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이권우 도서평론가
이권우 도서평론가

[고양신문] 가까스로 올라탔다, 버스에. 한숨을 돌리고 앉을 자리를 찾는데, 어라 일반버스와 달랐다. 버스가 그게 그거지, 어찌 다를 수 있을까 싶겠지만, 앉을 자리는 적고, 중간에 넓은 공간이 있는 버스는 아직 드물다. 자리에 앉으면서 아, 전기 버스구나, 하고 탄성을 질렀다. 고양시에서 전기버스를 타기는 처음이었다. 연전에 김포에 강의 나가면서는 타본 적은 있었다. 부러웠다. 김포도 하는데 고양시는 왜 못할까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고양시에서도 전기 버스를 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오랫동안 내연기관 자동차가 환경위기를 불러오고 자원고갈의 원인이라 하며 전기차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이 세를 얻었다. 하지만 세상의 반응은 기대에 못 미쳤다. 오히려 유럽에서 생산한 디젤자동차가 한국자동차 시장을 장악하면서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현상마저 벌어졌다. 솔직히 모욕감을 느꼈다. 유럽이나 미국의 환경기준에 못 미치는 디젤자동차를 싼값에 우리 시장에서 팔아치우는 인상을 지을 수 없었다. 나중에 보니, 배출가스 배기량과 연비를 속여 팔았다고 한다. 애초 클린 디젤이라는 말부터가 틀려먹었더랬다. 외제에 연비 좋다고 너도나도 유럽 디젤차를 산 국내 소비자만 바보가 되고 말았다.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면서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다른 무엇보다 전기차는 오염물질과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목받아 왔다. 장점은 또 있다. 현대자동차의 코나 가솔린 모델과 전기모델의 연비를 비교해보았더니, 전기차의 연비가 대략 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히 자동차 운행을 줄이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지구환경에 더 큰 도움이 될 터다. 하지만, 이동의 편이성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자동차를 포기하라고 할 수는 없다. 덜 타고, 타더라도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그것이 어렵다면 전기자동차를 이용하자는 게 더 설득력 높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전기차 도입을 서두르지 않았다. 자동차 관련업계의 저항도 있었을 테지만, 우리가 맞이한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무디고, 오로지 성장논리에 갇혀 앞날을 내다보지 못한 탓인 듯싶었다. 답답했다. 갈 길은 먼데, 첫걸음을 아직 떼지 못한 상황이지 않은가. 분위기를 일거에 바꾸어 버린 것은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였다.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거대자동차 회사도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가치지향적인 운동가보다 모험적인 경영인인가, 하는 깊은 회의감에 빠지기도 했다.
 

▲ 고양시 마을버스 노선에 운행 중인 전기버스.
▲ 고양시 마을버스 노선에 운행 중인 전기버스.


전기 버스가 널리 퍼진다고 해서 기후위기를 막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시민의 의식변화에 일조한다. 전기버스를 필두로 해 전기자동차가 늘어나면 충전소 문제가 해결될 터다. 아직도 충전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지라 얼마나 불편해 하는지 모른다. 그 다음에는 당연히 전기생산 방식을 바꾸자는 의견이 강하게 나올 것이다. 화석연료나 핵발전을 이용한 전기생산에서 태양광, 풍력, 조력 같은 대체 에너지원으로 바꿔 나가면, 그만큼 위기를 해결할 희망이 보일 터다.
 
흔히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예산과 권한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 하지만 기존 정책에 균열을 낼 수는 있다. 중앙정부와 국회에 기후위기대응책을 마련하라 촉구할 수 있다. 전기버스를 더 늘리고, 전기차를 사면 보조금을 주고, 태양광설치 비용을 지원해 시민의 동참을 촉진할 수 있다. 이미 이런 정책을 과감히 펼치는 국내외 자치단체는 수두룩하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불러오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 마리 제비가 날아오면 뒤이어 제비무리가 날아오게 마련이다. 전기 버스는 고양시가 기후위기에 대응해 시민사회에 날려보낸 한 마리 제비다. 이제 더 과감히 탄소배출 제로를 향한 걸음을 내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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