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고양신문]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선언’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 함성이 울려 퍼진 지 102년째를 맞았다. 한숨이 터지고 가슴이 답답하다. 우리는 진정으로 독립했는가, 제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당당하게 나아가는가? 2차대전 전범국 일본은 패전 이후 경제 대국으로 일어나 떵떵거리건만 정작 피해자인 우리는 강토가 찢기고 동족끼리 살육 전쟁까지 겪었다. 3년 전 판문점에서, 평양과 백두산에서 남북 정상이 잇따라 만나 악수하고 포옹하는 모습에서 이젠 평화를 굳게 이룰 수 있겠다고 희망을 품었다. 실현하지 못하는 희망은 실망으로 바뀌기 쉽다.
일본은 수시로 역사를 부정하는 망언을 토해낸다. 한국이 일본 식민지배를 받았기에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거니, 따라서 한국인은 일본에게 감사해야한다거니 따위로 기고만장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위 학자 교수라는 자들이 맞장구 치고 어떤 무리는 서울 복판에서 일장기까지 펄럭이며 일본 지지 집회까지 여는 지경이다.
우리 겨레가 일본 지배 아래 겪은 고통과 치욕은 필설로 다하기 어렵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강제 연행은 인간의 존엄을 짓밟고 여성 인권을 모독한 반 인류 범죄다. 피해자인 고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에 용기를 내어 일어나 범죄 실상을 고발한 이후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피해 증언이 잇따랐다.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이 빗발치고 여론이 들끓자 일본 정부도 마지못해 태도를 바꾸기도 했다.
1993년 8월 당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담화를 통해 “일본군 위안소 설치와 관리, 위안부 이송에 구(舊) 일본군이 직, 간접으로 관여했다”고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올린다”고 밝혔다. 고노 장관의 약속은 이랬다. – “우리는 이와 같은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역사의 교훈으로서 직시하고자 한다. 우리는 역사 연구, 역사 교육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오래도록 기억에 담으며 같은 잘못을 결코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한 번 밝힌다.”
고노 담화 2년 뒤 1995년 8월 15일엔 당시 자민-사회 연립내각의 사회당 출신 무라야마 총리가 이른바 종전 50주년을 맞아 거듭 고개를 숙였다. -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 전해야 한다…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여러분께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드렸다… 역사의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이후 30년 가까이 흘렀다.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마음을 갖고 정식으로 사죄하지 않았다. 아시아여성기금이란 민간 재단을 내세워 피해자들을 금전적으로 돕는 선에서 무마하려 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한일 정부간에 서둘러 ‘위안부 문제 종결 합의’를 발표해 피해자들의 분노만 샀을 뿐이다. 침략과 가해의 역사는 교과서에서도 지워가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 램지어의 위안부 역사 왜곡 논문이 국제적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끈 달린 돈’이라는 일본말이 있다. 일본이 주는 돈을 챙기고 그 조종을 받아 혀 놀리는 학자 교수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일본을 지배하는 보수 우파 세력은 이런 식으로 제3자를 내세워 방어하는 수법에 익숙하고 치밀하다. 자신들 주장에 도움 될 자료를 최대한 끌어 모아 논리를 세우고 친한파, 지한파라고 내세우며 접근해온다.
일본 극우의 가면을 벗기고 본질을 간파해야 한다. 정부와 연구자뿐 아니라 시민들도 일본을 더 많이 알고 한일관계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우리를 둘러싼 정세가 19세기 말 미-중-러-일에 둘러싸인 때와 다르지 않다. 겨레가 뭉쳐야 지혜가 나오고 힘이 생긴다. 미국 일본 눈치 살피며 우물쭈물 하지 말고, 당장 남북 사이 반목 대립의 장막을 걷어내기 위해 정부와 각 당은 함께 나서라. 일찍이 1970~80년대 일본에서 박정희 전두환 독재를 고발하고 재일동포 권익과 통일운동을 한 고 정경모 선생이 갈파했다. “한반도 우리나라 통일이 성취되지 않는 한 아시아 근대사는 미완성의 1장에 머문다.”-『일본의 본질을 묻는다』 창작과 비평사, 1988
내년엔 판문점에서 남과 북이 함께 3.1절 기념식을 열고 대한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쳐보자. 어떤가, 정치인들,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