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기자의 공감공간] 백석동 동네서점 ‘지하비밀도서관’
행복한 책방지기가 꾸리는 문화 아지트
책 리뷰 올리며 전국의 독자들과 소통
[고양신문] 인터넷 서점은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책을 찬찬히 둘러보고, 꼼꼼하게 읽어 볼 수 있는 즐거움은 아날로그 서점을 따라올 수 없다. 동네 서점들이 점점 사라지는 상황에서 도서관 이름을 가진 동네 책방이 생겼다. 올해 초 백석성당 건너편에 문을 연 ‘지하비밀도서관(대표 김인영)’이다. 이름에서 은밀한 공간을 연상시키는 이곳 1층에는 커피 전문점이 있고, 지하 계단을 내려가면 서점이 나온다.
“지하, 생명·희망 잉태하는 공간”
서점은 30여 평 정도의 공간에 1300여 권 정도의 서적을 갖췄다. 중앙 진열대에는 판매용 신간 300여 권을 비치했고, 벽면의 서가에는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구비했다. 다양한 목록의 책들을 세워놓고 눕혀 놓고 겹쳐 놓아 답답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독서모임을 진행할 수 있는 회의실은 안쪽에 있다. 그 옆에는 아이들과 아이를 동반한 부모들만 들어갈 수 있는 ‘앨리스의 동굴’이 있다. 낮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다락방도 두 개 있다. 천장을 아늑하게 꾸민 독립된 공간은 혼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 좋다.
백석동 주민인 김인영 대표는 신혼 기간 말고는 일산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한다.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일찍부터 책방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이 꿈이었다.
“몇 년 전 ‘전쟁의 폐허 속에서 시리아의 청년들이 지하에 도서관을 만들었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는데 감동적이었어요.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이라는 책에 그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죠. 저는 남편과 반지하에서 신혼생활을 했는데요. 당시 저희 집은 사람들이 모이는 아지트였죠. 저에게 지하는 엄마의 자궁처럼 생명을 잉태하고 미래를 꿈꾸는 희망의 공간이었어요. 그래서 서점 이름을 그렇게 지었지요.”
따뜻한 안목으로 고른 ‘추천도서’
김 대표는 서점 오픈 1년 전부터 SNS에 ‘지하비밀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책 리뷰를 올리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친구가 됐고, 서점을 차린 후 신기한 일들이 일어났다. 부산, 진주, 마산에서 그의 글을 보고 책을 주문하고, 해남에서 직접 이곳을 찾아오기도 했다. 그가 추천하는 책은 모두 읽겠다며 책 추천을 요청하고 주문을 하기도 한다.
책으로 맺어진 작가들과의 인연은 현실로 이어졌다.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의 이은주 작가도 책 리뷰를 통해 친구가 됐고, 1월에 이곳에서 저자 사인회를 했다.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쓴 김완,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의 박산호, 『그림책의 책』의 제님 등 여러 작가들도 서점을 다녀갔다.
“저는 늘 단순한 책방 이상의 문화살롱을 꿈꿨는데, 그것이 실현됐기 때문에 책방지기로서 하루하루가 만족스럽고 행복해요”라고 김 대표는 말한다. 신간 목록은 자신이 읽고 고른 책들로 갖췄다. 그에게 책방을 꿈꾸게 해준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영국의 심리학 박사 소방관이 쓴 『소방관의 선택』, 지하세계를 탐험하는 『언더그라운드』 등 현실과 사회 참여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여러 권 눈에 띈다. 아동용과 청소년용도 책도 있다.
낡은 트렁크 속에 담겨있는 『창작과비평』 전집도 반갑다. 김 대표의 남편 권동희씨가 학창시절 글을 기고해서 사은품으로 받은 책이라고 한다. 남편은 노동자 편에 서서 판례 1호를 남긴 것으로 유명한 노무사다. 삼성 백혈병 산재, 압구정동 경비원 분신 사건, 아산병원 간호사 ‘태움’ 자살 사건 등 모두 그가 승소시킨 사건이다. 최근 포스코 노동자의 직업성 암 산재처리도 담당했다.
정성 담은 식사, 직접 그린 가방
김 대표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공부해 한때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강사로 활동했다. 전통미술과 문화에도 관심이 많아 민화와 서예를 배웠다. 책방 간판 글씨를 직접 썼고, 민화를 그려 넣은 캔버스 가방과 노트 등을 제작해 판매도 한다. 음료는 친정엄마가 직접 달여 만든 식혜와 생강차, 수정과 등이 있고, 파스타와 샐러드 같은 식사류를 유기농 재료로 직접 만든다.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책에서 사람들이 위로와 희망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김 대표는, 앞으로 낭독회와 북 클럽 등 여러 가지 행사를 계획 중이다. 어른과 아이 누구나 동네 골목길에서 우연히 들를 수 있는 책방에서 다음번엔 또 어떤 책을 만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주소 : 고양시 일산동구 강송로87번길 54-19(지하1층)
문 여는 시간 : 월~토, 오후 1시~9시
문의 : 010-6353-55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