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4.7 보궐선거가 막을 내리니, 20대 남성을 뜻하는 ‘이대남’을 향한 정치권의 끈질긴 구애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는 보궐선거의 시작은 권력형 성폭력이었지만, 선거의 끝은 결국 남성을 향하고 있다. 특히, 이대남을 향한 구애 방향 역시 ‘페미니즘 탓’으로 굳어지며, 20대 이하 여성 중 15.1%가 거대양당이 아닌 후보에게 투표했던 맥락의 해석은 시도조차 않는다. 정치권이 민심 읽기를 넘어 세상 읽기조차 게을리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이 읽어야 하는 세상은 90년대에 태어난 여성의 자살률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특히 코로나 이후 눈에 띄게 가팔라지고 있는 선을 주시해야 한다. ‘내일’ 대신 ‘포기’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인지 무엇인지 파악하고 바꿔 나가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동료시민인 여성을 계속 잃을 수밖에 없다. ‘조용한 학살’이라 이름 붙은 죽음의 행렬 원인에 대해 많은 학자가 분석을 시작했다. n번방 등 디지털 성폭력을 비롯해 친밀한 관계에서도 안전을 걱정해야 하고, 채용에서의 성차별이 만연하며,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도 성희롱이 일상이며, 여성에게 더욱 노골적인 고용불안정과 더불어 성별임금격차가 크게 존재하는 세상에서 삶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것이 분석 골자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동시대에 태어난 여성의 생명을 지키는 정책을 펼치기보다 20대 남성의 페미니즘을 향한 분노를 이용하고 있다. 약한 고리 하나를 찍어 누르는 전형적인 남 탓 정치다. 이대남을 포함한 청년세대는 주거, 고용, 소득보장의 위기와 함께 공정에 대한 요구를 절실히 하고 있다. 안 그래도 바늘구멍만큼 좁은 취업 기회에서 비리와 부패를 없애 달라는 목소리는 기득권이 일상처럼 점유해온 낡은 모습의 혁신에 대한 요구다. 하지만 정치권은 엉뚱하게 20대 남성의 반페미니즘 성향에 기대어 마치 남성 대상 징병제를 고치면 사회 전반의 공정을 담보할 수 있다는 신기루를 가리키면서 청년세대가 분노하는 지점들을 가리기 바쁘다.
‘군대’와 ‘코인’에만 집중하는 거대양당의 모습에서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페미니즘을 향한 혐오를 더욱 조장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지향했던 사람에게 일부 청년 남성의 공격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대학 커뮤니티에서도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가 만연하고, 페미니즘을 내건 후보들의 선거 벽보와 현수막이 이번 보궐선거에서도 찢겨 나갔다. 페미니즘을 향한 혐오는 이미 여성 대상 폭력으로 일상화되고 있다. 보궐선거가 끝나자마자 시작된 징병제 공정성 논란은 국방 의무 제도의 제대로 된 개편 논의보다 ‘반페미니즘 연대’로 여성을 향한 분노가 이대남의 공통된 정서로 자리 잡는 데 힘을 보탤 뿐이다. 이 속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성평등이 절실한 청년 여성만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다.
집권여당 ‘심판’으로 끝난 보궐선거 결과를 깊이 새긴다면, 청년세대가 분노하는 불공정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을 제대로 가리킬 정치가 필요하다. 오랜만에 열어본 SNS 쪽지함에 성평등 외쳐줘서 고마웠다는 여러 통의 메시지를 다시금 읽어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누군가는 혐오 조장보다 혐오를 뚫고 ‘삶의 포기’라는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의 손을 잡아야 하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