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박수택 시민, 생태환경평론가
박수택 시민, 생태환경평론가

 

[고양신문] 우주선에서 찍은 지구 사진은 에메랄드 푸른빛이다. 지구 표면의 70%를 덮은 바다의 색이다. 77억 인류가 딛고 사는 땅보다 바다가 망망하게 넓은 까닭에, 지구를 수구(水球)라고 해야 마땅하다는 얘기도 있다. 지구 생명체가 처음 탄생한 곳, 생명의 자궁 역시 바다라고 과학계는 진작에 결론 내렸다. 온갖 물고기와 해조류로 인간을 먹여 살리니 바다는 마르지 않는 식량창고다. 육지와 바다 사이 공간 갯벌엔 물새가 쉬어가고 갯마을 어민들은 한겨울에도 맨손으로 조개 고둥 줍고 낙지 캐어 하루이틀 땟거리를 너끈히 벌어간다. 바다는 뱃길도 열어준다. 바이킹도 마젤란도 콜럼버스도 바닷길 아니었으면 너른 세상을 찾아볼 수 있었겠는가? 세계의 유명한 대도시도 대부분 바다를 끼고 있다. 바다의 혜택은 넓고도 깊다.

푸른빛의 지구.
푸른빛의 지구.

바다를 함부로 대하면 불행과 재난이 닥친다. 일본 남서부 규슈(九州) 구마모토현의 조용한 어촌에 1908년 ‘칫소’라는 이름의 화학공장이 들어섰다. 일자리도 만들고 지역경제도 살린다는 명분은 좋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주민들이 시름시름 앓고 죽어갔다. 몸과 정신에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늘어갔다. 고양이도 미친 듯이 날뛰다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괴질의 공포에 사람들은 떨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은 실태와 원인조사를 꺼렸다. 50년이 지나 양심적인 의사와 학자, 시민운동가들이 적극 나선 뒤에야 비로소 화학 공장에서 오랫동안 바다로 흘려 보낸 수은 폐수로 플랑크톤과 물고기 조개류가 오염됐고, 오염된 수산물을 먹은 주민들이 수은에 중독됐다는 실상이 밝혀졌다. 지역의 이름을 딴 ‘미나마타병’은 일본이 자연과 환경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10년 전인 지난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15m 높이의 쓰나미가 밀려왔다. 후쿠시마 해안 원자력발전소가 바닷물에 잠겨 원자로 냉각시설이 망가지고 과열된 원자로가 폭발했다. 사고 원전 주변지역은 폐허로 변했다. 오염된 토양과 물을 처리하고 보관하는 비용을 더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고 일본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보내겠다고 나섰다. 오염수에 든 방사성 물질은 해류를 타고 온 태평양으로 퍼져나가고 우리나라와 북한, 중국 연안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장 동아시아 지역에서 심각한 환경재난이 일어날 판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지만 일본은 상관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아소 다로 부총리는 “중국이나 한국이 바다에 방출하고 있는 것과 같다”면서 “마시더라도 별일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무책임한 선동적 발언이라는 비난을 샀다.

미국의 실험으로 방사성 낙진 피해를 입은 일본어선. 사진=도쿄 제5후쿠류마루 전시관
미국의 실험으로 방사성 낙진 피해를 입은 일본어선. 사진=도쿄 제5후쿠류마루 전시관

일본은 핵 문제에 매우 민감하다. 이웃나라들을 침략하고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가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맞은 게 그들에겐 트라우마다. 1954년 3월 남태평양 마샬군도 비키니섬에서 미국이 벌인 수소폭탄 실험으로 일본 참치잡이 원양어선 ‘제5후쿠류호(弟5福龍丸)<사진>’가 방사성 낙진을 뒤집어쓰고 선원 23명이 모두 피폭되는 사고가 났다. 배는 폐기되기 직전에 ‘핵폭탄 금지와 평화를 바란다’는 일본 내 여론에 힘입어 1976년부터 도쿄 시내 기념관에 들어가 있다. 1993년 러시아 해군이 방사성 액체 폐기물을 동해에 버리자 방사능에 오염된 생선회를 먹을 수 있겠느냐며 일본 여론은 들끓었다. 당시 호소카와 총리가 직접 나서서 러시아 옐친 대통령에게 공동조사 합의를 이끌어냈다. 20세기 핵 문제에는 소위 ‘피폭국’임을 내세우며 민감하게 움직이더니 21세기 자신들의 방사성 오염수 문제엔 이웃을 의식하지 않는다.

유엔해양법협약에는 바다를 오염해선 안 되며, 이웃 국가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미국과 IAEA(국제원자력기구)는 오히려 일본을 거들고 나섰다. ‘끈 달린 돈’이라는 일본말 표현대로 IAEA는 분담금 많이 내는 일본 쪽에 귀를 기울이는 모양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일본의 어깨를 토닥인다. 자기 이익 앞세우는 나라들 앞에서 지구 환경과 인류의 건강,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우리 시민들의 분노는 높아가고 있다. 일본과 미국이 무책임한 태도를 바꾸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바다가 방사성 물질에 오염되면 미나마타병보다 더한 환경 재앙이 닥칠 수도 있다. 죽음의 바다였던 미나마타, 해안공원의 미나마타병 희생자 위령비 앞에 쇠종이 걸린 의미를 일본 총리와 정치인들은 알기나 할까?

 

미나마타병 희생자 위령비. 사진=미나마타시립 미나마타병자료관 홈페이지
미나마타병 희생자 위령비. 사진=미나마타시립 미나마타병자료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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