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풀뿌리공동체 5주년 토론회 ‘고양시 자치공동체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행정서비스 높아졌으나 정책결정에 시민참여 미흡
주민총회가 주요사안 결정, 공직자는 조력자여야
주민세 환원으로 중장기적 자치계획 세울 수 있어
주민자치회 전면전환 통해 예산지원방안 마련해야
[고양신문] 올해로 10년째를 맞이한 자치도시 고양시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그려보는 의미 있는 행사가 마련됐다. 고양시 주민자치 1세대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고양풀뿌리공동체가 지난 27일 원당행복학습관에서 창립 5주년 기념 토론회를 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고양시 주민자치정책에 참여해온 전문가 5명의 발표와 함께 마을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는 다양한 시민들이 비대면 화상참여를 통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특히 이날 토론회에서는 고양시 자치도시 계획의 핵심인 마을공동체사업을 중심으로 주민자치회 전환계획, 주민세 환원사업 도입 등 당면과제들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됐다. 발제자들은 그동안 추진되어온 고양시 자치공동체 사업 성과들을 토대로 이제 동 단위 주민자치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주요 내용들을 정리했다.
행정서비스 수요자 역할 넘어서야
“진정한 지방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는 행정중심, 관료중심의 ‘산출의 정치’에서 이제는 주민이 주인으로 참여하는 ‘투입의 정치’가 필요합니다. 일방적인 행정서비스에만 기댈 경우 주민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약화되고 자칫 ‘부드러운 독재(soft despotism)’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첫 번째 발표를 맡은 김범수 연세대 디지털사회과학센터 연구교수는 주민자치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론적 논의로 비례성 확대를 이야기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통치성(책임성)과 비례성(대표성)의 원리로 운영되는데 한국의 경우 오랜 군사독재시절을 거치면서 통치성은 강화된 반면 다양한 계층과 시민들이 정치공동체에 참여하도록 하는 비례성은 약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실제로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시민참여 측면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 지방자치제 현실과도 맞물린다. 김 박사는 “과거에 비해 행정서비스 수준은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정책결정과정에 시민들이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는 되물어봐야 한다”며 “사실상 이미 만들어진 정책을 소비하는 정책소비자 역할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통치성과 비례성이 조화를 이루는 지방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일까. 김범수 박사는 1930년대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진행됐던 자치모델의 예를 들었다. 이곳에서는 2000~3000명이 참여하는 주민총회를 통해 세금 징수관, 보안관, 서기, 복지감독관 등 필수영역에 종사할 공직자들을 선출했으며 조례제정 및 예산결정권도 부여했다. 또한 지방의원에 해당하는 대리인(selectman)도 선출했는데 이들은 법안제정 권한이 없는 대신 주민총회를 준비·안내하는 등 주민들이 스스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Helper)의 역할을 담당했다. 김 박사는 “고양시에서도 동 단위 차원에서 이러한 주민총회를 통해 중요사안을 주민들이 직접 결정하고 공직자들이 조력자 역할을 담당하는 지방민주주의 모델을 충분히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주민자치 시스템 재구조화 필요
이어 발표를 맡은 이춘열 고양풀뿌리공동체 운영위원장은 108만 도시인 고양시에서 주민자치정책이 갖는 의미와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위원장은 “고양시는 각종 규제와 취약한 기반시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반대로 훌륭한 인적자원 인프라가 존재한다”며 “사람이 자산인 도시에서 발전 동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참여를 통해 시민들의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자치공동체도시 추진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고양시는 2010년부터 자치도시를 표방하며 관련 정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이 위원장은 말했다. 자치도시 추진정책들이 대부분 단편적인 사업으로만 진행됐을 뿐만 아니라 내실 또한 빈약하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자치공동체사업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체감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됐다.
때문에 현재 고양시가 추진 중인 주민참여자치 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재구조화 및 활성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이춘열 위원장은 주장했다. 마을공동체를 넘어 동 자치, 그리고 도시자치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새롭게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당면한 우선과제로 자치도시 비전을 위한 기본 토대인 마을자치 육성 및 활성화 방안이 제안됐다.
구체적인 추진사업은 ▲마을자치 활성화 및 주민자치회 전환 로드맵 작성 ▲교육훈련/운영실습 등을 통한 주민자치역량 배양 ▲동자치지원단 구성, 지원인력 양성 및 파견 ▲동 주민주도 자체 사업비 배정 및 집행 등이다.
이승희 재미있는 느티나무 온가족도서관 관장은 공동육아에서 출발해 지금은 마을의 거점이 된 동네 작은도서관 운영에 이르기까지 20년 동안의 공동체 활동 경험을 중심으로 사례발표를 진행했다. 이승희 관장은 “처음에는 이사 온 뜨내기들이 모여 시작한 작은 활동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도서관을 거점으로 동네 주민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고양시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벤치마킹하는 마을공동체 성공사례가 됐다”며 “지금은 공동체를 기반으로 지역사회 다양한 영역에 참여하며 마을자치까지 꿈꾸고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관장은 “공동체 활동을 통해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제도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경험했다”며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자치의 의미”라고 강조했다.
주민자치회 구성 대표성 확보해야
이날 토론회 발표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내용은 현재 고양시가 추진 중인 동 주민자치회 전환계획에 대한 지적과 주민자치 활성화 방안 중 하나로 제기된 주민세 환원사업 도입 제안이었다. 동 자치 핵심기구인 주민자치회를 내실 있게 구성하고 권한과 책임, 예산확보를 통해 진정한 마을자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한국공공사회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최경애 고양시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은 앞서 서울시에서 진행되어 온 주민자치회 전환 추진사례를 토대로 고양시 주민자치회 전환사업을 둘러싼 여러 쟁점들에 대해 논의를 진행했다. 현재 고양시는 기존 2개 동(풍산동, 창릉동)외에 주엽1동, 식사동, 고양동, 정발산동, 화정2동 등 5개 동을 올해 시범동으로 선정해 주민자치위원회를 주민자치회로 확대 개편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추진 일정이 더딘데다가 이미 구성된 주민자치회들 또한 대표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최 사무국장은 서울시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의 주요 특징으로 ▲주민대표성 ▲주민권한 강화 ▲주민개방성 ▲주민공론장 ▲마을자치센터 및 동자치지원관 등을 꼽았다. 대표적으로 금천구 사례의 경우 주민대표성 강화를 위해 모집기간 동안 활발한 홍보활동은 물론 추첨제 위원선정방식을 채택했으며 주민권한 강화를 위해 자치회에 주민세 및 시민참여예산 사업선정 권한을 부여했다. 아울러 다문화복지분과, 자연순환분과 등 각 동별로 주민들의 요구가 반영된 분과위원회를 구성해 개방성을 보장했으며 분과별 자치계획을 수립해 주민들을 직접 만나고 총회라는 공론장을 통해 이를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행정은 마을자치센터와 동자치지원관 등을 통해 주민자치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반면 고양시는 어떠할까. 최 사무국장은 “올해 주민자치회로 전환된 5개 동의 경우 자체적으로 홍보활동을 통해 위원모집에 나섰지만 모집결과 전체적으로 기존 위원의 비율이 절반이상을 차지했으며 연령대 또한 40~60대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등 대표성 측면에서 한계를 나타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주민자치회 전환 이후 앞으로 운영체계를 어떻게 가져갈 지, 주민자치회와 동 지원주체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특히 주민자치회 전환을 앞으로 전면 실시할 것인지 혹은 선별 실시할 것인지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민세 환원사업 통해 자치활동 예산지원 가능
마지막 발표를 맡은 오수길 고려사이버대 교수는 실질적인 자치운영을 위한 예산확보방안으로 주민세 환원사업 도입을 주장했다. 주민세 환원사업은 현재 지자체별로 개인이나 법인에 대해 균등하게 부과되는 주민세 중 일부를 주민들이 직접 제안한 사업예산에 반영하는 제도다. 오 교수는 “행안부 주민자치회 표준조례에 따르면 주민자치회 활동보장을 위해 주민세 상당액을 지원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며 “주민세 환원사업은 기존 일회성 공동체사업에 그쳤던 공모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치계획을 중장기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주민세 환원사업의 대표 사례로 당진시 사례를 들었다. 당진시는 2016년부터 주민세와 자치사업예산 연계를 통해 읍면동 주민자치 특화사업, 읍면동 주민총회 지원사업, 지역주민 소통협력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왔다. 신평면과 송악읍 경계에 위치한 오봉제저수지 활용방안 모색을 위해 주민들이 주최한 대토론회, 청소년 100인 토론회, 어르신 인생 자서전 학교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세종시의 경우 주민세 환원 사업을 통해 17개 읍면동을 대상으로 60개 사업 11억1700만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주민자치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공공시설 조성 및 개선, 사회적 약자 지원 및 환경개선, 지역문화행사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서울시 또한 주민세 중 개인균등분을 주민자치회 지원예산으로 반영해 마을일자리, 공유공간, 마을방송국 등 다양한 주민자치활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오 교수는 고양시 또한 주민세 환원사업을 통해 다양한 주민자치사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오 교수는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주민총회와 공론장 활성화를 위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테면 유엔에서 발표한 지속가능목표 17가지 주제를 키워드로 놓고 토론회를 통해 지역문제 해결방안을 우선순위를 선정한 다음 주민세 환원사업을 통해 실행한다면 참여 효능감도 높아지고 좋은 의제들도 발굴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진행된 종합토론에서는 자치현장에서 활동하는 주민활동가들의 다양한 고민과 제안들이 나왔다. 특히 고양시에서 매년 진행하고 있는 평가방식의 주민자치 박람회 행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최경애 사무국장은 “경쟁과 평가를 통해 특정 동을 뽑는 방식이 과연 동 자치활성화나 진정한 의미의 주민자치에 부합하는 것인지 질문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춘열 운영위원장은 “이러한 공모방식의 지원사업의 근본적 원인은 현재 주민자치위원회 활동에 대한 시의 재정지원 근거가 없기 때문”이라며 “주민자치회 전환계획을 일부 시범동이 아닌 전면실시를 통해 예산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