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박수택 시민, 생태환경평론가
박수택 시민, 생태환경평론가

 

[고양신문] 영화 ‘타이타닉’의 명장면. 남주인공에게 이끌려 눈 감고 뱃머리에 올라선 여주인공이 팔을 날개처럼 들어올린다. 이윽고 눈을 뜨자 바다 위를 날아가는 듯한 장면이 비치고 여주인공은 탄성을 올린다. 영화의 소재가 된 타이타닉호는 20세기 최고의 과학 기술로 만든 최첨단 호화 여객선이었다. 첫 출항으로 영국에서 뉴욕을 향해 밤바다를 건너며 선실 곳곳마다 파티로 달아오른다. 남녀 주인공의 사랑도 뜨거워진다.

영화 ‘설국열차’의 배경 사건은 기후변화다. 더워지는 지구의 열을 낮추겠다고 세계 지도자들이 화학물질을 뿌렸지만 기대와 달리 대기 온도가 너무 떨어져 빙하기를 맞는다. 문명은 얼어 붙고 인류는 파멸했다. 열차에 오른 사람들만 겨우 살아남았다. 쉬지 않고 달리는 열차에서 사람의 가치는 얼마짜리 표를 사고 어느 칸에 탔는가로 결정된다. 권력과 부를 차지한 앞쪽 칸 계층은 사치와 방탕의 도가니에 빠져 즐긴다. 꼬리 칸의 하층민들은 시꺼먼 ‘단백질’ 묵 덩어리를 한 개씩 배급 받으며 비참하게 살아간다. 원료가 바퀴벌레인 걸 알게 된 하층민 승객들은 분노하며 일어선다.                                                           

타이타닉은 거대한 빙산에 충돌해 침몰했다. 선박회사는 배의 성능을 과신했고 영화에서는 항로 살피는 선원들이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빙산에 부딪히는 장면이 나온다. 과학과 기술은 만능열쇠가 아니었다. 설국열차에서도 지배계급은 열차 엔진이 ‘거룩하다’고 선전했지만 거짓이었다. 붙잡혀온 하층민 아이가 좁은 바닥 공간에 갇혀 결함부분을 잡고 있어야 달릴 수 있었다. 격렬한 투쟁과 갈등의 와중에 열차는 뒤집힌다. 살아남은 건 꼬리 칸의 소녀 주인공과 열차 바닥에 갇혔던 흑인 남자 아이뿐이다. 두 생존자는 털 외투에 의지해 온통 하얀 눈밭에 우뚝 섰다. 빙하기를 견디고 인류는 새출발을 하게 될까? 희망과 좌절이 엇갈리는 가운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두 영화의 무대는 '탈 것(이동수단)'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기선이든 열차든 나름의 공간이며 세상이다. 너른 바깥 세상과는 다른 만큼 서로 삼가고 배려해주지 않으면 불편해진다. 갈등 다툼도 있을 수 있다. 이럴 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승객을 지키는 승무원, 질서를 유지하는 안전요원이다. 선박 전체를 관장하고 승객의 안전과 생활 방편까지 최종 책임지는 역할은 선장이다.

1912년 4월 15일 새벽 타이타닉호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는 승객들을 최대한 대피시키고 자신은 배와 함께 대서양으로 가라앉는다. 2014년 4월 16일 아침, 세월호 선장 이준석은 어린 학생 승객들을 팽개치고 기울어진 배에서 팬티 바람으로 탈출했다. 초기 사고 대응과 뒷수습을 놓고 당시 청와대는 최종 책임이 자기네에게 있지 않다고 강변했다. 사고 직후 긴박한 상황, 이른바 골든타임 6시간에 대통령 박근혜가 무엇을 했는지는 여전히 알 도리가 없다. 당시 정권이 자료를 봉인해놓았기 때문이다. 국민이 맡긴 권력을 허투루 다룬 실상이 드러나면서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박근혜는 탄핵 받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제1야당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뒤늦게 국민 앞에 사죄했다. 자기네 정당 출신 대통령 이명박과 박근혜가 죄를 짓고 옥에 갇힌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고백했다. 집권여당 시절 책무를 다하지 못한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민생과 경제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준비하겠다고 다짐도 했다.

반성에 진정성이 있으려면 행동이 따라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역병 비상시국이다. 시민들은 정부 방역 시책에 따르면서 불편과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 자영업자, 중소 상공인들은 수입절벽, 생계절벽, 생존절벽에 내몰렸다. 가게 월세 부담이라도 덜어 달라는 호소가 절박하다. 건물주 임대인도 힘든 경우가 없지는 않을 테니 면밀히 살피고 정부와 은행도 나서서 거들어야 한다. 여야 가리지 말고 스스로 세비와 수당이라도 줄여 국민과 짐을 나눠지겠다고 나서길 기대한다. 최종 책임은 대통령과 국회 174석, 58% 비중을 차지하는 거대 여당의 몫이다. 검찰 개혁에 들이는 노력만큼 일자리 절벽 끝에서 고통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 그늘 속 소외 계층, 개발 광풍에 위태로운 국토환경을 지키는데 나서라. 코로나 빙하기에 대한민국이 타이타닉, 설국열차 운명을 맞아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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