연출 감독 중 10% 정도가 여성들이다. 최근 2~3년간 여성감독들의 활약상도 눈에 띄는데 특히 독립영화계 쪽에서 여성감독들의 약진이 눈부시다. 최근 나오는 단편, 장편영화제 출품작의 50% 정도가 여성감독들의 작품으로 상업적인 성과는 아직 미미하지만 평단의 평가는 매우 좋은 상황이다. 이처럼 과거 전형적인 피라미드 구조였던 영화계 성비구조가 점차 깨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영화인모임 출범 20년, 돌아보는 계기 돼
올해로 25년차를 맞이한 명필름은 그동안 4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시대와 사람, 로맨스, 가족, 여성 등 주로 현실에 발 닿아있는 주제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 왔다. 때로는 제작사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실패했던 작품도 있었던 반면 대다수가 반대했던 프로젝트를 끌고 나가서 보란 듯이 성공했던 경우도 있다. 후자의 경우 대표적인 영화가 <우생순>이었다. 여성 핸드볼 대표팀의 이야기에 누가 관심을 가지겠냐며 회사 내에서도 반대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둬서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제작자로서뿐만 아니라 여성영화인으로서도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올해 (사)여성영화인모임 출범 20년을 맞이해 90년대 이후 영화계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해온 여성들을 조망하는 책을 제작하는 데 함께 참여했다. 그동안 함께 일해 온 여성영화인들이 이 책을 통해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 연대의식 등을 담백하게 풀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요즘은 새롭게 진출하고 있는 젊은 여성감독들을 접하면서 새로운 동력을 얻고 있다. 제 딸도 영화전공을 하고 있는데 서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많이 의지가 되는 것을 느낀다. 앞으로 여성영화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싶고 특히 당면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역할도 고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