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고양신문] 봄기운이 완연하다.
혹독했던 겨울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한데 텃밭에는 온갖 생명들이 꿈틀거린다. 그래도 아직은 겨울의 흔적이 남아서 서산에 뉘엿뉘엿 해가 걸리면 제법 오싹하니 한기가 느껴진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붉게 번지는 노을을 바라보던 나는 장작을 얼기설기 쌓고 모닥불을 지핀다. 열쌔게 불티를 날려가며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황홀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불길이 잦아들어 새로 장작을 던져 넣으면 타닥타닥 불꽃이 튀고, 앞산에는 둥실 달이 솟는다.
나는 모닥불 속에서 잘 익은 군고구마를 꺼내놓고 사발에 막걸리를 채운다. 한 잔 두 잔 막걸리를 비우면 불길이 서서히 잦아들고, 나는 너무 굵지 않아서 도끼질을 하지 않은 통나무를 다시 불속에 던져 넣는다.
그때였다, 막 불길이 옮겨 붙은 통나무 안에서 무수히 많은 개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통나무 안에 개미집이 있었던 모양이다. 불길을 피해 여기저기 숭숭 뚫린 구멍 밖으로 우르르 뛰쳐나온 개미들은 우왕좌왕 갈팡질팡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놀란 나는 부리나케 장갑을 끼고 아직도 개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통나무를 모닥불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런데 무슨 까닭에선지 개미들은 벌건 불길에 휩싸여 연기를 내뿜는 통나무 주변을 어지러이 오가며 방황을 하더니 다시 통나무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애써 빠져나온 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가기도 했다.
그때 문득 젊었을 때 읽었던 러시아의 소설가 솔제니친의 ‘모닥불과 개미’라는 시가 바로 엊그제 읽었던 듯 생생하게 떠올랐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속에 썩은 통나무 한 개비를 집어넣었다. 그러나 미처 그 통나무 속에 개미집이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통나무가 우지직 타오르자 별안간 개미들이 떼를 지어 쏟아져 나오며 안간힘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놈들은 통나무 뒤로 달리더니 넘실거리는 불길에 휩싸여 경련을 일으키며 타죽어 갔다.
나는 황급히 그 통나무를 모닥불 밖으로 내던졌다. 다행히 많은 개미들이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어떤 놈은 모래 위로 달리기도 하고, 어떤 놈은 솔가지 위로 기어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다. 개미들은 좀처럼 불길을 피해 달아나려 하지 않는다. 가까스로 엄청난 공포에서 벗어난 개미들은 방향을 바꾸더니 다시 그 통나무 둘레를 맴돌기 시작했다. 그 어떤 힘이 그놈들을 내버린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한 것일까.
많은 개미들이 활활 타오르는 통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는 통나무를 붙잡고 버둥거리면서 그대로 거기서 죽어가는 것이었다.
‘모닥불과 개미’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시의 내용이 고도로 계산된 은유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시 속의 내용처럼 불붙은 통나무 주변에는 개미들의 사체가 널렸고, 나는 수돗가에서 물을 받아와 통나무 위로 들이부었다. 허연 김이 피워 오르면서 불길은 이내 잦아들었지만 개미들은 끊임없이 통나무 위로 기어올랐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자니 아, 삶은 저토록 거룩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오랫동안 통나무 앞을 떠나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