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의 시민생태이야기 에코톡]
꽁꽁 언 장항습지… 재두루미 먹이 찾아 떠나
과거 한강 하구는 풍요로운 새들의 먹이터
농지 감소, 농약 사용… 생존여건 점점 나빠져
생태계 보전 참여하면 보상받는 제도 절실
"재두루미를 고양시 시조(市鳥)로!”
[고양신문] 한강이 꽁꽁 얼었다. 서울시 한강은 스케이트장처럼 얼지만 장항습지 앞 한강은 울퉁불퉁 얼음덩이가 솟은 채 언다. 언뜻 빙하가 녹아 떠다니는 북극 같기도 하고 어스름 녁에는 폭격 맞은 도시처럼 을씨년스럽기도 하다. 하구는 강 표면부터 얼다가 염도 높은 밀물이 아래로 파고들어 얼음을 들어 올린다. 그러니 마치 두더지가 땅을 팔 때처럼 얼음표면이 들썩인 것이다. 그러다 썰물 때가 되면 얼음덩이가 하나 둘씩 움직여 작은 빙산이 떠다니는 얼음왕국이 된다.
이맘 때 강이 얼면 제일 낭패를 보는 것은 재두루미다. 장항습지 앞 모래섬이나 갯벌에서 쪽잠도 자고 땅을 파 갯지렁이도 먹으며 겨울을 나야하는데 펄 땅이 얼어붙었으니 말이다. 2010년에 150마리였던 것이 10년 새 50마리 남짓으로 줄더니 새해 들어 지금까지 모두 사라졌다. 일부는 따듯한 남쪽 저수지 쪽으로 갔다거나 일부는 중국 남부 호수로 갔을 거라 한다. 살아 있다면 말이다. 먹을 수 없다면 살만한 곳이 아니니 자리를 뜨는 것이 자연의 생리다. 매일 상당한 먹이를 주고 있는 일본 쪽마저도 벌써 북상하는 얘들이 있다고 하니 ‘먹이부족’은 글로벌한 문제다.
옛 한강하구는 송포나 장월, 대화 등에 넓은 고양평야가, 홍도평이나 후평리 등에 김포평야가 드넓었다. 이곳에 머물던 재두루미들은 남부럽지 않게 풍족했음은 자명하다. 그때 식솔이 2000마리가 넘었었다. 게다가 지금 장항습지 자리엔 물 반 모래 반인 사미섬이 있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땅콩, 시금치, 당근농사에 논농사를 지었고, 수변엔 새섬매자기와 물고기가 넘치는 자연습지도 넉넉했다.
그랬던 먹이터가 이제는 그 반에 반도 남아 있지 않다. 그나마 남아 있는 논은 대부분 비닐하우스와 창고가 들어서고 도로가 나니 사용불가다. 가을이면 볏짚을 말아가니 낙곡도 별로 없다. 제초제와 농약을 쓰니 자연먹이원도 없다. 그나마 장항습지엔 논도 있고 모래섬, 갯벌이 있는데 이마저 얼어붙었으니 어찌 견뎌낼 수 있으랴….
재두루미는 한 번에 많이 먹지 못한다. 몸이 가벼워야 날 수 있으니 자주 먹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새들은 볼 때마다 먹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먹이량이다. 사실 장항습지에는 이들이 먹고 살기에 충분한 10만평의 논이 있고 저 아래 산남습지 구산동에는 30만평의 논이 있다. 문제는 보호지역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논들이 유기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 논은 왕우렁이농법을 쓰기도 했지만 이또한 생태계교란 우려가 있어 논란이다. 대부분은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하고 있으며 하구이지만 염도가 있거나 물골이 막혀 물 부족 현상을 겪기도 한다. 특히 예산부족으로 새 먹이용 볍씨도 전량수매가 안 되니 해마다 수량이 모자란다.
해결책은 당연히 생태계서비스 지불제 계약 전면실시다. 이 제도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생태계서비스를 보전하기 위해 생태계 보전에 참여하면 국가가 민간에게 보상해주는 제도이다. 농민이 볍씨를 새에게 제공하면 정부와 지자체가 농민에게 볍씨 값을 되돌려 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그런데 멸종위기종 큰기러기의 국내 최대 월동지이자 수도권 내 가장 큰 재두루미 월동지인 장항습지 10만평 논조차도 일부 논에만 부분적으로만 지원되고 있다.
또한 재두루미가 이동하기 전인 2월에는 주로 동물성먹이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시기에는 일본에서는 지역어민들에게 정어리를 받아서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장항습지 재두루미들은 오로지 볍씨만 제공받는다. 이런 먹이질 차이를 안다면 어떤 재두루미가 장항습지에 머물고 싶겠는가.
이제는 장항습지의 생태적 특성을 살린 맞춤형 지불제, 말하자면 ‘핀셋지원’이 필요하다. 월동시기에 따른 레시피를 변경하고 공급시간과 장소도 정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나아가 자연먹이원도 검토해야 한다. 당장은 볍씨를 주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야생의 것은 역시 야생의 먹이를 먹어야 한다. 논의 일부를 새가 좋아하는 먹이식물로 바꾸어 재배하고, 논에도 동물먹이자원이 풍부하도록 생물다양성농법을 실시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당국의 관심과 시민들의 참여는 핵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항습지의 깃대종인 재두루미를 우선 시의 상징새로 지정하여야 한다. 재두루미는 영명(White-naped Crane)이나 중국명(白枕鶴(백침학))이 ‘하얀 목덜미 학’이다. 천연기념물이나 멸종위기종이기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한민족의 심연에 자리 잡고 있는 ‘학(鶴)’에 대한 사랑과 존중의 마음으로 충분하리라. 그러니 말로만 평화특별시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평화를 상징하는 재두루미를 시조(市鳥)로 삼고 시민들과 함께 보호활동에 나서보자. 그래서 장항습지 너른 들에서 흥에 겨운 재두루미들과 고양시민들이 한판 대동에 춤을 추는 그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