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수첩] 고양시 상징건축물 지정 유감

고양시가 상징건축물로 지정한 건물. '백마 화사랑'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고양시가 상징건축물로 지정한 건물. '백마 화사랑'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고양신문] 최근 고양시가 고양시 상징건축물’ 3점을 지정·발표했다. 2019년 새로 마련된 조례에 따라 지정된 고양시 1·2·3호 상징건축물은 백마 화사랑(숲속의섬)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 충장공 권율장군 동상과 행주대첩 부조다.

이 중 맨 앞에 이름을 올린 장소는 이름이 두 개다. 처음 상징건축물 지정 담당부서가 발표한 보도자료를 보면 백마 화사랑뒤에 숲속의 섬을 괄호 안에 병기했다. 하지만 이후 공간 운영을 맡은 부서에서 낸 보도자료에는 아예 숲속의 섬이라는 이름이 빠졌다. 새로 오픈한 공식 홈페이지의 이름도 그냥 백마 화사랑이다.

애초 두 개의 이름을 부자연스럽게 병기한 이유는 뭘까. 하나는 부르고 싶은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진짜 이름이기 때문이다.

1979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화사랑은 80~9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백마역 앞 주점·카페촌의 원조이자 대명사였다. 반면 고양시가 상징건축물로 지정한 건물은 1980년대 후반부터 2019년까지 풍동 애니골 입구에서 숲속의 섬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했던 찻집이다.

막연히 짐작하듯 화사랑숲속의 섬으로 이름을 바꾼 것도, ‘화사랑이 사라진 뒤 숲속의 섬이 문을 연 것도 아니다. ‘화사랑90년대 일산신도시가 개발되며 풍동 애니골로 이전을 해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영업을 하다가 또다시 부지가 개발되며 사라졌다. 다시 말해 화사랑숲속의 섬은 전혀 별개의 사업장으로 20년 넘는 세월 동안 공존했었다는 얘기다. 2013년 고양시가 발간한 스토리텔링북 고양 이야기 여행이라는 책자에서도 숲속의 섬이 아닌 오리지널 화사랑이 고양의 스토리 랜드마크 중 한 곳으로 소개되어 있다.

고양시가 상징건축물로 지정한 건물은 2019년까지 '숲속의 섬'이라는 이름으로만 영업을 했었다.  '화사랑'으로 한 번도 불린 적이 없는 건물이다.
고양시가 상징건축물로 지정한 건물은 2019년까지 '숲속의 섬'이라는 이름으로만 영업을 했었다. '화사랑'으로 한 번도 불린 적이 없는 건물이다.

고양시가 숲속의 섬에 건물에 백마 화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은 이유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화사랑이 갖는 상징 자산은 숲속의 섬이 지닌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크기 때문이다. 586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80~90년대 민주화운동세대 중 일부에게는 화사랑은 시대의 울분을 토하며 문학과 예술을 논했던 '청춘의 해방구'이자 '추억의 사진첩'과 같은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두 사업장이 전혀 별개라는 사실을 지역 주민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 고양시가 숲속의 섬건물을 매입하고는 간판을 떼어내고 어물쩍 백마 화사랑이라는 간판을 내 건 행위는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고양시 관계자에게 백마 화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를 묻자 청춘들의 추억을 상징하는, 공간의 의미를 고려한 새로운 네이밍으로 이해해 달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것은 구 능곡역사를 시가 매입해 능곡 1904’라는 새로운 네이밍을 하는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다. ‘능곡 1904’의 경우 역사성과도 부합하고 누가 봐도 새로운 네이밍임을 알 수 있는 이름이지만, ‘백마 화사랑은 누가 봐도 여기가 화사랑이었나?’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고, 그러한 착각을 시가 앞장서서 조장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당 입구에도 '백마 화사랑'이라는 거리 간판이 붙었다.
마당 입구에도 '백마 화사랑'이라는 거리 간판이 붙었다.

주변 사람 모두 시비를 하지 않는 문제를 기자 혼자서 심각하게 따지고 드는 이유는 엉뚱한 이름으로 고양시 상징건축물이라는 지위까지 부여했기 때문이다. 물론 상징건축물은 지자체가 임의적으로 지정·운영하는 것이니, 문화재 지정과 동일한 엄밀성을 요구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시민 모두가 가치에 동의하고 자부심을 투영해야 하는 건물에 누가 봐도 뻔히 보이는 왜곡을 덧붙이는 행위가 불편하다.

개인적 견해를 밝히자면 숲속의 섬은 공간의 역사와 보존된 자료, 그리고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수많은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상징건축물로 지정될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굳이 화사랑이라는 이름에 기대지 않더라도 말이다. ‘숲속의 섬을 원래의 제 이름 그대로 상징건축물로 지정하고 백마 카페촌과 화사랑으로 대표되는 70~80년대 청춘문화를 그대로 계승한 마지막 공간이자 풍동 애니골 먹거리마을의 출발을 연 원조집으로 의미를 정리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쉽게도 시는 정공법을 택하지 않고, 어중간한 꼼수를 욕심냈다.

이번 일을 대하며 떠오른 두어 가지 고민을 더 언급하려 한다. 시는 이번 상징건축물 지정을 위해 심의위원회를 조직하고 장기간 논의를 거쳤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건물의 공식 명칭을 백마 화사랑으로 정하는 것에 대해 심의위원회에서 특별한 이견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의도된 상징 조작에 모두가 동의한 매커니즘은 대체 뭘까.

특정 세대의 감성에 기울어진 이 시대 주류들의 감각도 짚어야겠다. 기자 역시 80년대 후반 화사랑을 다녔던 연배이지만, 소위 586세대의 추억만이 뭔가 특별했던 것처럼 기억하려는 행위는 적잖이 민망스럽다. 시는 이 공간을 모든 시민과 함께 하는 독창적 콘텐츠 교육문화공간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러려면 공간의 이름을 지을 때부터 특정 세대가 아닌, 모든 세대의 감성에 녹아들 수 있는 색깔을 고민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도 백마 화사랑보다는 숲속의 섬을 되살리는 게 보다 어울리지 싶다.

'백마 화사랑'이라고 명명된 건물 입구 뒤편 정원에 덩그러니 놓여진 숲속의 섬 나무 간판. 공간이 지나온 원래의 이름과 시간을 되살리는 것이 '상징건축물 지정'의 첫 단추가 아닐까.
'백마 화사랑'이라고 명명된 건물 입구 뒤편 정원에 덩그러니 놓여진 숲속의 섬 나무 간판. 공간이 지나온 원래의 이름과 시간을 되살리는 것이 '상징건축물 지정'의 첫 단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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