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의 시민생태이야기 에코톡]
영양 풍부한 기수역 장항습지
산란하러 오는 웅어의 ‘고향’
멸종위기종 저어새 연 20마리
한강하구 따라 습지에 깃들어
[고양신문] 장항습지에 봄이 무르익어 간다. 버들 숲에는 흰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거무튀튀한 습지 바닥에 하얗게 쌓인 솜털종자가 이리 저리 바람에 날리며 마치 눈송이를 연상하게 한다. 버들 숲은 일찌감치 잎을 틔워 이미 연둣빛으로 물들었다. 숲 그늘에 들어 조용히 소리새(명금류)의 노래를 듣노라면 고단한 영혼이 잠깐이라도 정화되는 느낌이다. 이른바 숲과 물이 주는 치유효과를 동시에 누리니 습지치유라 할 만하다. 장항습지가 람사르습지로 지정된다면 겨울새들이 잠시 떠나 있는 시기에 시민들이 습지가 주는 생태치유서비스를 오롯이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한다.
4월은 장항습지가 새롭게 태어난 달이다.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날이 2006년 4월 17일이기 때문이다. 이날을 맞아 생일잔치를 벌임이 마땅하지만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조용히 지날 터였다. 그런데 마침 KBS 한국인의 밥상팀이 이날 장항습지를 찾아왔다. ‘기수역의 풍요로움’이 주제였다. 역전 노장 최불암 선생님은 ‘기수역’이 왜 풍요로운지 물으셨다. 그리고 장항습지가 어떤 특징이 있는지도 궁금해 하셨다. “강과 바다가 만나 사랑을 나누는 곳이 갯물숲”이라 했더니 그 이름이 정감 있어 좋다 하신다.
이어 하구 특징에 대해 설명해 드렸다. “기수역은 하구역의 다른 이름이고, 하구는 바닷물과 강물이 주기적으로 섞여 강살이 생명이나 바다살이 생명이 살기에는 버거운 환경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다양한 생물이 사는 정도(종다양도)는 낮다고 말한다.
반면에 육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온갖 유기물들이 강으로 모여 바다로 나가는 길목이자 바닷가에 쌓여 있던 유기물이 밀물로 다시 밀려들어오는 곳이니 영양분은 끊임없이 공급된다. 이 풍요로운 먹이 덕분에 생물들은 살을 찌우고 새끼를 낳아 수를 불린다. 그래서 하구는 1년 단위로 측정하는 생물량(연간생산성)은 최고로 높다고 말한다.” 이렇게 주절주절 이야기하다보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래, 강과 바다가 만나 이룬 사랑의 결실이다.
봄볕 좋아 보리가 패고 버들 솜눈 나리는 요맘때 기수역 밥상으로 으뜸인 것은 무엇일까? 뭐니뭐니해도 웅어회를 꼽는다. 그 부들부들하고 고소한 식감은 먹어 본 이만 안다. 생각할수록 군침이 돈다. 임금님도 즐겼다던 행주 웅어는 예전에는 갈대밭고기라하여 위어(葦魚)라고 했다. 금강하구에서는 이를 지역말로 우어, 우여라 한다. 한강하구의 웅어는 ‘버들웅어’라고 부르면 좋겠다. 강화 앞바다에서 살다가 자식을 낳을 때면 돌아오는 웅어들의 고향인 장항습지에서 버드나무가 주는 유기물을 먹고 어린 물고기들이 자라나니 말이다.
그런데 웅어가 올라오는 요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새가 있다. 바로 멸종위기종 1급이자 천연기념물,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되어 있는 저어새다. 불과 십여 년 전에 전 세계 2000마리밖에 남지 않았다하여 멸종 직전까지 갔던 저어새가 많은 이의 노력으로 올해 처음으로 5000마리를 넘어섰다.
일등공신은 물론 우리나라다. 이들 저어새 대부분이 서해 접경 무인도와 근처 갯벌에서 번식하기 때문이다. 그 서식지가 대부분 한강하구 영향권에 있다. 민물과 바닷물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유일한 자연하구가 전 세계 저어새들의 대부분을 먹여 살리는 것이다. 특히 주무대가 서해바다인 저어새가 하구를 따라 들어와 가장 강 가까이 사는 곳이 장항습지다. 장항습지에는 소금섬(오염도 烏鹽島, 또는 형제섬이라고도 한다)이라는 조그만 무인도가 있는데 해마다 20여 마리의 저어새가 찾아오고 있다.
이 저어새 중에 인천 서구의 매도에서 태어나 K14라는 가락지를 단 어린 저어새가 장항습지에서 삵에게 잡아 먹혔던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덕분에 인천에서 태어난 어린새들의 먹이터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을철 저어새가 유조인 반면 봄철 요맘때 장항습지를 찾아오는 저어새는 짙은 귤빛 깃털로 장식하고 있는 어른새(성조)다. 말하자면 번식기에 들어 있어 신방을 찾아다니는 새들이다. 그러니 적절한 둥지터가 있고 둥지재료를 구할 수 있고 안전하다면 둥지를 만들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올해도 장항습지 시민모니터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웅어떼가 장항습지 어디에서 산란을 하고 생육하는지 관찰할 것이다. 저어새들은 이들 어린 웅어들을 비롯해 갯골 밥상 위에 차려져 있는 50여 종의 물살이동물(어류)과 새우, 갯지렁이, 게들 중에 어떤 먹이를 선택할 것인지 도 들여다 볼 요량이다. 소금섬에 찾아오는 얘들은 번식을 시도할까, 가을철엔 몇 마리나 찾아올까, 삵이나 너구리가 얘들을 포식할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시민과학자들은 오늘도 가방에 쌍안경과 디지털카메라를 메고 습지를 누비고 있다. 올해 저어새가 물어다줄 좋은 소식을 기대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