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독일생활 마치고 돌아온 정범구 전 주독 대사

가난한 유학생이 대사되어 ‘금의환향’
슈타인마이어 독일대통령과 각별한 우정
북한 대사와 함께 했던 감격적인 순간

대한민국의 격상된 국력, 해외에서 실감
독일 언론환경과 민주시민교육 인상적
“12월이면 다시 고양시민 됩니다”

“고양시민 정범구, 잠시 독일로 출장 다녀오겠습니다.”
3년 전 주 독일 대한민국 대사로 임명돼 독일로 떠나기 전에 고양신문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인사를 남겼던 정범구 전 주독대사를 다시 만났다. 창밖으로 청계천 풍광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서울 종로구의 사무실에서 기자를 반갑게 맞아준 정 전 대사의 책상 위에는 ‘청년재단 이사장’이라는 생소한 명패가 놓여 있었다.

정범구 전 대사가 주독대사로 임명된 게 2018년 1월, 지난해 연말에 임기를 마쳤으니 만 3년을 채우고 돌아온 셈이다. 임기 동안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외교적 감각으로 독일 정계와 폭넓게 교유하며 인상적인 자취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자신이 재임했던 3년을 “파란만장하게 바빴던 시절”이라고 회고하며 남북의 해빙무드와 냉각, 코로나 팬데믹 등 초유의 역사적 사건들을 유럽의 심장인 베를린에서 겪어낸 이야기들을 특유의 유쾌한 화법으로 들려줬다.   

정 전 대사는 “독일에서 돌아온 후 잠시 화성 딸네 집에서 지내고 있다”면서 “12월에 다시 고양시민이 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떠나기 전에 그랬듯이 고양의 여러 이웃들과 소소한 모임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재미있게 지내고 싶다. 풍동 숲속마을로 돌아갈 날이 기다려진다”고 덧붙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사진출처=정범구 페이스북]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사진출처=정범구 페이스북]

▮대사로 부임하던 때의 이야기부터 해보자. 청년시절 유학을 했던 독일을 주독대사 신분으로 다시 찾았는데.

개인적으로 감회가 남달랐다. 가난하고 불안정한 유학생 신분으로 80년대를 독일에서 꼬박 보내고 1990년에 공부를 마치고 귀국했는데, 30여 년 만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리로 다시 찾았으니 말하자면 금의환향한 기분이었다.

나뿐 아니라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위상도 완전히 달라졌다. 90년대에 우리나라의 GDP는 독일의 3분의 1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70% 수준까지 올라갔다. 특히 디지털 등 특정 산업분야에서는 유럽보다 오히려 앞선 지점도 많았다.

다만, 우리의 국력과 경제적 위상에 비해 정치·외교적 위상은 상대적으로 덜 평가받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같은 동아시아의 중국과 일본이 워낙 큰 나라라서 상대적으로 한국의 존재감이 부각되기 힘든 면도 있었다. 독일 대사를 하면서 그 차이를 줄여보고자 노력했다.

▮해외 공관 대사 중 주독 대사는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중요한 자리인데.

독일은 EU의 심장 같은 곳이다. 27개 나라가 소속된 EU에서 독일은 인구의 18%. GDP의 22%를 차지하는 최대 주주다. 우리나라와 독일의 교역량은 연간 300억 유로 수준인데, 이는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 3개국을 더한 것과 같은 규모다.

교민들도 4만5000여 명으로 유럽에서 가장 많다. 60~70년대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건너온 이들이 독일 교민사회 1세대이고, 이들이 뿌리를 내려 2세, 3세들이 교민사회의 주축을 형성하고 있다. 유학생 규모는 4전제 대학 기준 8000여 명이나 되고, 상사 직원이나 자영업자들의 노동 이민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슈타인마이어 독일 연방 대통령과 함께. [사진출처=정범구 페이스북]
슈타인마이어 독일 연방 대통령과 함께. [사진출처=정범구 페이스북]

▮주독 대사 재임 기간 동안 독일 정계와 돈독한 인맥을 쌓았다고 알려졌다.

내가 23번째 주독 한국대사였는데, 독일 말 잘 통하고 독일문화를 잘 아니 모두 상당히 호감을 보였다. 아무래도 젊은 시절 독일에서 10년 넘게 생활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박사 학위 공부를 할 때 독일 사민당의 장학금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현 독일 대통령인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도 같은 장학금을 받았고, 국회의원 중에서도 같은 장학재단 출신들이 많았다. 그러한 인연을 네트워킹에 적극 활용했다.

사실 한 나라의 대사라고 해도 총리, 대통령, 의장을 다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재임기간 동안 이들을 다 만나보았고, 특히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는 각별한 인연을 맺으며 친밀하게 지냈다.

▮남다른 인맥을 외교적으로 활용한 사례를 들려달라.

떠나올 때 베를린 소녀상 문제가 불거졌다. 우리 정부의 입장은 공식 대응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물밑에서 독일 정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작업을 하는 과제가 내게 주어졌다. 하지만 독·일 관계는 한·독 관계와 달리 남다른 긴밀성이 있었다. 과거 두 나라는 동맹국이었고, 베를린과 동경이 자매결연 도시이기도 했다. 이러한 인연을 앞세워 일본 자민당 국회의원들이 일독 의원 친선협회를 통해 융단폭격을 가해왔다. 그런 상황을 개인적 인맥과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 방어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

▮독일대통령과 남다른 친분을 쌓았다고 했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2018년 6월,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와 독일이 맞붙었다. 그런데 마침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여러 나라 대사들과 만나는 일정 중에 축구 한·독전을 함께 시청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온 국민이 축구광인 독일 사람들은 당연히 독일의 승리를 기대했지만, 예상을 뒤엎고 한국이 2대 0으로 독일을 눌러버렸다. 한국이 골 넣으면 나는 함성을 지르고, 독일 대통령은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하고…. 표정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난감했다(웃음).

하지만 그날을 계기로 대통령과 한발 더 친해졌다. 이후 어떤 자리든 가면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날 보며 “무슨 일이든 함께 잘해보자. 단, 축구는 빼고”라는 농담을 건네곤 했다. 2019년 연초에 대통령궁에 180개 국 대사들을 초청한 신년하례회에서도 ‘정범구 한국대사’를 언급하며 인사말을 하기도 했다.

구 동독 마지막 총리였던 로타 드 메지에레와 함께. [사진출처=정범구 페이스북]
구 동독 마지막 총리였던 로타 드 메지에레와 함께. [사진출처=정범구 페이스북]

▮독일에서 코로나 팬데믹을 겪었는데.

역설적으로 이번 코로나 팬데믹이 대한민국의 국가적 위상을 높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우선 언론에서 한국의 효율적인 방역 시스템을 여러 차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독일 정계에서도 한국이 이런 나라였구나, 새롭게 인식했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일례로 메르켈 총리가 각료회의에서 한국의 성공적인 방역 사례를 몇 차례나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의 성공적인 방역에 대해 유럽의 시민사회에선 반박도 있었다고 들었다.

맞다. 한국은 유교사회라 자의식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거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명목으로 사회 전체의 자유를 제한해야 하는 게 과연 맞냐는 재반박이 이어졌다. 개인 추적 앱을 허용하지 않은 대가로 강도 높은 록다운을 경험해야 했으니 말이다. 또한 한국 국민들의 방역 동참이 무비판적 추종이 아니라, 자발적 동의의 결과라는 사실도 부각됐다. 실제로 우리 국민들은 나와 남을 함께 생각하며 일부 개인적 불이익을 받아들이지 않았나. 어쨌든 코로나 팬데믹으로 적나라하게 노출된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의 논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유럽도 극우세력이 만만찮고, 최근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도 번지고 있지 않나.

나치 역사를 원죄처럼 안고 있는 독일사회는 공식적으로 인종차별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 독일도 예외 없이 중국 혐오에서 촉발된 아시아인에 대한 공격이 많아졌다.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대사관 차원에서 변호사를 선임하고, 경찰청장에게 항의를 하고, 언론에 기고하는 등 세게 대응했다.

이러한 인종 혐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사실 그 사회의 여러 모순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독일 역시 교육을 받은 중산층보다는 주변국에서 유입된 이주노동자나 실업자 등 사회적 박탈감을 안고 있는 계층들이 자신들보다 더 약한 아시아인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아시아인에 대한 반감을 독일 주류 사회의 정서라고 오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박남영 주독 북한대사와 함께. [사진출처=정범구 페이스북]
박남영 주독 북한대사와 함께. [사진출처=정범구 페이스북]

▮재임기간 동안 남북관계는 말 그대로 요동을 쳤다. 해빙과 냉각, 희망과 낙담이 교차했다.

정말이지 가장 아쉽고 안타까운 부분이다. 앞서 말했듯 2018년 1월 주독 대사관에 부임했는데, 부임 3주 만에 독일 대통령이 참석하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동행하기 위해 귀국을 했다. 그 개막식에 북한의 김여정, 김영남이 참석한 것을 시작으로 남북 정상이 만나고, 이어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악수를 하고…. 정말이지 극적인 순간이 이어졌다. 남북관계가 급진전되자 독일 교민사회가 끓어오르고, 정계에서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한마디로 외교관으로서 영업하기 좋은 호시절이었다(웃음).

▮북한 대사와도 자주 만났나.

재임기간 동안 북한대사와는 5번 만났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아무래도 2018년 4월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난 직후였다. 당시 독일 교민들이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만났던 6·15 공동선언 18주년 기념행사를 민간 차원에서 마련했는데, 그 자리에 박남영 북한대사도 초청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북한대사관 직원 자녀들로 꾸린 중창단이 함께 참석했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동포들이 눈물바다가 됐다.

2019년에도 핸드볼 남북단일팀이 꾸려져 베를린에서 연습도 하고 시범경기도 열었다. 그 과정에서 남한과 북한의 대사가 함께 선수단을 격려하기도 하고, 공동응원단을 꾸리기도 했다. 하나하나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하노이 북미회담이 소득 없이 끝나고, 남북관계도 얼어붙으면서 북한대사를 만날 기회도 사라졌다. 돌아오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 했지만, 이마저도 성사되지 못했다.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2019년 핸드볼 남북단일팀이 베를린을 찾아와 경기를 펼쳤다. [사진출처=정범구 페이스북]
2019년 핸드볼 남북단일팀이 베를린을 찾아와 경기를 펼쳤다. [사진출처=정범구 페이스북]

▮가치의 다양성에 대한 수용 측면에서 우리와 독일을 비교하자면.

독일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자본주의 산업사회로 이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 산업사회에 맞는 사회적 특징 중 하나가 다양성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가족관계만 놓고 봐도, 비혼 부모나 동성혼 등에 훨씬 너그럽다. 우리나라 역시 지금과 같은 사회구조의 변화가 지속된다면, 다양한 가치를 받아들이는 폭이 점점 넓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낯선 것들이 어느 시점에선 당연해질 거라는 얘기다.

▮독일의 언론 환경이 궁금하다. 우리나라 언론은 중앙 중심주의, 그리고 극단과 극단의 진영논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데 독일은 어떠한가.

독일은 우리가 당연시하는 중앙일간지라는 개념이 없다. 프랑크푸르트의 알게마이네 차이퉁, 뮌헨의 쥐트도이체 차이퉁 등 독일의 유력 신문들은 모두 지역에서 출발한 신문들이다. 독일 언론의 기자 충원 절차도 흥미롭다. 언론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다양한 규모와 성격의 지역신문이나 언론매체에서 활동을 시작한 후, 경력을 쌓고 더 큰 신문사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처럼 규격화된 입사시험을 치르지 않는다는 얘기다. 또한 기자별로 자기 전공분야가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베테랑 기자들은 웬만한 교수보다 권위도 있고, 책도 활발히 출간한다.

물론 독일 언론도 진보와 보수라는 각자의 성향은 있어서 독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맞는 논조를 찾아 읽곤 한다. 하지만 우리의 언론 현실처럼, 특정 세력의 대변인이라도 된 듯 싸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독일은 민주시민교육 모범국가로 첫손에 꼽힌다. 우리에게도 절실한 과제 아닌가.

종전 이후 독일은 나치의 역사를 극복하고자 연방정치교육청이라는 국가 기구가 민주시민교육을 관장하도록 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교재와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지역별 민간위탁기구가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구조다.

예를 들면, 가족의 다양성, 국제적 난민문제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주제를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교재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2주짜리 세미나에 신청하면 국가가 비용을 대고, 직장에서도 근무 인정을 하는 등 지원을 한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하나의 사안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균형 잡힌 정치교육의 도입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4월 초부터 청년재단 이사장을 맡게 된 정범구 전 주독 대사.
4월 초부터 청년재단 이사장을 맡게 된 정범구 전 주독 대사.

▮대사 재임기간 동안 페이스북 등을 통해 일상의 이야기를 친근하게 들려줬다. 일반인이 접하기 힘든 대사관의 일들을 가볍고 편안하게 노출한 것에 대해 반응들이 좋다.

아시다시피 나는 전문 외교관료가 아니라 정부로부터 낙점된 특임공관장이었다. 이왕 외교관으로 몸담게 됐으니, 베일에 싸인 영역을 조금 열어보자는 생각이 들어 의도적으로 페북을 부지런히 했다. 외교관이 실제로 뭘 하는 사람인지를 국민들에게 친근감 있게 알려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외교부 내에서 조심스러운 반발도 있었다. 외교는 기본적으로 비밀을 다루는 업무이기 때문에 스스로 조심스럽기도 했다. 어쨌든 그런 걸 조심하면서 쓴 글들이 100편이 넘었고, 페북 친구들의 호응도 기대 이상이었다. 당시의 글과 사진들이 조만간 책으로 묶일 예정이다. 

▮이달 첫날 청년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청년들 삶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설계하는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2015년 출범한 청년재단은 그동안 청년 일자리사업에 집중했는데, 앞으로는 청년세대와 관련한 보다 다양한 의제들로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과제다. 신임 이사장으로서 청년 세대의 고민과 한번 부딪혀본다는 마음으로 새로운 사업들을 차근차근 펼칠 생각이다.

핸드볼 남북단일팀 경기를 응원하는 모습.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슈뢰더 전 총리, 최태원 한국핸드볼협회장,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박남영 북한 대사 가 보인다. 사진출처=정범구 페이스북]
핸드볼 남북단일팀 경기를 응원하는 모습.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슈뢰더 전 총리, 최태원 한국핸드볼협회장,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박남영 북한 대사 가 보인다. 사진출처=정범구 페이스북]
한, 중, 일 3개국 주독 대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사진출처=정범구 페이스북]
한, 중, 일 3개국 주독 대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사진출처=정범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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