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마음이야기-

양성희 심리치유센터 대표
양성희 심리치유센터 대표

 

[고양신문] 나는 모른다. 그러나 몸은 안다. 나는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일지라도 몸은 기억하고 있다. 수술을 받은 사람은 이유 없이 울게 된다고 했다. 전신마취 상태인 경우라도 다 느낀다는 것이다. 트라우마 연구에 인생을 바친 선한 의사 콜크 박사의 책을 보면 몸에 남아 있는 트라우마의 흔적들에 대한 내용이 있다. 책 제목도 ‘The Body Keeps the Score’ 우리나라에서는 『몸은 기억한다』로 출판됐다. 정신을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교과서 같은 책으로 자리매김했다.
 
일전에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들 모임을 했었다. 한 분이 자기 아이를 놀이치료한 것을 들려주었는데 지능이 낮고 말을 못하는 아이여도 그 속에는 스트레스와 아픔이 클 거라는 의사의 조언을 듣고 놀이치료를 시작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치료사가 특수유리로 치료실 내부를 한번 보라는 요구를 했단다. 이유인즉슨 아이가 치료실에 오면 40분 내내 똑같은 행동을 하고 나가기 때문이랬다. 아이는 들어가자마자 피규어 진열장에서 아기인형을 꺼내고 침대와 이불(작은 천)을 꺼내더니 익숙하게 아기 옷을 다 벗기고 기저귀를 채운 다음 침대에 눕혀 이불을 덮어주고 토닥토닥 하더란다. 엄마는 아이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모두 알고 있었다. 선천성 희귀병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있었는데 기저귀만 차고 그 안에서 지내던 자신을 기억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날의 소름 돋는 체험담을 듣고 나서 엄마들은 그날로 아이들을 놀이치료실에 데려갔다.
 
나 역시 찾아오는 분들에게 자신의 신체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이끈다. 콜크 박사의 연구대로 우리의 감정이 몸의 이곳저곳에 두루 작용을 한다는 것은 나의 임상에서도 드러난다. 그럴 때 ‘내 몸은 내 편이다’를 인지시켜 주며 자신이 그 마음에 들어가도록 한다.
 
대부분은 심장에 대한 기억을 쉽게 떠올린다. 엄마아빠가 싸울 때 심장이 방망이질을 했었던 일, 아빠가 화를 잘 내서 아빠만 보면 두근두근했다고 한다. 한참 과거의 일이지만 지금도 생각만으로 심장이 뛰고 있다. 이때 자신의 심장에 손을 얹고 말을 걸어보라고 한다.
 
“너 그때 많이 놀랐었지? 괜찮아. 내가 지켜줄게.” 자신의 장기에게 자기가 말을 거는 어색한 경험인데 막상 하고 나면 그렇게 큰 위로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유념해서 보는 50대 중년은 몸의 아픔이 많다. 너무 오래된 슬픔이 화학반응을 일으킨 것이라 본다. 다발성 경화증이나 신경증 증세들도 많은데, 어깨가 아프고 다리가 저리고 어지러운데 첨단 기기로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어떤 인생을 살아왔나.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교사에게 수없이 매질을 당하면서도 반드시 개근해야 했고, 안 되면 되게 하라, 잘 살아보세,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 인생을 살아야 했던 세대이다. 새마을운동으로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개인 따위는 나라 앞에서 사라져야 했던 시대를 살았다. 위생도 모르던 시대의 사람인지라 세균에 벌벌 떠는 젊은 세대와 괴리가 있다. 고작 꼰대 소리밖에 못 듣고 매년 자신의 가치관을 셋업하느라 정신없는 인생이다. 참고 살아야 하는 줄 알아서 참고 살았는데 보상은 없다. 여전히 일해야 하고 여전히 돈 벌어야 하고 그마저도 못하고 있는 자신은 열등 존재다. 자식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외로운 중년 남성에게 안식을 주는 것은 반려견 정도다.

이는 살면서 나에게 관심을 갖고 물어봐 준 사람이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만약에 담임선생님이 무서워서 학교 가기 싫어 꾸물거린 아침에 엄마가 ‘빨리 안 일어날래’ 호통치는 대신 ‘너 혹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엄마한테 말해봐, 하루 학교 안 가면 어때, 괜찮다’ 했더라면 어땠을까. 늘상 화를 내는 분노조절장애 아빠지만 기분 좋을 때 자식에게 ‘아빠가 화를 잘 내서 무섭진 않냐’고 내게 물어봤다면, 혹 미안하다는 사과라도 한번 들었다면 나의 트라우마가 지금껏 나를 붙들고 늘어지진 않을 것이다. 그렇잖아도 방광이 약한 아이였는데 오금이 저리도록 공포에 떨게 한 부모가 그때 일에 대해 말을 걸어주며 사과를 한다면 나이 들어서까지 방광염에 시달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병원의 의사 말고 내 안의 내 주치의에게 처방을 부탁해보라.
 
“(자신의 이름)~야 힘들었지. 고생했다. 난 네가 좋아.”
 
아픈 그 부위에 따뜻한 손을 얹고 지금 해보라. 횡경막이 느슨해져서 깊은 숨이 나온다면,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면 치료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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