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고양신문] 근대정신의 핵심은 개인주의다. 개인주의의 핵심은 자유다. 자유의 핵심은 이성적 능력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성적 능력을 발휘할 때 우리는 진보하는 세상에 살 수 있다. 이렇게 믿고 살았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코로나 사태는 우리의 믿음을 뒤흔들고 있다.
따져보면 개인주의는 이기주의로 축소되었고, 자유정신은 삶의 공동체를 축소시켰다. 근대이성은 도구적 이성이었다. 도구적 이성은 합리성이라는 명목 하에 모든 것을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자연은 생명의 근원이라는 자리를 빼앗기고 약탈과 자원의 재료로 축소되었다. 가난과 불평등은 능력 없는 개인이 마땅히 치러야할 대가처럼 여겨졌다. 성장과 부의 축적이 지상의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왜곡되고 축소된 형태로 발전한 것이 신자유주의 경제다. 기업의 이윤이 최고의 가치가 되면서 이윤형성에 방해되는 것이라면 집단해고와 고용축소는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땅위에 목재가 고갈되면 땅을 파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퍼올렸다. 그로 인해 지구온난화가 가속되었고, 생태계는 파괴되었으며, 멸종하는 생명체가 늘어도 무관심했다.
원소가 결합하면 생명이고, 원소가 분열하면 죽음이다.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의 원리가 바로 폭발적 핵분열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에게 생존은 지상의 과제가 되었다. 생존은 결코 나홀로 되지 않는다. 모든 생명은 이어져 있다. 하나의 생명이 파괴되면 연쇄적으로 다른 생명의 파괴로 이어진다. 나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우주가 탄생하고, 별이 탄생하고, 태양계가 탄생하고, 지구가 탄생하고, 생명체가 탄생한 것은 모두 원소의 탄생과 결합에 의한 것이다. 세포의 탄생과 생명의 탄생, 그리고 인간의 탄생은 모두 결합의 산물이다. 생명체의 유지는 장구한 세월 동안 자연선택의 결과였다. 다른 생명체와 공생이 가능한 생명체는 보존되었고, 독식하려는 생명체는 결국 멸종하였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자연선택을 뛰어넘어 인위선택이 가능한 종이었다. 인간에게 필요한 식물을 육종하고, 동물종을 변형시켜 인류의 삶을 도모했다. 밀, 쌀, 옥수수, 감자, 개, 돼지, 소, 닭들이 그렇게 인간 생존의 도구가 되었다. 사피엔스의 생존을 위해 멸종된 생물종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른 물질과 생명체를 약탈적으로 파괴함으로 생존방식을 이어온 것이 바로 인류이다. 인간이 선택한 인위는 과연 정당한가?
코로나가 인간이 자연을 약탈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되었다. 자본주의의 세계적인 확산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인 확산의 길을 열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고, 인간에게 닥칠 재앙은 이제 불가피한 것이 되고 말았다. 인류는 코로나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백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백신개발은 이번 사태를 잠재울 수 있는 일시적 해결책에 불과하다.
방역(防疫)과 위생(衛生)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내 몸 바깥의 것을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영역을 성으로 쌓아두고, 인간만이 잘 살 수 있는 길은 없다. 결국 인간은 다른 생명과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타자를 약탈하고, 멸망시키면서 유지되는 생명은 없다. 타자를 철저히 막는 위생(衛生)만으로는 삶이 불가능하다. 타자와 함께 공생할 수 있는 양생(養生)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양생(養生)은 같이 사는 양생(兩生)이자 함께 사는 공생(共生)이다. 백신의 개발만큼이나 필요한 것이 양생술의 계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