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의 이웃 - 고광현 어르신과 시현이네 가족

덕양노인종합복지관 프로그램
결연가족으로 만난 지 10년째 
가족보다 더 가까이 함께 해와  
“코로나 이기고 나들이 가야죠” 

10년째 가족처럼 지내는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이병호·박순해씨, 고광현 어르신과 이시현군.
10년째 가족처럼 지내는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이병호·박순해씨, 고광현 어르신과 이시현군.

[고양신문]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리고 /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부서지기 쉬운 /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낼 수 있다면 /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방문객’, 정현종 -    

삭막한 도시에서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다보니 다른 사람을 ‘환대’할 마음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던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비대면’, ‘언택트(Untact)’, ‘사회적 거리두기’를 일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언제쯤이면 ‘바람’처럼 마음을 활짝 열고 우리 곁으로 오는 사람을 온몸으로 ‘환대’할 수 있을까. 그 시기가 언제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하나의 가족으로 서로를 ‘환대’하다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에 나와 있는 ‘가족’에 대한 정의다. ‘또 하나의 가족.’ 국내 한 대기업이 90년대 말부터 10여 년 동안 소비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며 꽤나 성공했던 것으로 평가받은 광고 캠페인이다.    

‘가족’이 아닌데 ‘또 하나의 가족’으로 일정기간 동안 살았거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도자료를 통해 받아볼때만해도 ‘아, 세상에 이런 분들도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고광현 어르신과 시현이네 가족이 그런 관계를 10년 가까이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복지관 관계자를 통해 듣고 또 복지관 개관 20주년 보고서에 나온 사연을 읽었을 때, 이분들은 어떻게 ‘바람’을 흉내 내며 부서지기도 했을 한 사람의 마음을 ‘환대’할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이분들에게 무슨 특별한 사연이 더 있는 건 아닐까’하는 호기심도 생겼다. 

지난 세밑에 고광현 어르신(1세대)과 이병호·박순해(2세대), 이시현(3세대) 가족을 만나 10년간 이어온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코로나19 감염예방을 위해 넒은 장소에서 열체크, 손소독, 마스크 착용, 2m거리두기 등의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진행됐다.

2012년 첫 만남 오리엔티이션에서.
2012년 첫 만남 오리엔티이션에서.

- 어르신 굉장히 건강해 보이신다. 특별한 비결이 있는지. 
고광현 “내가 1934년생이니까 올해 87세나 되는데 젊어 보인다니 기분이 좋다. 사실 내가 60세 되던 해에 한쪽 다리가 마비될 정도로 중풍이 심하게 왔는데 우연히 알게 된 쑥뜸과 죽염을 통해 병을 치료하고 다행히 지금까지도 계속 건강을 잘 유지해오고 있다. 평소 마늘도 많이 먹고 부지런히 이런저런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비결 아닐까 싶다.”  

2013년에도 다시 결연가족이 되다.
2013년에도 다시 결연가족이 되다.

- 고양시에서는 언제부터 사셨고 평소 어떻게 지내시는지.  
고광현 “30여 년 전에 아내와 사별한 후 고양시로 이사와 처음엔 원당에서 30년 지금은 원흥동에서 5년 살았으니 35년차 된 고양시민이다.”
박순해 “평소 집안 청소도 깔끔하게 하시고 식사 준비도 설거지도 척척, 손수 김장도 담그시는 등 웬만한 주부 못지않으셔서 우리가 고주부라고 부를 정도다. 젊은 시절 이발사를 하면서 청결함이 늘 몸에 배어있으신 듯하다.” 

2014년 가족 나들이.

고광현 어르신과 시현이네 가족은 고양시덕양노인종합복지관에서 13년째 진행하고 있는 ‘1·2·3세대 결연가족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만났다. 지역 내에 홀로 사는 어르신(1세대)에게 학생과 학부모로 구성된 가족봉사자(2·3세대)가 결연을 맺고 교류하면서 생신을 챙겨드리거나 가족캠프·운동회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가는 프로그램이다. 2008년에 처음 시작된 이래 2020년 말 기준으로 총 97가구가 결연가족을 맺었고 1세대 61명 2세대 119명 3세대 130명 총 310명이 참여했다.
 
고등학생-대학생-군인-사회인으로 성장한 시현과 10년 함께 

2015년 오리엔테이션에서.
2015년 오리엔테이션에서.

- 결연가족으로 처음 만난 게 2012년인데.
박순해 “시현이가 고2때였다. 혼자 계신 어르신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친가와 외가가 멀어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자주 뵙지 못하는 시현이에게도 정서적으로 좋을 것 같아서 자원했다. 그런데 인터뷰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까다로웠다. 1시간 가까이 압박면접을 보는 느낌이었다. 시현이가 대학에 진학하고 군대를 가서도 계속 결연관계가 이어졌다. 덕분에 원래 고등학생으로 한정했던 3세대 자격이 완화돼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할 수 있게 돼 보람이 크다.”  

2016년 시현군이 군에 입대해서도 결연가족 관계는 계속됐다. 
2016년 시현군이 군에 입대해서도 결연가족 관계는 계속됐다. 

- 어르신 댁에 첫 방문했을 때 왜 헛걸음을 했나.
박순해 “미리 전화로 약속하고 갔었는데 집에 안계서서 당황스러웠다. 준비한 음식을 문에 걸어놓고 쪽지를 남기고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전에 맺었던 결연가족과 1년만 하고 나서 결연이 끊어지니까 서운해서 잠시 변심을 하셨다고 하더라. 그 후에는 매주 우리 집과 어르신 댁을 오가며 친밀해지니까 마음을 여셨고 지금까지 진짜 가족처럼 지낸다. 주말이면 우리 집에 오셔서 이웃들과 식사도 같이 하고 고스톱도 치면서 너무나 재미있게 지내신다.”   

2017년 딸기농장에서 딸기 수확체험.
2017년 딸기농장에서 딸기 수확체험.

- 아버님은 주말에 조용히 집에서 편히 쉴 수 없어 불만이지 않았는지.
이병호 “내가 활동적인 편이어서 주말이면 이웃들 만나서 이야기하고 식사하고 하는 것을 즐긴다. 할아버님과도 자연스럽게 함께하다 보니 시골에 계신 부모님 생각도 나고 해서 오히려 더 좋았다.”

- 1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이시현 “우리도 할아버지를 잘 챙겨드리려고 늘 신경 썼지만 가족주의 성향이 강한 우리에게 할아버지도 잘 맞춰주셨다. 힘들거나 피곤해도 우리와 함께 해주시고 이웃들과 만나면 다른 집 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대해주시니까 이웃들 모두가 ‘시현이 할아버지’라고 부를 정도였다.” 

2018년 열린 ‘1·2·3세대 결연가족프로그램’ 10주년 홈커밍데이.
2018년 열린 ‘1·2·3세대 결연가족프로그램’ 10주년 홈커밍데이.

박순해 “어르신이 늘 건강에 신경 쓰시고 활발하게 활동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을 즐겨주신 것이 비결 아니었나 싶다. 또 새로운 또 하나의 가족으로서 원래 가족보다 더 존중하고 서로 간에 예의를 갖추려는 보이지 않는 노력을 했던 것도 큰 힘이 된 듯하다.” 

시현이네 가족은 최근 10여 년 간 살았던 화정을 떠나 인천 청라지구에 새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고광현 어르신과의 만남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박순해 씨가 행신고 국어교사로 일하고 있어서 틈만 나면 어르신을 만나 말벗이 돼 산책도 하고 식사도 함께 한다. 고광현 어르신은 “가까이 살던 우리 가족이 인천으로 이사하고 나니까 만남이 더 반갑고 귀하게 느껴진다”면서 활짝 웃었다.

2019년 가족 나들이.
2019년 가족 나들이.

욕심 내려놓고 포기하면 마음이 편해져
- 새해 소망이 있다면.
고광현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대부분의 이유는 욕심 때문이다. 너무 욕심을 크게 부리지 말고 적당하게 포기할 것은 포기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새해엔 나도 큰 욕심 부리지 않고 건강하게 내 몸 관리 잘하고, 주변에 아픈 이웃들을 나만의 건강비법으로 조금이나마 낫게 해주고 싶다.” 
이병호 “올해 코로나 때문에 다들 힘들었는데 내년엔 코로나를 무사히 잘 이겨내고 결연가족프로그램에 참여한 다른 가족과 함께 예년처럼 다시 캠프를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캠프에도 꼭 취재 와주시라.” 
박순해 “어르신이 건강을 잘 유지하시고 지금처럼 즐거운 가족관계를 계속 잘 유지해서 시현이 장가가는 모습도 보실 수 있으면 좋겠다(웃음).”
이시현 “할아버지와 가족 모두 건강해서 그동안 쌓아온 정을 앞으로 10년이고 20년이고 꾸준히 더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더 많은 분들이 결연가족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 우리 곁에 있는 이웃들과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2020년 고광현 어르신 생신날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가족들.
2020년 고광현 어르신 생신날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가족들.

아름다운 그이, ‘사람’이 더 그리운 시절
취재를 준비하며 덕양노인종합복지관의 ‘1·2·3세대 결연가족프로그램’은 노인복지 우수프로그램(2009년)이나 휴먼네트워크 우수 멘토링 사례 공모전 기관으로 선정(2015년)되면서 두 번이나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할 정도로 대표적인 복지프로그램이라는 이미지가 도드라졌다. 하지만 정작 이 ‘또 하나의 가족’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러한 결연가족이라는 것이 반드시 큰 결심을 해야만 가능한 프로그램만은 아님을 알게 됐다.  

2017년 가족캠프. 
2017년 가족캠프. 

인구가 줄고 있지만 오히려 세대수는 늘어나고 있다. 점점 더 개인화 되고 파편화 돼가고 있는 요즘 ‘가족’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고, 이러한 결연가족 모델이 우리 사회의 취약한 복지 그물망을 촘촘히 이어주는 또 다른 출발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활고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뉴스를 장식하는 시대다. 엄혹했던 1970년대 가객 김민기는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노래에서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를 반복하며 희망을 갈구했지만, 경제적으로 풍요 속 빈곤이 심화되고 정서적으로 개인주의가 만연한 요즘이 시현이네 가족 같은 ‘아름다운 그이’를 더 많이 그리워하고 필요로하는 시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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