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마음이야기-

양성희 심리치유센터 대표
양성희 심리치유센터 대표

[고양신문] 요즘 사방이 꽃이다. 봄꽃이 피었다는 것은 벼농사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국민 대다수가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이맘때면 집집마다 볍씨를 소독했다. 그 시절 종자 소독 때마다 집안 분위기가 엄숙했던 기억이 난다. 경기도 지역은 남부지방보다 일찍 모내기를 해야 하니 4월인 지금 못자리를 하는 집도 있을 것이다. 상전벽해가 일어난 고양시는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지만 아직도 구석구석 논은 건재하다.
 
장애인가정 상담을 가는 송포동은 요즘 바쁜 모양새다. 오래 전부터 농사를 지어온 곳이어서 논이 네모나게 구획이 잘 되어 있고 가좌천이 흐르고 관개수로도 정비가 잘 되어 있다. 땅이 비옥해서 들꽃마저 풍성하게 자라는 곳이다. 마을버스 정류장에 제비꽃, 수선화, 엉겅퀴가 제 맘대로 쑥쑥 자란다.

이곳은 새들의 낙원이기도 하다. 오리가 물 위에서 평화롭게 노니는 모습은 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지난 겨울 기러기는 한 철 편히 쉬더니 갈 곳으로 떠났다. 왜가리가 사냥을 하거나 낮잠 자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백로가 아무렇지도 않게 농가를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봤을 땐 내 눈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네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모여서 속닥속닥 올망졸망 예쁘게 살고 있다.

필자는 호남평야 농부의 딸이었다. 우리나라의 곡창지대이고 지금은 ‘지평선’이라는 칭호가 생긴 그곳에서 나고 자랐다. 그래서 논을 보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물을 채운 논에서 나는 진흙 냄새는 몸속으로 들어와 유년의 기억들을 소환한다. 빨랫가에서 종자를 소독할 때 나던 냄새, 학교에서 단체로 모내기 체험하러 갔던 날 본 거머리, 수확철이면 분주했던 친구네 방앗간집, 추수 후에 뛰어놀았던 빈 논의 모습까지 생생하다. 고향과 비슷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고양에서 제2의 인생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가한 소리 같다. 지금 여기는 팬데믹이 1년도 넘지 않았나. 그런데도 주식은 사상 최고치라 한다. 소상공인은 겨우 견디고 있는데 시중에는 기회만 오면 자본이 무섭도록 쏟아져 나온다. 전쟁 중에도 돈을 벌어 윤택한 이가 있다더니 극소수의 부는 공포영화의 괴수마냥 사냥할 곳을 찾아 휘젓고 있는 것 같다. 거대 자본이 마치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지만 생명을 앗아가는 바이러스처럼 공포로 느껴진다. 괴수 둘이 동시에 돌아다니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코로나에 안 걸리려고 발버둥을 치면 안 걸릴 수는 있겠으나 삶의 질을 피폐하게 하고, 자본의 불균형은 인간의 생태계를 파괴하니 영 질이 나쁜 괴수들이다.
 
이런 와중에 어떻게 행복을 얘기하고 문화, 인권, 민주주의 같은 고상한 언어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전시회장도 서점도 수영장도 식당도 그리고 학교마저 쇠약해졌다. 어느 때는 예전의 생활이 서서히 잊히는 것 같아 이대로 정착이 되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영혼의 양식을 먹으려면 걸인처럼 주워 먹듯 기회를 잡아야 섭취할 수 있는 시대이다. 뮤지션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TV에서 대리운전하는 기타리스트의 모습을 우연히 보고나니 절망스럽다. 작년 1년의 매출증감률 그래프를 보니 명품과 가정용품의 약진을 빼고는 모든 부분에서 심각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올해도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인데, 무엇보다 올해 우리의 기대심리는 얼마나 살아 있는지 궁금하다.
 
다만 머리맡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바람이 분다. 괴수쯤이야 아랑곳 않는 봄빛이 아낌없이 내리쬐고 있다. 수렴의 기간을 거친 계절은 동풍을 몰아와 생명을 깨우기에 여념이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봄바람이 우리의 얼굴에 충동질한다. 어느새 녹은 땅은 생장점을 찾아 어느 씨앗이고 가리지 않고 싹을 틔우고 있다. 봄비까지 내리면 곳곳의 땅에서 축제를 벌인다. 직박구리가 꽃을 따먹고 박새들도 떼 지어 날고 까치는 봄비 웅덩이에서 목을 축인다. 우울함은 찾아볼 수가 없는 연회장이다. 살아 있다고, 우리는 살아 있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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