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해 4219.5km 달린 아시아나항공사 한승기 부장
마라톤 풀코스의 100배 거리를 달린 사람이 있다. 4219.5km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9배를 훌쩍 넘는 거리다. 10리가 4킬로이니까 1만리 이상을 달린 것이다. 무엇보다 이 기록이 놀라운 것은 직장을 가진 아마추어 마라토너가 작년 한 해 동안 이룩한 기록이라는 점이다. 이 기록은 365일 평균 11km를 하루도 빠짐없이 달려야 달성하는 기록이다. 그런데 작년 365일 중 실제로 달린 날자는 278일인데, 이 기준으로 치면 하루 평균 15km를 달린 셈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일산서구 주엽동에 사는 한승기(57세)씨다. 한씨는 새벽에 신발끈을 조여매고 주로 인근의 호수공원을 찾았다. 여유가 되면 고양누리길을 달리는 날도 있었다. 어두컴컴한 새벽녘에 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컨디션이 좋으면 퇴근 후 저녁에도 뛰는 날도 있었다. 손목에 찬 러닝시계를 보면서 그날 하루의 기록과 누적 기록을 챙기면서 뛰긴 했지만, 처음부터 4219.5km를 목표로 둔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의 집념과 성실함, 그리고 건강 체질이 뒷받침되었겠지만, 그가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로 항공기가 발이 묶이게 되자 아시아나항공에서 30년째 근무하는 그에게 작년 3월부터 무급휴직일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이 갑작스럽게 생긴 시간을 평소 좋아했던 달리기에 할애했다. 하지만 시간이 생겼다고 마냥 주행거리를 급작스럽게 늘릴 수는 없었다. 부상의 위험 때문이다.
무릎이나 관절 등에 부상이 없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최초 목표한 거리와 속도가 없었기에 마치 제자리에서 뛴다고 생각하고 느린 속도로 주행하면서 강약을 조절하였기에 특별한 부상이나 불편한 곳은 없어요”라고 답했다. 한씨는 이어 “처음에는 10km를 달리다가 무급휴직일이 생긴 이후부터 16km를 안정적으로 달렸어요. 작년 12월 초에 주행거리 4000km를 돌파하자 내가 1만리를 달렸구나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대견하게 여겼죠. 그런데 이왕 달렸으니 마라톤 풀코스 100회 거리인 4219.5km를 달려보자는 새 의욕이 생기는 거예요. 남은 한 달 열심히 달려 결국 목표를 이뤘어요. 1년을 돌이켜보면 느린 거북이 속도로 부상 없이 달린 것이 최대 성과입니다”라고 말했다.
한승기씨는 국내 마라톤동호회 중 가장 큰 ‘일산호수마라톤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20년째 활동하는 그는 이 동호회에서 ‘백호(白虎)’라는 애칭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년 동안 마라톤 풀코스(42.195km)를 42회 완주했고 최고기록은 3시간54분이었다고 한다.
한씨는 1년 동안 달리기를 한 결과 몸무게가 103kg에서 지금은 88kg까지 감량했다고 한다. 183cm의 키에 건장한 체구지만 군살은 없어 보였다. “작년 한 해 먹고 마시는 것을 조절해 체중감량까지 하게 되었어요. 살을 빼려고 밥, 빵, 떡 같은 탄수화물 섭취를 반 이상 줄였어요. 또한 유산소 운동인 달리기를 공복상태에서 약 2시간을 뛰면 운동복이 땀으로 젖게 돼죠. 이것을 일주일에 최소 3회 이상 하면 확실한 효과를 볼 수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한승기씨는 마라톤 대회에서 골인할 때 항공기 날개 모습을 하고 골인한다. 이 모습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한 그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출근하면 공항에 꿈쩍 않고 있는 항공기들을 멍하니 들여다봅니다. 날지 못하는 비행기 대신 내가 대신 난다는 생각으로 달리고 또 달리면서 코로나 상태의 답답함을 풉니다. 달리다 보면 내가 제주도에 가고 홍콩도 가고 싱가폴, 뉴욕, 파리, 런던 등으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자기최면을 걸어요. 제가 좀 덜 달려도 코로나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