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혜의 발랑까진]

[고양신문] 유명 배구 선수의 학교폭력이 폭로된 지도 두 달이 되어간다. 지난 몇 달간, 우리는 연예인, 운동선수 등 유명인의 학교폭력에 대한 무수한 고발을 마주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학교를 벗어난 뒤에야 비로소 말해질 수 있었던 피해 경험이었다. 연일 터진 학교폭력 고발은 가해자로 지목된 유명인이 실검에 오르내리고, 몇십만 뷰의 조회수를 기록할 만큼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다. 대부분의 여론은 고발 내용의 진위여부를 다퉜고, 가해자를 사회적으로 매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군가는 가해자의 추락이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학교폭력을 예방할 거라고 말했다.

일부 학생만 솎아내면, 학교는 안전하고 평화로워질까? 학교폭력 논란 이후 솎아졌던 것은 폭력과 차별이 아니라, 자유와 다양성이었다. 학교의 폭력적인 구조를 외면한 채, 학생의 행위를 통제하고 검열하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작금의 논쟁에서도 유명인이 학교 재학 당시에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는 것이 학교폭력의 증거인 마냥 이야기됐다. 여성 유명인의 경우, ‘남학생과 어울려 다니는 걸 보니 그럴 만했다’ 등 성적 경험에 대한 낙인이 덧씌워졌다.

그러나 정말 학교폭력의 가해자는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비행아 뿐일까? 특목고등학교 등 성적이 좋은 학생이 대다수인 학교에서도 학교폭력은 발생하고, 소위 ‘모범생’의 학교폭력은 ‘혈기 왕성한 남자애들의 문제’ 등으로 축소되어 왔다.

나는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모범생 등 순종적인 학생상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로 귀결되는 것이 우려스럽다. 학교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은 학생의 자유와 인권,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 폭력과 통제로써 학생을 대해온 학교 문화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구조 속에서 학생들만 ‘비폭력’적이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학교폭력에 반대한다는 것은 학교에서 논쟁과 갈등 자체를 없애버리자는 제안이 아니다. 오히려 논쟁과 갈등을 적극적으로 다루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간 학교폭력의 대책은 “폭력은 나쁜 것이고, 위험한 일이 생기면 어른에게 알려야 한다”는 말에 머물렀다. 정작 무엇이 폭력인지, 그 폭력이 왜 일어났는지, 폭력 이후 학교 공동체는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았다. 이러한 학교폭력 예방책은 학생 스스로가 문제를 마주하고 학교 변화를 도모해나갈 기회를 빼앗는다.

학교폭력의 피해자들이 아주 뒤늦게야 피해 사실을 고발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폭력성을 상기할 수밖에 없는 건, 학생 시절의 경험이 아주 무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 스스로가 힘을 쓸 수 없는 공간일 때, 당사자들은 폭력으로부터 무력해진다. 사회는 학생들에게 ‘방관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지만, 학생들은 방관하지 않고 말했을 때 변화를 경험할 거라는 신뢰가 없다. 온라인 공방전을 통해 이루어지는 학교폭력 고발은 그 자체로 학교의 무능과 신뢰의 파괴를 보여준다.

나는 학교폭력에서 지워진 학교에 대해 폭로하고 싶다. 학교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보장되는 다양한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공간이다. 최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진행한 복장 규제 설문조사에 따르면, 목선이 드러나서 야하다는 이유로 포니테일을 금지하거나, 숏컷을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하는 학교들이 존재한다. 이렇듯 비합리적인 이유로 권리를 통제하는 것이 일상화된 학교에서는 폭력이 가시화되기 어려워지고, 작은 것들에서도 특권과 위계가 형성된다. 더욱이 교사 등 어른의 인정을 받지 못한 학생은 더 많은 폭력에 노출되고, 학교에서의 존재를 위협받는다.

지난해, 군대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한 이후, 병사들의 탈영과 자살이 감소했다고 한다. 휴대전화를 통한 외부 소통이 가능해지면, 군대 내 가혹행위 등의 폭력도 완화될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구성원의 권리를 보장하는 과정이 공동체 내 폭력을 예방하는 가장 직접적인 대책임을 보여준다.

학교폭력은 학생 간에만 발생하는 특수한 사건이 아니다. 학교에는 이미 많은 차별과 불평등, 그로 인한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교사가 학생을 일상적으로 통제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도, 학생이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지 못한 채 입시에 동참할 것을 강요받는 구조도, 차이를 차별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사회적 불평등도 폭력이다. 학교에서 폭력을 경험하는 요인이 되었던 가난, 장애, 외모 등은 학교 바깥에서도 차별과 멸시의 원인이 된다. 학교폭력을 ‘요즘 아이들의 문제’로 바라보고, 학교를 ‘사회와 격리된 공간’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폭력과 차별의 사회를 겪고 있는 우리 모두가 학교폭력에 있어 결백하지 않다. 조감도의 시선으로, 다른 이의 문제인 것처럼 내려다보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과거와 지금의 일상에 대해 치열하게 성찰해야 한다. 학생들을 통제하고 어른들의 말을 잘 듣도록 할 게 아니라, 학교에서 문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역량과 민주적인 구조를 형성할 때이다. 수많은 이들의 용기를 딛고 시작된 학교폭력 고발이 자극적인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데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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