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덕양노인종합복지관 내가 만드는 반찬 D.I.Y
코로나 블루 시대를 살아가는 노인들에게 보낸 ‘응원’
정기적으로 식자재 재료 배송
어르신들이 직접 집에서 요리
무력감·우울감 떨쳐내는 시간
“건강하게 만날 날 기다려요”
[고양신문] “까마득한 옛날이 생각나네요. 아이들 손잡고 고궁 같은데 놀러 다닐 때 돼지고기 갈아서 참기름 넣고 단무지하고 김밥 싸던 그때가 좋았어요. 요즘 입맛이 없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색다른 음식을 만들어 손자랑 같이 먹으니 참 기분이 좋아요. 준비하느라 힘은 들었지만 새로운 맛이에요. 딸처럼 챙기며 저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셔서 고마워요.” - 주교동 장OO
“김밥을 알려주신 대로 만들어보니 환상이네요. 오랜만에 김밥을 맛있게 싸서 이웃들과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열무김치 담글 준비를 하고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 주교동 이OO
2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코로나 블루’를 앓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달라진 일상으로 인해 나타나는 무력감이나 우울증은 특히 혼자 사는 독거 어르신이나 저소득 취약계층 노인일 경우 그 정도가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고양시덕양노인종합복지관이 ‘내가 만드는 반찬 D.I.Y’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기억을 추억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는 말처럼, 정성을 담아 어르신들에게 전한 장바구니는 젊은 시절 추억을 소환하고 이웃과 소박한 나들이를 하며 새로운 추억을 쌓게 해주는 ‘사랑’의 촉매제가 됐다.
어르신들 요리하며 위로 받길
덕양노인종합복지관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취약계층 독거어르신들에게 발생한 우울함, 무기력, 답답함 등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 1회 원재료 또는 반재료 상태의 음식재료와 레시피를 장바구니에 담아 전달했던 것은 지난해 6~7월이었다. 어르신들이 반찬거리를 가지고 레시피에 따라 직접 음식을 조리하고 나누면서 성취감과 만족감, 이웃과 소통하는 기회를 갖기 바라며 진행한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에 ‘코로나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든 어르신들을 음식 만들기로 위로할 수 있을까’라는 작은 질문으로 시작했어요. 따뜻한 소감문과 음식을 만든 사진들이 그 질문에 대해 나지막이 답을 해주더군요. 재료를 씻고 자르고 무치고 볶아 먹으면서 잠시나마 무료함을 잊고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고 말이죠. 그런 시간을 줘서 고맙다는 말도 빼먹지 않으셨습니다.”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했던 권익복지과 이혜미 사회복지사는 올해 초부터 ‘내가 만드는 반찬 D.I.Y’ 시즌2를 계획했다. 연말이면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복지관 문은 새해가 돼서도 닫혀있을 수밖에 없었고, 지난해 12월 경기도노인종합복지관협회 코로나19 대응 우수프로그램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타서 그런지 의욕이 더 생겼다.
“안녕하세요. 코로나19로 인해 복지관 휴관이 길어지면서 집에서 지루하시죠.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계실 어르신들을 위해 ‘내가 만드는 반찬’ 프로그램이 다시 찾아왔어요. 음식을 직접 만드는 것이 어렵고 귀찮은 분도 계시겠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보고 사진 또는 소감문을 공유해주시면 좋겠어요.” - 내가 만드는 반찬 시즌2 ‘어르신께 띄우는 편지’ 中
직원·봉사자 손길 모아 재료 준비
3월부터 4월까지 총 4회 격주로 진행됐던 ‘내가 만드는 반찬’ 시즌2의 메뉴는 청국장, 김밥, 열무김치, 삼겹살 모듬 캠핑구이였다. 마지막회분 식재료 소분 준비과정 그리고 이튿날 어르신들에게 전달하는 차량에 동승취재도 했다. 누구하나 할 것 없이 활기찬 표정이었다. 마침 복지관 무료 경로식당을 이용하던 어르신들에게 도시락도 함께 전달하는 날이었다.
도시락 반찬메뉴로 준비한 장조림과 오이무침, 계란찜, 잡채 냄새가 300석 규모의 복지관 식당을 가득 메웠다. 코로나 이전엔 하루 2000명의 어르신들이 매일 식사를 하던 곳이었다. 기자 역시 몇 번을 이용하며 맛있게 먹던 기억이 떠올랐다. 언제 다시 그런 날이 돌아올 수 있을까 하며 괜히 식당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어르신을 태웠던 복지관 셔틀버스 대신 반찬 장바구니와 도시락을 실어 나르는 차량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목경찬 기사는 “어르신들이 예전처럼 제 버스를 타고 복지관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고, 박상범·윤영채 사회복무요원은 “복지관에서 전달해드리는 반찬 장바구니가 오는 날이면 시간 맞추어 미리 나와 계신분도 있다”고 말했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깨달아
“오늘은 신나는 날이에요. 김치를 만드는데 좀 보기 좋으라고 고춧가루를 많이 넣었어요. 뭔가 손을 움직인다는 것, 머리를 쓴다는 것은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음식을 만드는 것이 이렇게 신나고 재미있었는지 젊었을 때 음식을 많이 만들어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네요.” - 행신동 박미경 어르신의 소감문 中
행신동 샘터마을에서 만난 박미경 어르신(72세)은 장바구니를 받으며 ‘내가 만드는 반찬’이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오늘의 레시피인 삽겹살 모듬구이와 콩나물 파채무침을 해먹을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즐겁단다.
박 어르신은 코로나 발생 전엔 매일 복지관에 나가서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맛있는 밥도 먹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하루해가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잠깐 산책하는 거 빼고는 거의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 보니 하루가 너무나 길게 느껴지고 답답함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하소연 했다.
“왕복 두 시간 걸려 늘 복지관에 걸어 다녔어요. 오며 가며 보았던 풍경들, 그리고 복지관에서 활동하며 별것 아닌 것 같았던 그 순간들이 실은 내게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복지관에서 주신 식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하면서 코로나 우울증을 이겨내고 있어요. 이혜미 복지사님은 위로라고 이야기하지만 제겐 큰 응원이었거든요. 하루빨리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복지관에 나가 반가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