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 시민학교 3강] 최재헌 건국대 세계유산학과 교수

북한산성, 세계유산 등재자격 충분
한양도성-탕춘대성과 손잡고 도전해야
시민이 참여하는 아카이빙 작업 필요

(기사 하단 동영상 첨부)

'북한산성 시민학교'에서 강의를 진행한 최재헌 건국대 대학원 세계유산학과 교수.
'북한산성 시민학교'에서 강의를 진행한 최재헌 건국대 대학원 세계유산학과 교수.

[고양신문] 북한산성 시민학교 세 번째 강의가 최재헌 건국대학교 대학원 세계유산학과 교수를 초청해 지난달 28일 열렸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을 역임한 최재헌 교수는 세계유산 등재에 관한한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손꼽힌다.

'북한산성의 군사유산 가치와 세계유산 등재 과제’라는 타이틀로 강연을 한 최 교수는 ▲세계유산에 대한 개념 설명 ▲등재 절차와 조건 ▲북한산성의 군사경관적 가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시민들의 활동 등을 조목조목 짚었다.

특히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그리고 탕춘대성을 축성하며 비로소 완성된 조선 후기의 수도방위체계야말로 세계유산의 등재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북한산성만의 차별성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세계유산 등재 전략을 짜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문가의 안목으로 정리된 지식과 정보를 일반 시민의 눈높이로 풀어낸 최 교수의 강연은 그 자체로 ‘북한산성 시민학교’의 취지와 가치가 무엇인지를 방증했다.

경기문화재연구원이 주최하고 고양시·고양신문이 후원하는 북한산성 시민학교는 고양의 자랑스러운 역사·문화 자산인 북한산성의 세계유산 등재를 기원하는 고양시민들의 공부 모임이다. 아쉽게도 이날 강의는 코로나19 거리두기 단계 격상에 따라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강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북한산성 대동문 [사진=이재용]
북한산성 대동문 [사진=이재용]

▮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란 무엇인가

흔히들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세계문화유산을 혼용하곤 하는데, 유네스코에서 운영하는 제도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는 ‘세계유산(World Heritage)’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 유네스코 지정 유산은 그밖에도 인류무형문화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이 있다. 세계유산과 인류무형문화유산은 국제 협약에 의해 외교적으로 인준되기 때문에 정부(문화재청)가 신청 주체가 된다. 1975년부터 발효된 세계유산 협약에는 현재까지 197개국이 가입돼 있고, 1121개의 세계유산이 등재돼 있다.

세계유산은 하나의 유산이 특정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고 인정될 때 지정된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등재 자격을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지녀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의식주와 같이 인간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문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말이다. 북한산성은 ‘방어와 생존’이라는 보편성을 지닌다. 탁월함이란 한 문화권 안에서의 탁월성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탁월함을 갖춰야 한다.

세계유산을 관장하는 기구는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이며,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국제문화재보존복구연구센터(ICCROM)등 국제적 전문가들의 자문기구가 구성돼 있다.

▮ 세계유산의 유형

세계유산 중 문화유산의 대상은 3가지다. 첫째는 고고학적 유적, 혹은 구역(sites)이다. 둘째는 건축물이나 암각화 등 인간이 의미를 남겨놓은 기념물(monument)이다. 세 번째는 독립적이거나 연속적인 건물군(buildings)이다.

세계유산 중에는 서구열강이 지배했던 시기의 종교유산이 가장 많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세계 곳곳의 다양한 지역문화를 반영하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다.

자연유산은 생물서식지나 자연경관, 자연기념물 등이다.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의 용암동굴지대가 유일하게 자연유산에 올라 있다.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같이 등재되는 복합유산은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다.

▮ 세계유산의 등재 기준

세계유산위원회가 제시하는 등재 기준은 총 10가지다. 이 중 하나 이상을 충족해야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다는 말이다. 등재기준 1번부터 6번까지는 문화유산에 적용되고, 7번부터 10번까지는 자연유산에 적용된다. 10개의 등재 기준과 각각에 해당하는 우리나라의 주요 유산은 아래와 같다.

▲1. 인간의 창조적 걸작품(석굴암과 불국사) ▲2. 문화지역 안에서의 인간가치의 중요한 증거(수원화성, 창덕궁, 남한산성, 백제역사지구) ▲3. 보존하지 않으면 사라질 현재나 과거의 문화 전통의 예외적 증거(고인돌, 경주역사지구, 조선왕릉, 하회와 양동, 창덕궁, 수원화성) ▲4. 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보여주는 건축적, 기술적 총체(해인사 장경판정, 종묘, 남한산성, 석굴암 불국사, 창덕궁, 수원화성) ▲5. 열악한 환경에서의 자연과 환경의 조화와 상호작용(실크로드) ▲6. 세계적으로 중요 사건, 전통, 문학·예술과의 직·간접적 연관성(해인사장경판전, 조선왕릉)

▲7. 최상의 자연미나 뛰어난 자연현상(제주도 용암동굴) ▲8. 지형학, 지질학, 자연지리학적 지구 역사상 주요 발전 단계(제주도 용암동굴) ▲9. 생태학적 주요 진화 사례(케냐 국립공원) ▲10. 생물다양성의 중요한 사례(중국 쓰촨 자이언트팬더 보호구역)

북한산성의 경우 등재기준 3번과 4번을 적용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위의 기준과 함께 ‘진정성’과 ‘완전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따라서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사료적 근거들을 제출해야 하고, 완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산의 모든 구성 요소를 온전하게 포함해 내야 한다. 

▮ 등재 이후의 보호와 관리

많은 이들이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국제법에 의한 규제가 집행되지 않을까 오해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세계유산에 등재되더라도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는 국내법에만 적용받는다. 다만 세계유산에 신청하려면 도시화나 상업시설의 잠식을 방지할 완충구역을 반드시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북한산성의 경우 문화재보호법이나 국립공원관리법에 근거해 이 사항을 실천할 수 있다.

▮ 세계유산 등재 효과

세계유산 등재의 기대 효과는 무척 크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등재의 관광홍보효과를 2조원으로 추정한다. 세계유산에 등재됐더라도 개인의 소유권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며, 오히려 세계유산기금으로부터 기술적 조언과 재정적 원조를 받을 수 있다. 또한 국가의 정기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체계적인 보존과 관리가 가능해진다.

▮ 지역 주민들의 이해와 지지

따라서 지역주민의 호응과 참여 역시 무척 중요하다. 설악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 할 때 세계유산 등재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주민들이 강력한 반대로 인해 등재가 불발된 사례가 있고, 남한산성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때도 주민들의 오해를 설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세계유산 등재는 이 땅에서 살다 간 수많은 조상들의 영령을 기리는 마음으로 추진해야 한다. 북한산성도 마찬가지다. 험준한 산에서 산성을 쌓기 위해 피땀을 흘리고, 때로는 목숨을 버리기까지 한 조상들의 노력을 생각하면 세계유산의 값어치는 충분하다.

세계유산에 등재하려면 잠정목록 등재, 기초연구, 신청서 제출, 실사 등의 절차를 차례로 거쳐야 하는데, 최소 5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린다. 지자체나 주민이나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세계유산 등재를 욕심내서는 안 된다.

▮ 북한산성의 차별성

우리나라 대부분의 성은 성곽이 하나인 단곽성인데, 북한산성은 중심부에 중성이 하나 더 있는 복곽성이다. 이게 남한산성과의 차이점이다. 또한 지형에 따라 성벽의 높이를 4단계로 적용했다. 자연의 지형을 지혜롭게 활용해 축조 기간을 단축하면서도 방어력을 극대화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탕춘대성을 같이 쌓았다는 것이다. 남한산성이 임금이 피신을 가서 항전하는 성이라면, 북한산성은 임금과 20만 명의 도성 주민 모두가 함께 들어가서 장기항전을 하기 위한 성이다. 도성을 수호하는 삼군문(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이 직접 산성을 쌓고, 산성 내에 유영지를 두도록 한 점에서도 이러한 방어전략이 잘 드러난다.

이처럼 한양도성-탕춘대성-북한산성을 연결하는 18세기 도성방어체계의 완성은 북한산성이 지니는 결정적인 탁월성이라 할 수 있다.

한양도성-탕춘대성-북한산성의 연결체계를 한 장의 지도 속에 담은 ‘도성연융북한합도(都城鍊戎北漢合圖)’.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한양도성-탕춘대성-북한산성의 연결체계를 한 장의 지도 속에 담은 ‘도성연융북한합도(都城鍊戎北漢合圖)’.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 북한산성의 군사경관적 중요성

최근 세계유산 심사의 경향을 살펴보면 문화경관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성곽 군사경관의 개념 안에는 당시의 무기체계와 유효사거리를 포함한 분석이 포함돼야 한다. 북한산성 수축 당시 우리나라의 무기체계는 화포 중심으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이를 반영하듯 북한산성 곳곳에는 포루와 사대가 잘 조성돼 있다.

북한산성은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쌓았지만, 축조에 앞서 37년간 논의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숙종 시절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성곽을 재정비하며 고도의 축성 기술을 축적한 시기였다. 이렇듯 당대의 국제정세와 축성기술의 변천을 함께 살펴야 한다.

성곽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는 국제성곽군사유산위원회(ICOFORT)가 제정한 헌장에 입각해 심의를 한다. 이코포트 헌장에는 인류학적 가치, 전략적 가치, 건축기술적 가치 등 8가지 항목이 규정돼 있다. 이 중 중요한 항목들을 살펴보자.
 
▮ 북한산성의 건축기술적 가치

북한산성은 당대의 뛰어난 성곽 건축기술을 증명해준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 기술자들과 인부들이 체계적인 역할 분담으로 각각의 작업을 담당했고, 어느 구간을 누가 쌓았는지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다. 건축 기술은 사람을 통해서 전달된다. 남한산성의 건축 기술이 북한산성에 더 발전된 형태로 적용됐다가, 이후 수원화성으로 건너간다.

▮ 지리적·문화경관적 가치

북한산에는 32개 봉우리가 있는데, 성곽의 가장 낮은 곳과 높은 곳의 고도차가 700m 이상이 될 정도로 지형과 산세를 고스란히 활용했다. 또한 방어에 허점이 없도록 산성 주위에 규봉(窺峯, 성 안쪽을 엿볼 수 있는 봉우리)이 전혀 없도록 성곽의 범위를 설계했다.

북한산성과 한양도성의 거리는 불과 4km밖에 안 되기 때문에, 유사시 2시간이면 산성으로 들어올 수 있다. 
북한산성이 자리한 북한산은 삼국시대부터 한반도 중앙의 가장 중요한 요충지였다.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온 한북정맥과 한남정맥이 만나는, 풍수적으로 가장 기가 센 길지로서 한양도성의 진산(鎭山)이다.

북한산성 중성문 [사진=이재용]
북한산성 중성문 [사진=이재용]

▮ 북한산성의 인류학적 가치

서양과 일본의 성은 캐슬(Castle)이다. 성 안에는 봉건영주들이 살고, 백성들은 성 밖의 마을에 산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성은 모두 포트리스(fortress), 다시 말해 요새다.

우리나라의 전쟁은 영주들이 싸우는 내부 전쟁이 아니라 100% 이민족의 외침이다. 따라서 임금과 관군과 백성이 함께 싸우고 지켜내야 한다. 나 혼자만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백성과 같이 운명공동체를 이루는 전쟁이 우리나라의 전쟁이다. 북한산성은 이런 여민공수(與民共守)의 개념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역사유산이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안현석봉(鞍峴夕烽)’. 간송미술관 소장.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안현석봉(鞍峴夕烽)’. 간송미술관 소장.

▮ 북한산성의 기억·정체성의 가치

북한산과 북한산성은 글과 그림 등 다양한 예술작품 속에 아련하게 남아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보면 한강과 그 너머에 북한산이 보인다. 그림으로 그려 걸어놓고 바라보면 안심이 되는 상징수호경관이라 말할 수 있다.

▮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시민들의 동참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북한산성과 관련한 풍성한 스토리를 모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요청된다. 특히 등산 다니면서 찍은 오래 전 사진들을 모아야 한다. 현대에 와서 진행된 복원 공사 이전의 여장의 원형이 시민들이 소장한 사진을 통해 확인될 수도 있다.

북한산성이 축성된 후 300년 동안 이 성과 함께 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중요하다. 전승설화는 물론, 북한산성 안쪽 마을에 실제로 거주하셨던 어르신들의 구술기록도 늦기 전에 채록해야 한다. 이러한 아카이빙 작업 하나하나가 향후 세계유산 등재 이후 새로운 관광 아이템이 될 것이다. 

또한 북한산성의 훼손을 막기 위해 정기적으로 산을 찾는 시민들이 사진을 찍어 제보하는 시스템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특히 유적의 보존에 위협을 주는 지장목 문제,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북한산과 북한산성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아져 문화유산 보전관리 종합계획에 주민들의 목소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북한산성의 세계유산의 가치는 다른 곳이 아니라, 산성 주변에 살고 계신 고양시민들의 DNA에 들어있다. 이 땅에 뿌리 내리고 살아온 우리들의 훈장이다.

(아래 동영상을 클릭하시면 최재헌 교수님의 강의를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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