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고상만 인권운동가
고상만 인권운동가

 

[고양신문] 나는 1990년경 초에 몇 년간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곳에는 갓 태어난 유아부터 미취학 아동 30여 명이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무려 30여 년 전의 기억이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다. 나도 처음이라 그랬지만, 그곳 아이들 역시 처음 본 나를 얼마나 낯설어 했던가. 한 손에는 과자 봉지가 담긴 비닐 봉투를 들고 우물쭈물하며 들어선 그곳에서 마주친 아이들. 고백하자면 보육원 초인종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들어선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옥을 다녀온 후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힘들어 할 때 누군가가 제안한 일이었다. 봉사활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위로를 받는다며 내게도 그런 경험이 어떠냐는 말이었다. 그렇게 해서 들어선 보육원에서 마주친 아이들.

아이들의 반응은 정말 제각각이었다. 기억하기에 30여 명의 아이들이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어떤 남자 아이는 하루 종일 눈물 콧물을 빼며 울고 있었고 또 어떤 아이는 아주 개구진 행동으로 보육교사와 주변 아이들의 미움을 사곤 했다. 첫날 방문한 나를 보며 일부는 경계의 눈빛으로, 또 누구는 아주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다가와 요모조모 살펴보기도 했다. 그렇게 첫인사를 나눴고 나는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서너 명이 근무하고 있던 보육교사는 처음 방문한 나를 상대로 간단한 인터뷰를 한 후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전달했다. 그중에 기억나는 말은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정을 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말이 의외였다. 답은 간단했다. 나처럼 호기심으로, 또는 선한 마음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만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처음엔 경계하지만 이내 정이 들어 마음을 열게 되면 내내 그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너무 잘해 주지도 말고 한 아이만 예뻐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계속 찾아올 것이라는 다짐도 결국 여러 사정과 핑계로 지킬 수 없었고 특히 유난히 내 눈에 들어온 그 아이 역시 맘속에서 내치지 못했다. 그 돌배기 여자 아이는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아장 걸음을 시작해야 할 돌배기 아이인데도 걷는 것은 고사하고 자기 스스로 앉지도 못했다. 앉혀놓아도 옆으로 기우뚱 넘어가곤 했다. 힘이 없어서 그런 듯 싶었다. 그러니 늘 내 무릎에 앉혀놓고 밥이나 과자를 먹여주게 되었다. 그러다 정이 들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처음엔 경계하던 아이들이 점점 얼굴이 익자 너나 할 것 없이 나에게 매달리고 여기저기서 서로 손을 흔들었다. 하루 종일 울던 아이의 콧물을 닦아주고 말을 걸어주니 그 아이도 나만 가면 휴지를 들고 와 닦아달라고 했고 이내 미소를 보여줬다. 그러니 나도 그곳을 방문하는 횟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그곳을 가는 일요일만 기다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이제는 몇 봉지가 아니라 박스로 과자를 사들고 가던 날이었다. 보육교사로부터 듣게 된 뜻밖의 소식. 심장병을 앓고 있던 그 아이가 입양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아니라 해외라는 것. 아마도 내 표정이 보육교사에게 그렇게 보였나보다. 너무나 슬프고 또 안타까웠다. 그때 보육교사가 농담처럼 던지며 내가 듣게 된 말. “그럼 선생님이 입양 하실래요?”

요 근래 한 입양 아동의 참담한 소식이 세간에 큰 이슈가 되고 있다. 그 어처구니없는 죽음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크다. 나 역시 너무 끔찍하여 차마 그 기사를 자세히 읽기 힘들었다. 정말 믿기 힘든, 아니 믿고 싶지 않은 잔혹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뜻밖의 고통이 있다. 다른 입양 가정의 부모들이 느끼는 심적 고통이다. 절대다수의 선량한 입양 가정 역시 색안경 낀 눈으로 매도당하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아동을 학대하는 절대다수는 조사결과, 친부모에 의한 범죄가 압도적이다. 아동학대는 입양 아동이냐 친자냐가 기준이 아니라 ‘학대를 학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가 문제이다. 극히 예외적인 사례로 오해받는 입양 가정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 사건으로 우리나라의 빈약한 입양 문화가 혹여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그간 우리는 뭘 했는데? 따라서 입양 아동을 사랑으로 헌신하는 모든 분들에게 나는 깊은 존경을 표한다. 또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그 아이에게 어른의 일원으로서 미안하고 명복을 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새롭게 노력하고 싶다. 함께 하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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