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우리가 살고 있는 고양시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호수공원, 꽃의 도시, 평화의 도시…. 다 좋지만 이왕이면 난 ‘문화의 도시’ 고양의 시민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싶다. 한 나라의 국민이나 정부가 작가나 지식인을 대접하는 정도는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가름한다.
프랑스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작가와 예술가, 지식인을 사랑하고 아끼는 나라이다. 그만큼 작가 지식인의 사회적 영향력도 크다. 파리의 거리를 걷다보면 종종 중요한 역사적 인물이나 프랑스가 자랑하는 작가들을 만나게 된다. 사르트르-보부아르 광장, 마르셀 프루스트 거리, 몰리에르 로 등, 길을 걷다가 우연히 내가 잘 아는 작가들의 이름을 만나면 괜히 반갑다. 그것은 문화적 자부심의 표현이며, 프랑스가 역사와 문화를 기억하는 방법이다.
고양시에는 우리가 자랑할 만한 인물이 없을까. 사실은 그 어느 지식인 예술가보다 우뚝 선, 한국문학사의 거목이 고양시와 깊은 인연을 맺고 오랜 세월 살아왔지만 그 사실을 잘 모르는 시민들이 많다. 『광장』의 작가 최인훈 선생이 바로 그분이다. 『광장』 이외에도 수많은 작품들, 소설가의 일상을 수묵화처럼 그려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날카로우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유머와 위트와 풍자가 빛나는 『구운몽』, 『열하일기』 같은 중단편들, 한국 희곡사에 새로운 장을 연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를 비롯한 일련의 희곡들…. 최인훈의 작품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젊은 날 문학청년을 꿈꿨던 사람들에게 작가 최인훈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광장』은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 내게는 오히려 감동이 덜했다. 그러나 회색의 의자에 앉아 끊임없이 자신의 자아와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서 회의의 눈빛을 던지는 『회색인』의 주인공에게 심하게 감정이입하면서 젊은 날의 나는 한동안 최인훈앓이를 했다. 나뿐만 아니라 70~80년대의 평론가들 중에 최인훈 작가에게 음(淫)했던(작가 자신이 즐겨 썼던 표현) 사람들이 많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평론가 김현 같은 이가 대표적인 사람이다. 작가 이전에 누구보다 폭넓은 독서와 깊은 사유를 했던 지식인 최인훈은 한국의 젊은 지식인과 한국문학에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최인훈 선생이 고양시에서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을 사시다가 타계하신 지 곧 3년이 된다.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선생을 기념하는 도서관을 건립하자는 논의를 시작한 지도 2년이 넘었다. 이제 우리는 기념도서관 건립을 구체화해야 할 시기이다. 마침 새로운 시청사의 설계공모도 시작된다고 하니 기념도서관 건립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고양시에는 동네마다 도서관이 있지만 아쉽게도 고양시를 대표하는 중앙도서관이 없다. 시청사 건립과 함께 중앙도서관을 새로 설립하여 ‘최인훈 기념도서관’으로 명명할 것을 제안한다. 최인훈 선생은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분으로서 충분히 고양시를 대표할 만한 자랑스러운 작가이다. 요즘 지자체마다 지역을 대표할 랜드마크를 찾는다. 고양시의 랜드마크는 ‘최인훈 기념도서관’이 되면 어떨까. 도서관이 최인훈 연구의 중심지, 한국 지성의 메카가 되는 꿈도 꾸어본다. 그것은 단순한 토목 랜드마크가 아니라 지성과 정신의 랜드마크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최인훈 하면 고양시를 떠올리고, 고양시 하면 최인훈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기념도서관의 건립은 최인훈 선생의 유지를 실현하는 일이기도 하다. 생전에 집 근처의 도서관을 즐겨 찾으셨던 선생은 도서관에 깊은 애정을 가졌다. 작가의 기념물을 전시하고 한번 왔다 가면 끝나는 화석화된 문학관보다 시민들이 자주 드나들면서 함께 책을 읽고 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살아 움직이는 도서관을 선호하셨다. 세상의 모든 책을 품고 있는 도서관은 하나의 우주이다. 우리는 기념도서관에서 최인훈 선생과 함께 우주를 보게 될 것이다.
